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정치적 신념 범람 시대
진정한 정견이 무엇인지 고민
구성원의 공익이 최우선 돼야
출가를 지향하는 불교라고 해도 현실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불교의 출가자들은 세속적 가치보다 영원불변한 진리를 추구하며, 불교 신도 또한 현실에서 살아가나 열반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 그 영향으로 불교를 믿는 이들은 세상의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견해 등에 기계적 중립을 지향한다.
20세기 후반 수평적 정권 교체 이후 우리 사회는 좌우 진영의 정치적 대결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전 시대까지는 국토분단과 민족 상쟁의 결과 반공을 앞세운 전체주의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서 다른 의견이 분출될 수 없었으나 비교적 자유로운 정치적 토론 등이 일어나면서 정치 진영 간의 대결이 날로 더해지고 있다고 보인다.
그 정점에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인한 갈등이 아닌가 한다. 논자는 양비론적 처방을 이야기하는 물리적 중도의 관점에서 필설을 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는 불교를 하는 사람이니 불교의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을 뿐이다. 이와 유사한 언급이 경론이 적지 않으나 <칼라마경>의 서사가 눈에 띈다.
어느 때 붓다는 칼라마 인들이 사는 께사뿟따 마을을 방문하였다. 칼라마 인들은 붓다께 이렇게 여쭙는다. “붓다시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께사뿟따에 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칭찬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매도하고 업신여기고 경멸합니다. 다른 사문과 바라문들도 이곳에 와서 각자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칭찬하며,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매도하고 업신여기고 경멸합니다. 붓다시여, 이런 존경하는 사문들 가운데서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저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에 붓다는 이렇게 답하신다. “칼라마 인들이여, 그대들의 의심은 당연하다.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라고 해서, 우리 성전에 씌어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또는 추론으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으로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것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그대들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智者)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자신만이 최상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종교인이나 자신들만이 국민을 위한 최상의 정치이며 행위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신념을 판별하는 기준을 붓다는 제시하고 있다. 그 신념이 구성원 모두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일어나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으로 판별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나만이 옳다는 신념은 모두에게 이익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국가의 법률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 기준이 될 것이다. 종교적 정치적 신념에 대해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정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