고영섭 교수의 삼국유사 인문학 유행 <3>

‘고조선’에서 종교와 사상의 지위는?

정치지도층과 종교지도층 같은건

자연현상·지도권위 동일시 까닭

1. 고조선의 통치 방법고조선은 단군조선만으로 이뤄져 있었다. 단군조선은 만주 전역과 한반도의 넓은 강역을 통치한 나라였다. 단군조선을 통치했던 47세계(世系)의 ‘단군’들은 각 지역의 거수(渠帥)에게 거수국(渠帥國)을 위임해 간접 통치하는 지방 분권의 체제로 광대한 제국을 유지했다. 단군조선이 지방분권의 통치체제를 고수한 것은 고조선 출현 이전에 만주 전역과 한반도 지역에 존재했던 성읍국가들(마을연맹체)을 지방정권으로 인정하면서 그들을 결집해 세웠기 때문이다. 전 시대에 광대한 제국의 영역을 다스려 본 경험이 없었던 단군조선은 정복을 통한 ‘지배’의 방식이 아니라 앞선 선진 문명을 통한 지방 정권의 ‘인정’의 방식을 추구했다. 그러나 청동기를 지나 철기문명으로 나아가면서 지방분권 체제 속의 거수국들은 언제라도 단군조선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할 생각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단군조선은 이러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중앙정부의 무력 체제를 공고히 유지했다. 동시에 정권과 결탁한 종교조직과 종족에 기반한 혈연조직 그리고 정무와 행정을 관장하는 관료조직을 적절히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치자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없이 믿었던 고대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종교를 적절히 활용했다. 고대인들은 만물에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만물은 신으로 인식됐고 인간의 일들은 신의 의지에 의해 전개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당시의 고대사회에서 종교는 정치의 상위에 자리하면서 각 구성원들을 지배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기록으로 알려진 갑골문(甲骨文)은 기원전 1330~1111년경까지의 상(商)나라 왕이 신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점을 친 기록물이다. 갑골문에 의하면 상나라 왕은 모든 제사ㆍ제도ㆍ공납ㆍ재해ㆍ농사ㆍ사냥ㆍ질병ㆍ분만 등 종교의식과 국가 중대사 및 개인의 일에 이르기까지 신의 뜻을 묻고 그 반응에 따라 집행했음을 알 수 있다.상나라 왕은 신의 뜻을 대신해 상나라 정치를 행하는 신권(神權)통치의 성격을 띄었다. 고대인들에게 신은 인간의 모든 일과 자연의 모든 현상을 섭리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들에게 신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었고,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결국 이러한 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믿는 조상숭배로, 만물은 모두 신령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애니미즘으로, 동물을 숭배하고 그것을 그들의 조상으로 인식하는 토테미즘으로 발전했다. 지배질서를 갖춘 나라가 출현하기 전에는 지역에서 정치세력을 이루고 있던 씨족들은 그들의 수호신을 중심으로 한 종교를 지니고 있었다. 수호신들은 자신의 씨족들을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묶어주는 강력한 기제였다. 해서 나라의 통치자들은 이들 씨족들의 신들을 통합하기 위해 강력한 종교조직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신의 계보가 만들어지고 힘의 세기에 따라 위계가 형성됐다.단군사화(壇君史話)에 언급된 환웅족과 곰족과 범족의 명칭에는 고대인들의 종교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환웅족은 하느님(환인)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조선족이었다. 이들은 ‘목초(牧草) 꼴인 선(蘚)을 따라 이동을 하며 순록을 치는 부족’으로 이해된다. 즉 순록유목단계에 진입한 순록치기를 하던 유목하는 조족(朝族)과 방목하는 선족(鮮族)을 통합해 세운 부족이었다. 곰족은 곰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고구려족이었다. 범족은 범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예족(濊族)이었다. 이들 중 하느님은 고조선 종교의 최고신이었고 그를 숭배했던 조선족은 고조선의 최고 지배족이었다. 단군사화는 하느님을 숭배하는 환웅족 중심의 기록이어서 가장 대표적인 신과 씨족들만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많은 신들과 씨족들이 고조선 사회를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단군은 몽골어의 ‘하늘’을 뜻하는 ‘텡그리’(tengri)와 상통한다. 본디 만주지역과 거주민들의 토착어였을 ‘단군’(壇君)과 ‘천군’(天君)은 고조선과 한(韓)족에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자 종교의 최고 지도자 및 정치 지도자였다. 2. 고조선의 종교중국의 발음인 고조선 ‘탄준’(tanjun, 壇君)과 그의 거수국인 한(韓)족 ‘티엔준’(tianjun)은 소리값이 매우 가깝다. 단군이 하느님의 후손이었듯이 천군도 하느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는 존재였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태백산(醫巫閭山) 마루에는 신단(神壇)과 신단수(神檀樹)가 있는 신시(神市)가 있었다. 이곳은 고조선 종교의 최고 성지이자 고조선 사람들의 마음의 의지처였다. 단군 왕검(仙人)은 이곳에 머물며 종교의식을 주관하고 주재했을 것이다. 단군조선의 거수국들 역시 단군에 의해 통치를 받으며 종교 의식을 거행했을 것이다. 또 거수국인 한(韓)의 정치중심지인 국읍(國邑)에도 천군이라는 종교 지도자가 있었다. 거수국들의 여러 종교성지인 별읍(別邑)에는 천군이 “천신(天神)에 대한 제사를 주재했고, 소도(蘇塗)를 만들고 그곳에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겼다”해서 누구든 도망해 종교적 성소인 소도 안에 이르면 아무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처럼 한(韓)족은 도읍인 국읍 뿐만 아니라 종교 성지인 별읍도 두었다.고조선의 종교 이름은 선도(仙道)이자 선교(仙敎)였다. 〈삼국사기〉에 실린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고 한다. 그 가르침이 세워진 기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갖춰져 있다”고 했다. 여기서 〈선사〉는 선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아마도 풍류도의 역사에 대해 적은 책으로 짐작된다. 풍류는 불도유 삼교가 이 땅에 전해오기 이전에 있던 고유의 ‘정신’ 혹은 ‘종교’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묘한 도’인 풍류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 ‘바람의 흐름’[風流] 혹은 ‘바람과 달빛’[風月]의 이미지를 지닌 이들 두 단어는 본디 같은 뜻이다. 즉 풍류도 또는 풍월도는 하늘님 신앙에 기반한 신선사상과 산신신앙에 기초한 무속신앙이 하나로 융섭된 세계관이다. 풍류도는 고조선 이래 이 땅에 면면히 전해져온 세계관이며 신라에서 활짝 꽃 피운 독자적 세계관이다.고조선의 종교는 왕검(王儉)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조선의 통치자이자 종교 지도자였던 그는 선인(仙人)이었다. 고조선에서는 ‘선’(仙)을 추구하는 길을 ‘선도’(仙道)라고 했고, 그 가르침을 ‘선교’(仙敎)라고 했으며, 그 길을 가는 지도자들을 ‘선인’이라고 했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 “단군은 바로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은거해 산신이 됐다”고 한 것처럼 그는 ‘산신’이 됐다. 여기서 ‘산신’은 ‘선인’과 다르지 않다. 산에서 오랜 수명을 누리는 이가 선인이며 산신이다. 결국 단군은 아사달(조양)로 돌아와 은거해 산신이 됐고 선인이 됐다.일연은 ‘고구려’조에서 〈단군기〉를 인용해 “단군이 서하(西河) 하백의 딸과 친해 아들을 낳아 부루(夫婁)라 이름했다”고 하면서 “지금 이 기록을 살펴보건대 해모수(解慕漱)가 하백의 딸을 사통해 뒤에 주몽을 낳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루와 주몽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일 것이다”고 했다. 부루와 주몽이 이모형제라는 것은 시기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다만 단군조선의 건국 이후 그리고 고구려의 건국 이전에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던 고구려족의 통치자로서 단군의 아들들이 참여했을 수 있다. 여기서 단군과 해모수는 동일인이다. 그렇다면 해모수의 ‘해’는 하늘의 ‘해’이며 ‘모수’는 ‘머슴애’를 뜻하므로 해모수는 ‘해의 아들’ 즉 ‘일자’(日子)를 가리킨다. 고조선의 최고신은 하느님이었고 하느님은 ‘해’ 즉 ‘일’(日)이다. 단군은 해(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의 대리자이다. 고조선 건국의 주체들은 해를 하느님으로 이해하고 ‘환님’ 혹은 ‘한님’으로 부르면서 그들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그리해 고조선은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하는 환웅족의 천신신앙과 민간신앙으로 전락한 곰 신앙과 범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신행체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이해된다.3. 고조선의 사상고대사회는 종교적인 사회였다. 고대인들은 인간의 모든 일들과 자연의 모든 현상을 수호신의 의지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고대인들은 자신의 눈앞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모두 신과 연관시켜 이해했다. 그들에게 신은 삶의 의지처였다. 그들에게 신은 하느님이었고 지배자들은 하늘의 아들임을 자처했다. 환웅족은 하느님을 수호신으로 한 부족이었다. 하느님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환웅족은 곰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고구려족과 범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예족을 제압하고 자신의 휘하에 두었다. 특히 천상에서 내려온 환웅족은 마늘과 쑥을 견뎌낸 곰족과 통혼하면서 높은 신분의 지배질서를 형성했다. 마늘과 쑥을 견뎌내지 못한 범족은 그 아래의 신분을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점차 종교의식과 혈연의식과 관료의식이 생겨나왔다. 종교는 말뜻 그대로 ‘으뜸가는 가르침’이자 도덕관념이다. ‘고조선’ 조목이 전하는 것처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弘益人間]’의 정신은 고조선의 종교이자 사상이다. 해의 아들인 단군은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지상의 태백산(의무려산)에 내려온 환웅의 아들이었다. 해서 단군은 아버지인 ‘홍익인간’의 이념을 통해 다스렸다. 이것은 하늘 중심의 세계관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인본(人本)주의 세계관이었다. 모든 사람이 널리 이익을 얻어 다함께 행복한 사회, 공존공영을 위한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동시에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모두 주재하면서 “세상에 있으면서 이치에 맞게 교화했다”[在世理化] 이처럼 고조선 사람들이 추구했던 목표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회로 진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늘의 신성성을 지닌 환웅과 땅의 동물성을 지닌 곰녀의 결합을 통해 인간성을 지닌 단군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천상신과 지상신의 화합과 조화를 통해 새로운 인간신을 낳은 것이다. 즉 환인과 환웅과 단군의 세 단계, 환웅이 하늘로부터 내려올 때 받은 징표인 천부인 세 개(청동칼, 청동거울, 청동구슬), 하늘로부터 거느리고 온 무리 3000명, 환웅이 거느렸던 풍백과 운사와 우사의 세 명, 곰이 여자로 진화한 기간의 3*7일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삼’(3)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고조선의 종교 사상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삼재(三才)를 하나로 통섭했고 그 하나는 다시 셋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3·1사상과 삼위일체 혹은 일체삼위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적색과 황색과 청색의 삼태극,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삼시(三時), 공간과 시간과 인간의 삼간(三間), 하늘(天/圓)과 땅(地/方)과 사람(人/角)의 삼재 관계가 모두 그렇다. 그리해 고조선 사상의 체계는 셋으로 시작해 하나로 나아갔고 다시 하나에서 시작해 셋으로 나아갔다. 이후 우리들은 이 셋이 하나가 되고 이 하나가 다시 셋으로 되는 반복과정을 전 방위에서 경험해 오고 있다. 고조선의 종교사상에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구체적인 도덕규범이 있다. 최치원의 ‘난랑비서’에서 보이는 것처럼 “집안에 들어서는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벼슬하면 나라에 충성하며, 함이 없는 일에 처하고 말이 없는 가르침을 행하며, 나쁜 일들 하지 말고 좋은 일들 높혀 하라”는 공자와 노자와 석존의 가르침들은 〈선사〉에서 말한 가르침들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불도유 삼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있었던 풍류 또는 풍월의 세계관은 공자와 노자와 석존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덕 규범이었고 존재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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