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함이 자신을 돌보는 것이고
오온이 공함을 비춰보는 것이 자신을 알아차림이고
공함 알고 오온 내려놓음이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부처님께서 답을 제시해주셨지만,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바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질문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된다고 말하면, 어떤 불자는 “불법(佛法)대로 살다 보면 손해보게 되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손해 보게 될까?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어느 날 나는 〈반야심경〉의 첫 문장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타주의의 대명사 같은 관세음(관자재)보살님이 보살행을 펼치기 전에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위 문장에서 온갖 고통을 극복하는 주체는 바로 관세음보살, 애초에는 관세음보살도 자신의 고통을 구제하는 것이 중요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관세음보살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한번 살펴보자. 출발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게 되며, 결과적으로 온갖 고통에서 건너게 된다. 관세음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행’을 행하자 자연스레 오온이 공한 것을 알게 되었고, 오온이 공한 것을 알게 되자 오온에 대한 집착도 버리게 되었으며, 마침내 온갖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의도적으로 실천한 것은 ‘깊은 반야바라밀다행’일 뿐이니, 그의 자신을 위한 사랑법은 곧 ‘깊은 반야바라밀다행’이라 하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단 한 문장으로만 하라고 하면, 나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라고 답하고 싶다. ‘진정으로’라는 부사어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긴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진실은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기 십상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애착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애착이 자기 혐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로 정리해본다. 첫째,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곧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이다. 둘째, 자신을 알아차려야 한다. 곧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아야 한다. 셋째,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곧 오온이 공한 것을 알아차리고 오온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몸매를 돌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헬스클럽에도 가며, 건강을 위해 영양제도 먹는다. 그러나 이런 자기 관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인지는 의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자아가 사회에 내보이고 싶은 자아인 에고와 진정한 자기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셀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기 관리의 대부분이 셀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에고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산사에 있을 때, 젊은 청년의 49재를 지낸 적이 있다. 부부싸움이 잦은 집안의 젊은 아들이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청년의 불만은 어머니가 할머니나 고모 등 본가 식구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머니의 아들인 자신도 인정받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아내를 사랑하긴 해도 가족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질까 두려워 가족들의 아내에 대한 처우를 강력하게 항의하지 못했다. 시댁 행사가 있을 때마다 청년과 어머니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부부싸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청년은 어린 시절부터 죽기보다 싫었다.
나를 찾아온 청년의 아버지에게 나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자고 제안했다. 사회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자신 이전에 ‘알몸뚱이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랑을 바탕으로 가족들간의 관계도 개선해나가도록 노력해보시라고 제안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니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아내를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아내와의 사이도 좋아졌고, 본가 가족들과 아내의 관계도 개선되었다고 전해왔다. 아내보다는 본가 가족들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는 자아가 에고였음은 물론이다.
불교 교육을 받은 적 없는 한 신도가 어느 날 상담하러 왔다. 한 무당을 알게 되었는데, 그 무당이 자식들이 단명할 운명이니 천도재를 해야 한다고 권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단 하루라도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사는 것이 훨씬 낫다”(〈법구경〉 113송)라는 게송을 전하면서 전화기에서 무당 전화번호 지우고 불교기본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그 신도의 자녀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부처님 시대 빠따짜라는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다가 남편과 아이들을 잃었고, 지친 몸으로 친정에 갔더니 친정집마저 폭우에 휩쓸려간 이후였다. 반미치광이가 되어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게 되었고, 발을 씻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빠따짜라를 격려하면서 읊으신 게송이 〈법구경〉 113송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다. ‘자신’은 몸과 마음으로 나뉘는바, 여기서는 마음에 해당하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실로 온갖 생각의 숲속에서 한시도 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잠깐이라도 자신을 진정으로 휴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1시간 이상은 공원이나 숲길을 산책하고, 자연과 함께 숨 쉬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일과 의무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을 잘 돌보고, 알아차리고, 내려놓는다면, 그는 ‘진정한 이기주의자’다. ‘어설픈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욕망을 챙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오히려 파멸시킨다. 자신을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이가 ‘진정한 이기주의자’다. 새해에는 나도 ‘어설픈 이기주의자’를 떠나 ‘진정한 이기주의자’로 살아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