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유행 장기화…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혼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가르침 전해
현재 사회에 필요한 건 〈금강경〉의 ‘보살 정신’
댓가 바라지않고 보살행 실천하는 한해 보내자
지난 2년 동안 인류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더라도 전세계가 공히 어떤 한 질병에 동시다발적으로 위협을 받은 시대는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2년에 걸친 위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지구촌의 위기가 인류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공부를 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2020년 2월 봉암사에서 안거를 마치고 나올 때였다. 모든 통신을 끊고 지냈던 터라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 대한 감이 오지 않았다. 공주 학림사에서 예정돼 있었던 담선법회(談禪法會)가 취소된 것을 보고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하고, 법회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템플스테이도 진행하지 못했으며, 제등행렬은 물론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도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염병은 집단을 이루고 사는 인간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한 전염병이 이렇게 전(全)지구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실제로 2020년 봄만 해도 더위가 시작되면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염병의 기세에 언제부턴가 전문가들도 코로나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 자체를 하지 않는 형편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물리학자 박권 교수의 책 제목이 시사하는 바는, 어떤 사건이건 일어날 만한 조건이 있어서 일어난 것이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는 왜 ‘일어날 일’이 되었을까?
첫째, 지구촌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함에도 인간은 마치 인간과 다른 생명체,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마치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이용하였다. 나나 내가 속한 집단이 이용하지 않으면 타인이나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이 먼저 이용해버릴까 전전긍긍하면서 경쟁적으로 인간이 아닌 생명체와 자연을 난도질했다. 그 난도질이 오늘의 비극을 낳았다.
둘째,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그 생명체들은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생존해왔다. 그런데 지구의 주인은 오직 인간이라는 생각이 다른 생명체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분별한 개발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인간은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인 것은 아님을 자각해가고 있다.
셋째, 혼자만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해오면서 인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축적할 수 있는 부와 권력도 그리 크지 않았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부와 권력의 규모도 커졌다. 이익의 규모가 커지고 경쟁도 치열해지다보니 자기 자신이나 자신과 입장을 같이하는 집단만 이익을 취하면 된다는 의식도 팽배해졌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는 그것이 바로 모두가 공멸하는 길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접촉하면서 살게 되어 있고, 때로는 나와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과도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만, 자신이 속한 집단만 잘살아보겠다는 기획은 여지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금강경〉의 보살정신이다.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께 “보살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질문한다. 부처님은 “보살은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궁극적인 행복의 길로 인도하되, 내가 인도한 중생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신다. 이 말씀은 이 시대 우리가 살아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첫째,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시하는 것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남을 구제하는 것이 곧 자신을 구제하는 길임을 분명하게 파악하게 된다.
둘째,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여섯 가지 바라밀행, 열 가지 바라밀행이 모두 유용하며,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行願)도 유용하다.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을 우리 시대에 실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남에게 예의를 지키고, 남을 칭찬해주며, 자신이 가진 것을 꼭 필요로 하는 이에게 보시하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먼저 인정하고 참회하며, 남이 잘되는 것을 함께 기뻐해주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며, 누구나 생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 모든 이를 섬기는 마음으로 자신이 지은 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다.
셋째, 보살행을 실천하면서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강조하는 ‘상(相/想)에 머무르지 않는 보살행’이다. 어떤 행위의 대가는 금방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빠른 시일 안에 오지 않는다. 특히 보살행의 규모가 큰 것일수록 그 효과 또한 느리게 다가온다. 대가를 바라다보면, 대가가 오지 않는 것에 분노하게 되면서 보살행의 즐거움은 없어지고 번뇌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보살행을 실천하면, 보살행 실천의 이익만 얻게 되는 셈이다.
넷째, 모든 생명체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인간만이 잘살기 위해 애쓰다보면 다른 생명체를 해치게 되고, 그러다보면 일시적으로는 인간에게 이익되는 것 같지만, 생태계의 불균형이 결국에는 코로나 같은 또 다른 재앙을 가져오게 된다.
우리는 한때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궁극적인 행복의 길로 인도하되, 내가 인도한 중생은 한 명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보살정신이 자신에게는 엄청난 손해가 되면서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는 보살정신은 나를 희생하여 남을 위하는 정신이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 모든 생명체는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행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다. ‘나’나 ‘나의 것’을 주장하지 않고 보살행을 실천할 때 행복해질 수 있지만, 나의 것만을 주장할 때는 남들도 불행해지고 그 영향이 자신에게도 미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불교는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가르치는 ‘진실한 이기주의 종교’라고 말한다. 새해에는 〈금강경〉의 보살정신으로 나와 남, 모든 생명체가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