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방 법사가 쓴 〈지장십륜경〉 서문
말법 제도에 지장보살 필요성 강조
〈지장십륜경〉의 원래 명칭은 〈대승대집지장십륜경〉으로 구역(舊譯)은 〈대방광십륜경〉의 새로운 번역물입니다. 신방(神昉) 법사가 현장 삼장과 함께 번경(飜經, 불교 경전을 번역하는 일) 끝에 영미(永微) 2년(651)에 완성한 것이 바로 〈지장십륜경〉입니다. 신방은 이 경의 시작 전에 서문(序文)을 지어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신라 승려인 신방은 삼계교의 중심적 인물이지만 한국불교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 성과가 미진해 〈지장십륜경〉의 한글 번역에 있어서도 신방의 서(序)는 소개가 누락된 실정입니다.
삼계교는 ‘지장교’라고도 부를 정도로 ‘지장사상’을 유포·발전시켰고 신방 법사가 그 핵심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은 지장보살을 주인공으로 하는 〈지장십륜경〉의 제작 스토리를, 경 서문(經 序文)의 제작자인 신방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방은 서문의 전문을 725자로 요약하면서 불법이 정법(正法)을 지나 상말법(像末法)에 해당된 긴박함을 첫 대문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이후 중생들이 〈화엄경〉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사제(四諦, 고·집·멸·도)의 법을 전하지만 이때는 상법과 말법 시기에 해당돼 지혜와 복덕의 시기를 달리하기에 상근기와 하근기의 분별을 고려해 그 질환을 치료하며 삼승(三乘, 성문·연각·보살)의 결과에 도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승과 삼승의 근기들이 다 제각각이어서 “일승삼승의 가마(, 마차) 어찌 그 바퀴를 같이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며 같이 할 수가 없음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즉, 중생의 근기가 다르므로 그 근기에 맞게 처방 또한 달리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장십륜경〉에서의 바로 이 주장은 삼계교의 ‘삼계불법’의 종지가 되고 있으며 〈지장십륜경〉이 말법 중생들의 근기를 치료하는 데 중요한 가르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삼계교에서도 중생의 근기에 맞는 치료라고 하는 것은 ‘대근기행법’이라고 별도로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보살은 성문의 형상을 하고 상왕(象王, 석가)은 출가의 복을 존경하며…(중략)…차토(此土, 중국), 삼보의 종성(種姓)으로 하여금 위덕치성(威德熾盛)하여…(중략)…금강과 같이 견고한 번뇌를 섬멸하므로 금강번뇌의 험장(驗障)이 어찌 일승과 다를 것인가”라는 것은 말법중생의 제도에는 부처의 형상을 한 거룩한 모습보다는, 승려의 모습을 한 지장보살이 더욱 어울린다는 말입니다. 금강처럼 견고한 번뇌도 능히 제멸할 수 있어서, 중생들의 이익에 더욱 합당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장십륜경〉의 계보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경(舊經, 예전의 〈대방광십륜경8권〉)은 연대가 오래됐다.…(중략)…나와 같은 자는 넋을 진채(眞彩)에 잃고, 나와 다른 자는 미소를 담미(淡味)로 한다.…(중략)…털끝이라도 잘못됨을 배운다면, 오르내림의 다른 길 있네. 그것이 어찌 쉬운 길이겠는가?”
이 말은 번역에 있어서 예전과 지금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며 나와 같은 자 운운함은 〈지장십륜경〉을 가볍게 봐 ‘담담한 맛’이라고 하면 안 된다 함을 경고하고 신사상(新思想) 전법의 위험함을 생사왕래에 비유합니다.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문자의 선별과 뜻에 있어서 고심하는 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번역의 시한을 밝히고 있습니다. “신방은 얇은 업으로 진응(眞應,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중략)…종이를 다루어 외려(外慮)를 두절(杜絶)하고 교(敎)를 지극히 힘써, 분집의 주(疇)를 물어(諮) 번역한다. 법주(法主) 중복하여 범문(梵文)을 사룀. 고종(高宗) 영미(永微) 2년 651 신해에 돌아오는 정월 을미년 12월 갑인 일을 끝으로 번역이 끝났다. 시필(始畢) 대개 8품 10권이 된다. 지금 것을 구본(舊本)과 비교해, 다시 밝혀 구본에 없는 문(文)을 모두 여기에 실었다.”
이를 살펴보면 구체적이면서도 경의 번역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장 법사와 범문을 교환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까지 소상히 밝혀, 전체가 중국에서 지어낸 경전이라는 것을 일축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방은 후학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전불 가고 후불 아직 일어나지 않았네. 원컨대 이 가르침 오래 멀고 길게 오는 이에게 건네줄 것을. 세상에 도를 펴는 이여, 어쩔까 생각말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