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승소는 ‘오이 만두’…소박한 재료에 추억 가득”

불가의 ‘승소’란 탐식을 경계하는 수행자들마저 미소로 허락하게 만드는 먹을거리다. 국수와 떡, 두부, 만두 등이 바로 그것이다. 2주에 한 번 ‘승소’를 찾는 새로운 여정에서 이 봄, 제철 음식인 오이와 표고버섯으로 만든 오이만두를 만나본다. <편집자 주>


안경 너머로 보이는 동그란 눈이 가만 웃는다. 자그마한 창문처럼 안경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눈에 한 수행자가 머무는 세상이 있다. 자유와 행복, 그 영원한 꿈을 고스란히 품은 세상. 그곳의 주인과 함께 나눈 어느 봄날의 소박하고 맛있는 이야기. 

스님을 웃게 하는 맛
스님이 웃는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눈이 반짝하고 빛나면, 여지없이 시원한 웃음소리가 함께 울려 퍼진다.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따뜻한 미소의 주인은 바로 지인 스님(장성 백양사 포교국장). 

아주 먼 옛날, 하얀 양들이 법문을 전해 듣기 위해 찾아왔다는 천년고찰. 그 설화를 이름에 담은 백양사에서 스님을 만난 날, 지인 스님은 이제 막 쪄낸 만두를 접시에 담으며 먼 길을 찾아온 객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이 만두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만두입니다. 스님을 웃게 하는 것, 나를 웃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니 금방 떠올랐어요. 이 만두, 정말 맛있거든요(웃음).”

불가의 ‘승소(僧笑)’란 탐식을 경계하는 수행자들마저 미소로 허락하게 만드는 먹을거리. 국수와 떡, 두부,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만두가 바로 그것이다. 

본래 한국 전통의 오이 만두는 조선 후기의 궁중식으로, ‘규아상’ 또는 해삼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미만두’라 불리는 그것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궁중식 오이 만두가 육류와 파, 잣가루 등이 들어가는 것과 달리, 사찰 음식은 오이와 표고버섯, 고추의 단출한 재료가 만들어내는 담백한 맛이 큰 매력이다.

“2019년도 즈음, 당시 성균관대학원 석사과정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었어요. 광주에서 매번 서울까지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기차표값이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사찰음식 전문가 과정이라는 것이 시작되어서, 서울에 가는 김에 뭐라도 더 배워오자 싶어 오전에는 사찰음식 수업, 오후에는 대학원 수업을 받았어요. 그때 이 만두를 처음 알게 됐는데 어찌나 담백하고, 맛있던지(웃음). 그 날부터 저에게 ‘승소’하면 이 오이 만두가 제일입니다.”

누룽지와 아욱 된장국, 그리고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이야말로 최고의 성찬이라는 지인 스님. 그런 스님에게 소박한 재료로 최고의 맛을 끌어낸 오이 만두는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는, 별식 중의 별식이다. 

맛과 추억
음식이란 찰나의 시공간을 저장하고, 추억을 소환하는 기억의 상자와 다름없다. 오이와 표고버섯, 매콤한 고추 한두 개로 만들어지는 이 소박한 만두에도 추억은 연신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견성암에서 처음 출가했을 때 다 함께했던 표고버섯 울력이 있어요. 큰 숲에 참나무를 잘라낸 통나무를 이렇게 펼쳐놓으면, 어느 날 거사님들이 와서 구멍을 탁탁탁 뚫어 놓아요. 그러면 우리 행자들이 가서 그 구멍에 하루종일 표고버섯 종균을 심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많은지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거예요. 표고버섯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 숲과 통나무들, 버섯 종균의 아릿한 냄새까지 지금도 표고버섯 하면 그때가 떠오릅니다(웃음).”

자그만 버섯 하나라도 그에 따른 추억의 크기는 큰 숲 못지않은 법이다. 하물며 오랜 소임을 맡았던 공양간 시절이야 오죽할까. 솥단지에도, 도마 위에도, 저 작은 수저 하나에도 옛 기억은 주렁주렁 담겨 있다.

“제가 출가를 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 재래식이라 불을 때서 가마솥에 밥을 했어요. 거의 100인분의 밥을 끼니때마다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저는 그 소임이 정말 좋았습니다. 세월의 변화도 공양간에서 많이 느꼈지요. 어릴 때는 그 커다란 가마솥 뚜껑을 한 손으로 들었는데, 7년 뒤에는 두 손으로 들어야 하더라고요.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구나, 이제 힘이 빠지는구나 하고 체감하게 되었지요(웃음).” 

학인스님들은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면 종종 경책을 받아 공양간 소임을 살기도 한다. 부처님 공양을 짓고, 대중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곳이니 그만큼 매서운 규율과 책임이 머물기 마련. 어디 신심 나고, 웃을 일만 있었을까.

“견성암 뒷산에 가면 염불 연습도 하고, 잠깐 쉬기도 하는 ‘행자 바위’가 있어요. 혼이 나거나, 너무 힘든 날은 어쩌다 얻은 누룽지를 싸 들고 그곳에 갔지요. 서러우면 이제 먼저 울고, 다음엔 훌쩍거리면서도 누룽지 먹으며 마음을 달래고 돌아오는 거예요(웃음). 한 번은 몸이 너무 아픈데, 마침 절에 사람들은 없고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며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울면서 청소도 하고, 과일도 올리고. 그때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도반 스님이 ‘그래도 스님은 어려서 울기라도 하지, 난 나이가 많아서 울지도 못해’하면서 부러워하던 기억이 나요. 돌아보면 다 추억이 되었어요(웃음).”

지인 스님은 “스님을 웃게 하는 것, 나를 웃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니 오이 만두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지인 스님은 “스님을 웃게 하는 것, 나를 웃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니 오이 만두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배우고 또 배우며
지나고 보니 매 순간 한 걸음, 한 걸음이 행복을 찾는 여정이었다. 출가의 결심을 한 것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또 다음,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이 더 큰 행복으로 가까이 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 행복한가, 어떤 때에 가장 기쁘고 즐거웠던가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함께일 때였어요. 그래서 동국대 이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보육경영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영유아들을 위한 탁아기관을 설립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재학 당시 자료 조사를 하던 중에 소외된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가슴 아픈 경우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그때 불가의 품에서, 자비심으로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그즈음 어린이 포교 활동에 부단히 애썼던 것도 그 꿈을 향한 초석을 다지는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던 지인 스님을 잠시 다른 세상으로 이끈 것은 예기치 못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2019년 광주에 자리한 마하보리사의 주지 소임을 받으며, 난생처음 홀로서기를 시작한 스님. 눈 뜨면 늘 스님들과 함께 살던 생활을 벗어나, 한 사찰의 살림을 꾸리고 대중들을 이끌며 또 다른 공부가 시작된 셈이었다. 

“20년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데 하루아침에 스님은 저밖에 없으니 얼마나 어색하던지요. 외롭기도 하고요(웃음).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뭔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것, 다 이유가 있음을 알았어요.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신도분들을 내 도반으로 삼고 살아야겠다 마음먹었지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의 조바심도, 일이 원만히 진행되지 않을 때의 괴로움이 집착이라는 것. 이 또한 수행자로서 홀로서기를 하며 배운 귀한 깨달음이다. 

“돌고 돌아 다시금 선(禪) 수행, 명상 수행의 귀중함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어요. 내 마음을 비우는 법을 배워야, 대중들에게도 좋은 길을 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간 살면서 배워온 것들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기를 발원하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온전한 행복, 그 자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기를요.”

맡은 소임의 일과를 마친 뒤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지인 스님의 하루. 명상 수업과 요가, 싱잉볼 테라피, 또 다른 스승들과 함께 하는 마음 수행의 시간까지. 그 시작과 끝은 끝내 모두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복잡하고 거창한 맛보다, 소박한 오이 만두가 좋은 이유는 그 담백한 성질에 있다. 화려한 기교 대신 재료의 본질을 지키고, 그 힘이 오롯이 느껴지는 오이 만두. 묵묵히 한 걸음을 내딛는 지인 스님과 어딘가 닮아있는, 스님의 ‘승소’다. 

 

▶한줄 요약 
복잡하고 거창한 맛보다 소박한 오이 만두가 좋은 이유는 그 담백한 성질에 있다. 화려한 기교 대신 재료의 본질을 지키고 그 힘이 오롯이 느껴지는 오이만두. 묵묵히 한 걸음을 내딛는 지인 스님과 어딘가 닮아있는 스님의 ‘승소’다.

지인 스님의 오이 만두 만들기

재료 
오이 6개, 건표고 10개, 청고추 6개, 소금 1TS, 식용유 1TS, 참깨 1TS, 만두피 16장 

만드는 법
1. 오이는 소금으로 문질러 씻은 뒤, 껍질 부분을 돌려 깎아 5×0.5cm 크기로 채 썬다. 
2. 1에 소금을 약간 뿌려주고 살짝 주물러 물기를 제거한 뒤, 달궈진 팬에 식용유를 둘러 재빨리 볶아준다. 
3. 건표고는 물에 불린 뒤 물기를 꼭 짜서 0.5cm 크기로 채 썰고 소금간하여 볶아준다.
4. 청고추는 0.5cm 크기로 다진 뒤 소금간하여 볶아준다.
5. 오이, 건표고, 청고추, 손으로 부순 참깨를 넣고 잘 섞어준다.
6. 만두피에 속재료를 넣고 빚어준다.
7. 끓는 물에 소금과 만두를 넣고 익힌 뒤, 찬물에 헹궈 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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