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인터뷰]차인생 40여년 소장자료 기증한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茶 본질은 ‘정화’…초의차 제다법 집필 원력

초의선사 다맥(茶脈) 5대 계승자
1985년 응송스님에 전다게 받아
‘초의차’ 전통, ‘동춘차’로 이어가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 관련 고문서 등 169건 364점을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식을 하루 앞둔 1월 6일, 서울 운니동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에서 박 소장을 만났다. 맑고 청량한 ‘동춘차’ 한잔 앞에 두고 초의선사에서 범해, 원응, 응송 스님으로 이어진 다풍을 계승하며 40여년 간 오직 차문화 복원과 계승, 연구에 매진해 온 그 인생에 담긴 철학을 들었다. <편집자주>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 관련 고문서 등 169건 364점을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식을 하루 앞둔 1월 6일, 서울 운니동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에서 박 소장을 만났다. 사진=박재완 기자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 관련 고문서 등 169건 364점을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식을 하루 앞둔 1월 6일, 서울 운니동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에서 박 소장을 만났다. 사진=박재완 기자

1월 7일 소장 유물 364점 기증식
초의선사 교유서신·육필저술 등
우리 차문화 계보 드러내는 토대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은 차의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 다맥을 이은 5대 계승자다. 28세 처음 차와 만났고 34세 응송 스님으로부터 전다게(傳茶偈)를 받았다. 이후 전통에 기반한 연구를 통해 한국차 복원과 체계적 정립을 위해 오롯이 한 길을 걸었다.

전통 계승의 원칙에 깊이를 더하는 경험과 학문적 연구는 ‘초의차 제다법’을 계승한 ‘동춘차’에 고스란히 쌓였다. 박 소장이 직접 만든 ‘동춘차’를 구매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판매를 하지 않는 것 역시 전통을 올곧게 지키기 위한 그의 신념이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올해로 벌써 42년이다.

박동춘 소장은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다. 이론과 실증 연구를 통해 체득한 결과물들을 체계화해 대중에 회향하는 작업이다.

1월 7일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이수미)에서 진행된 기증식이 그 첫 걸음이다. 이날 박 소장은 그동안 소장해 온 초의선사 관련 고문서 등 유물 169건 364점을 일괄 기증했다. 응송 스님에게 전해 받은 초의선사 친필서책과 당대 지식인들과 교유한 서신 등이 주를 이룬다. 박 소장이 이후 연구과정에서 확보한 관련 유물도 함께다. 기증된 유물은 박 소장이 지난 40년간 내놓은 기초연구자료들과 함께, 초의선사의 차세계와 역사적 의미·가치를 보다 새롭고 폭넓게 조명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박물관 측은 “기증유물은 19세기 초의선사를 비롯해 그와 교유한 인물들의 정황은 물론 조선후기의 차문화, 풍속, 종교, 문화 등을 풍성하게 담고 있어 우리 문화의 원형을 국내외적으로 알리는데 중요한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번에 기증받은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조사하여 차 문화의 연원과 계보를 연구하고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사업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동춘 소장은 1월 7일 국립광주박물관에 초의선사 관련 유물 일괄을 기증했다. 사진=양행선 광주전남지사장
박동춘 소장은 1월 7일 국립광주박물관에 초의선사 관련 유물 일괄을 기증했다. 사진=양행선 광주전남지사장

또 한 가지 변화는 ‘제다법’의 결집이다. 올해 그는 초의차에서 동춘차로 이어지는 제다법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학문적인 분석과 연구, 전통에 기반한 제다경험 등 박 소장이 40년간 이론과 실전을 병행하며 정립한 제다 이론서다.

응송 스님과의 인연 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차를 만들어 온 박 소장은 지난 40년 세월을 담은 ‘동춘차’를 통해 그 제다법을 공고히 정립했다. 집필작업을 통해 사료에 근거해 익히고 체감하고 분석한 바를 모아, 초의선사를 시작으로 범해, 원응, 응송 스님으로 이어져 온 ‘제다 방법의 실체’를 현대적 언어로 서술하겠다는 원력이다. 매년 논문과 책을 통해 연구 결과물을 수없이 발표해 온 박 소장이지만, 정작 그의 담론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소장은 “이론적인 정립이 어느 정도 이뤄졌기 때문에 실증과 연구적 차원에서 이제는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이를 통해 후대에도 초의선사에서 이어진 전통 제다법이 체계적으로 계승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세월의 깊이를 더한 박 소장의 차세계를 일컬어 ‘전통문화 계승자로서의 경지’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박 소장은 여전히 초심(初心)을 간직한 채다. 생애 처음으로 덖어 유념하고 재건한 ‘첫 차’의 강렬함이 그것이다.

“1979년 응송 스님이 소장한 고문헌 목록 조사를 위해 백화사를 찾은 이듬해죠. 1980년 처음으로 차를 만들었습니다. 어둠이 겨우 가신 부엌에서 응송 스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뜨거운 가마솥에 다솔로 찻잎을 덖었지요. 공부만 하느라 부엌일은 해본 적도 없었는데, 놀랍게도 타지 않았더라고요.(웃음) 밤 12시쯤 응송 스님과 제가 처음 만든 그 첫 차를 마셨습니다. 향기가 대단히 놀라웠습니다. 숨 쉴때마다 향이 솟아오르는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 각인된 첫 차의 느낌이 지금까지도 제가 만드는 차의 기준이자 지향점이 되고 있죠.”

백화사에서의 삶은 단순했다. 매일 아침 차를 우려 마신 후 소장자료 목록조사를 하고 점심 후 또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거나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스님의 자필 원고를 윤문했다. 스님은  학구열이 높은 박 소장에게 <반야심경>을 시작으로 경전 강설을 하며 불교사상을 전하기도 했다. 박 소장이 만들고 우려낸 차에 대해 응송 스님의 지적은 없었다. 다만 “맛이 좋다” “이 차 맛을 누가 알까” 독백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응송 스님은 1985년 박 소장에게 ‘다도전수게(茶道傳授)’를 내렸다.

無傳而傳  無受而受 (무전이전 무수이수)
無傳故眞傳 無受故眞受 (무전고진전 무수고진수)

전함이 없는데 전했고, 받음이 없는데 받았네.
전함이 없으므로 참으로 전했고, 받음이 없는 고로 참으로 받았구나.

을축(乙丑: 1985년) 중춘 3월 5일
전수사 응송/수자자 박동춘


전다게는 우리나라 차문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절 집안에서 내려오는 ‘다풍(茶風)’을, 재가자에게 계승했다는 점에서도 유일하다. 그랬기에 응송 스님은 가능한 가장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이를 전승했다. 전다게와 함께 ‘무공(無空)’이라는 호도 내렸다.

응송 스님이 박동춘 소장에게 내린 전다게. 사진제공 박동춘 소장.
응송 스님이 박동춘 소장에게 내린 전다게. 사진제공 박동춘 소장.

“어렸고 공부와 차만 알지 세상물정은 몰랐죠. 그래서 당시에는 제가 받은 전다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몰랐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스님의 의도를 알았어요. 유발제자인 제가 다맥을 잇는 것에 대해 후대에 혼란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스승의 헤아릴 수 없는 배려였습니다.”

응송 스님은 전다게를 내리며 “초의 스님 연구를 지속하라”고 위촉했다. 그리고 초의스님과 관련한 모든 소장자료를 박 소장에게 전했다. 박 소장은 스님의 친필저술을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원을 세웠고, 1985년 ‘동다정통고’ 초간본을, 2015년 재간본을 발간해 이를 이뤘다.

1990년은 제다의 감각을 새롭게 깨달은 해다. 10년간 매년 응송 스님과 함께 차를 만들어 왔지만, 그해 스님의 입적 후 처음으로 혼자 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초파일 전후엔 항상 스님과 함께 차를 만들었기 때문에 온전히 처음으로 만든 차였다.

“백화사나 극락암에서 스님과 차를 만들 때는 차를 따 가져오는 시간 때문에 항상 밤늦게 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에는 차밭 인근에서 차를 만들다보니 낮에 만들게 됐죠. 가마솥에서 찻잎의 색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첫차는 태우고 말았죠. 그다음엔 눈을 감고 온전히 감각에 의존해 차를 덖었어요. 감각이 살아나니 다시 차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박 소장이 만드는 ‘동춘차’는 긴 세월 조금씩 변화했다. 처음엔 마치 찔릴 것 같은 맑음이었다. 이에 대해 한 시인은 “광목에 풀을 먹인 듯 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동춘차’는 점점 따뜻하고 온화해 졌다. 맑고 투명함을 장점으로 차를 만든 시기를 지나 온화함이 더해진 것이 6년 전부터다.

“차가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의 정점은 ‘정화’라고 봅니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좋은 차는 기본적으로 맑은 동시에 그 느낌은 온화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죠. 결국 온화함이 차가 닿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라고 생각해요.”

제다법으로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범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의식의 반영’이다. 결국 수행의 정도에 따라 드러난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차를 만드는 사람의 의식세계가 차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제게 있어 삶과 차는 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는 초의 선사와 응송 스님의 차 세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박 소장은 초의선사 차의 정수는 불이(不二) 사상과 원융(圓融)에 있다고 봤으며, 이는 응송 스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초의 스님의 <동다송> 마지막에 백운(白雲)과 명월(明月)을 같이 불러, 백운은 방석으로 삼고 명월은 촛대로 삼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만물의 세계이자 저것과 이것이 다르지 않으며 차를 통해 모든 만물이 원융됨을 의미한다는 생각입니다. 응송 스님은 이에 더해 차를 즐기는 수행승의 참맛을 늘 강조하셨죠.”

초의선사가 사용하던 옹기다관과 일지암 인장 사진 등 기증 유물의 모습.
초의선사가 사용하던 옹기다관과 일지암 인장 사진 등 기증 유물의 모습.

박 소장의 길에 함께한 조력자들에게 감사도 전했다. 특히 최완수 간송미술관 미술연구소장은 전통의 계승과 대중화의 간격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차의 본질을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줬다. 상업화를 통해 대중화를 해야 할지, 전통의 정체성을 고수하며 심화연구를 향해야 할지 혼란한 시기, 최완수 소장의 말은 박 소장의 중심을 세우는 하나의 원칙이 됐다. 

“전통문화의 본질을 계승하는 사람은 마치 산에서 솟는 샘물과 같은 존재다. 그 물의 존재는 전통의 기준이 되는 것이지 대중화에 뛰어드는 것은 맞지 않다.”

또다른 조력자의 “차의 진면목을 드러내려면 수행을 통해 경지를 넘어서야 한다”는 조언은 차의 세계를 더 명징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으며, 차가 가진 기운에 대한 식견을 열어준 인연도 있다. 박 소장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조언들이 큰 힘이 됐다”고 감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박동춘 소장에게 과거 전다게를 받으며 응송 스님과 한 약속에 대해 물었다.

“한해도 놓지 않고 논물과 저술을 통해 연구 결과물을 발표해 왔으니 현재까지는 스승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봅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그 약속을 지켜나갈 계획입니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박동춘 소장은…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에서 <초의선사의 차문화관 연구>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과 한국전통문화대학 겸임교수다. 주로 초의선사 관련 연구에 집중하며, 응송 스님에게 전수받은 초의선사의 제다법으로 차를 만들어 전통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작업 또한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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