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산불로 여러 고찰들 피해
조선代 사찰 산감 둬 관리케 해
산사·산림, 한 묶음…보존 터전
전국의 산지에서 발생한 산불에 제16교구본사이자 천년고찰인 고운사가 소실됐다. 고운사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확산된 산불에 의성 운람사도 전각이 전소됐고, 그 외에도 경북과 경남의 산불 확산 지역에 위치한 여러 전통사찰들이 여전히 산불로 인한 재난 위기에 처해 있다.
산불이 사찰을 전소시킨 사례는 역사 기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다만 화재로 인한 소실 기록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집중돼 있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사찰이 화재로 인해 소실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조선시대 사찰의 기록에 화재로 인한 재난 기록이 많다. 그 이전 시대의 사찰들이 대부분 도성 안이나 시가지에 있었던 것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의 사찰이나 지방 중심지에 있었던 사찰들을 대부분 폐사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자연스럽게 산중의 큰 사찰과 부근의 사암들을 중심으로 불교 전통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선 중기나 후기의 산중 사찰들은 산간에 있다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쉽게 산불에 노출됐다. 하지만 실화(失火)로 인한 소실은 예상보다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화전민들의 화전 개척 과정에서 일어난 실화도 산불의 원인이 되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여러 가지 여건상 조선시대의 사찰들은 화재에 취약한 점이 많았다.
결국 대부분의 사찰은 화재로 인한 소실과 같은 비상 상황에 대비한 여러 비책을 강구하곤 했다. 해인사에서는 단오날에 사찰 안팎에 소금을 비치하고 매화산 남산제일봉에 소금단지를 묻는 의례를 벌써 200년 넘게 행하고 있다. 통도사 역시 매년 단오에 각 전각 지붕 밑 평방 위에 ‘염불화방지병(念不火防之甁)’이라는 이름의 소금단지를 올려서 화재를 방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새기고 있다.
단순히 의례이고 상징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재에 약한 산지 사찰의 특성상 적어도 사람의 실수로 인한 화재를 예방하는 마음을 절 안의 대중 모두에게 되새기는 역할을 했다.
그런 정성을 알고 있었기에 조선의 왕실은 사찰 주변의 산림을 관리하고 가꾸고 보존하는 역할을 스님들에게 맡겼고, 스님들은 산감(山監)이라는 직분을 따로 두어서 관리와 보존의 소임을 담당했다. 얼핏 보면 단순히 사찰과 사찰 주변 산림의 관리와 보존인 것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산이란 전통적으로 기대고 의지하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그냥 아늑해서가 아니다. 흉년이 들면 먹거리를 내어주고, 추위가 들면 땔거리를 내어주는 삶의 밑천을 내어주는 곳이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 산이, 사찰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스님들을 품고 있는 산이 온전해야만 인근의 사람들도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고, 추위를 면할 수 있었다. 결국 스님들이 살아가는 사찰 자체가 산감(山監)이었던 셈이다.
산중에 있는 전통사찰들은 그 주변의 산림과 한 묶음이다. 그리고 그 한 묶음이 스님들에 의해 관리되고 보존됨으로써 풀이며 나무며 짐승이며 사람에 이르기까지 함께 삶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었다. 오늘 그 소중한 삶의 터전 한 자락이 무너지고 있다. 그곳에 있는 주민들과 사찰 그리고 스님들의 수행 터전만은 아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기억하고 또 가꾸고 보존해야 할 터전이다. 그 소중한 터전이 오롯이 본래 모습을 되찾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