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 물리는 뜨끈한 신김치 진국 ‘美味’

밀가루 분 퍼지도록 끓여내야
국물 한결 걸쭉하고 간 맞아
신김치 쫑쫑 썰어넣으면 완성

김치진물국수는 칼칼하고 뜨끈한 그 맛에 유독 추운 날, 또 감기 기운으로 으슬으슬할 때면 먼저 찾게 된다는 겨울의 국수다.
김치진물국수는 칼칼하고 뜨끈한 그 맛에 유독 추운 날, 또 감기 기운으로 으슬으슬할 때면 먼저 찾게 된다는 겨울의 국수다.

춘삼월이 다 되었지만 동장군은 끝내 힘을 짜내어 눈보라를 불렀다. 곧 봄인가, 할 즈음이면 기가 막히게 또다시 추워지곤 하는 우리네 겨울.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저마다 긴긴 겨울을 이기는 방법 한두 가지 정도는 가슴에 담고 있는 법이다. 2월의 끝자락에 만난 지견 스님도 찬바람이 불면 불수록 힘을 발하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다. 스님의 오랜 유년의 기억에서부터 살아 있는 추억의 맛.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길 얼큰한 소울푸드, 겨울의 ‘김치진물국수’다.

추울수록 좋은 국수

“추울 때는 김치진물국수를 먹어야지요. 어려서부터 절에서 살았으니 저도 국수를 참 많이 먹었어요. 이 국수는 겨울에 먹으면 정말 좋아요. 끓이는 방법도 너무 쉽고요. 김칫국 끓이다가 그냥 국수 뚝뚝 잘라 넣고 끓이면 되는걸, 뭐. 하하하.”

지견 스님(월명사 주지)의 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이야기 타래가 풀어져 나온다. 청주시 외곽에 자리한 자그마한 사찰 월명사. 그 도량이 한눈에 펼쳐지는 산사 카페의 커다란 창문 너머로 연신 눈보라가 내리던 날이었다.

김치말이 국수, 백김치 국수, 동치미 국수…. 한국인에게 김치 국수라는 것은 수많은 김치 종류만큼이나 흔하지만, ‘김치진물국수’는 다소 낯선 이름. 하지만 말 그대로 김치의 ‘진국’이 우러난 국수라는 뜻이니 어려울 것 없다. 끓이는 법도 그만큼 간단하다.

“절집은 국물 낼 때 다른 것 없어요. 마른 표고버섯 넣고 끓이다가, 잘 익은 신김치 먹기 좋게 썰어 넣어서 팔팔 끓이면 끝. 그러면 김치가 익으면서 맛이 우러나서 별다른 간도 필요 없어요. 정말 간단하죠?”

어지간한 라면보다 끓이기 쉬운 김치진물국수는 밀가루 분이 국물에 잘 퍼지도록 헹구지 않고 그냥 끓여내야 한다. 그래야 국물이 한결 걸쭉해져 빨리 식지 않고, 국수 면에 담긴 염분 덕분에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간이 맞는다고. 팔팔 끓인 채수에 잘 익은 신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국수 한 줌을 반으로 뚝 잘라 넣으면 완성이다. 다 끓인 국수에 마무리로 구운 김만 조금 부숴 넣으면 시원한 김칫국에 구수한 김의 궁합이 좋아 별다른 재료 없어도 맛이 몇 배 더 풍성해진다.

칼칼하고 뜨끈한 그 맛에 유독 추운 날, 또 감기 기운으로 으슬으슬할 때면 먼저 찾게 되는 겨울의 국수. 찬바람이 불 때 한 솥 끓여내어 온 절집 식구가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던 추억의 맛이다.

“옛날에는 라면도 귀하니까 국수 3인분 하면 그 속에 라면을 하나 슬쩍 넣어서 끓였어요. 양은 늘리고 라면 맛도 내려고. 그런데 그게 또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신기하게 국수와 라면이 어우러지면 또 새로운 맛이 나거든요. 진짜 별미라니까(웃음)!”

말괄량이 소녀

“오래전 TV에서 해주던 ‘말광량이 루시’라는 만화가 있었어요. 어릴 적 제 별명이 루시였죠. 온종일 뛰어놀다가 흙투성이가 되면 돌아가신 우리 노스님이 아이고, 하시면서 옷을 갈아 입히고 빨래를 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옛날에는 겨울 빨래를 하면 너무 추워서 손이 쩍쩍 굳어서 붙었어. 그러니 정말 추운 겨울이 되면 방에 커다란 고무통을 몇 개 넣는 거예요. 그리고 한쪽에선 빨래판에 옷을 빨고, 또 옆에 있는 통에서 헹구고. 요즘 어린 친구들이 보면 정말 신기할 거예요(웃음).”

아주 오랜 옛일 같기도, 또 바로 어제의 일 같기도 한 그 시간 속에는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뭐든 야무지게 해내던 어린 날의 지견 스님이 있다. 7살 무렵 큰스님의 손을 잡고 처음 절집에 온 날부터 제 몫을 해내던 그 아이를 은사스님은 오래오래 이야기하셨다.

“하루는 스님들이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데 손님이 오셨대요. 그분이 배가 고프니 밥을 좀 달라고 했는데, 애가 혼자 밥하고 찌개를 끓여서 손님께 내왔다고. 8살짜리가 뚝배기에 감자 넣고 뭘 보글보글 끓여서 밥상을 내오던 모습이 지금도 너무 기억에 남는다 하세요.”

무섭기가 하늘 같았어도 묵묵히 어린 지견 스님의 마음을 헤아리던 은사스님. 그리고 겨울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뛰놀고 온 말괄량이를 안아주던 노스님의 커다란 품. 유난히 씩씩했던 절집 아이는 그날들의 따뜻한 기억을 양분 삼아 어른이 되고, 이제는 또 한 사람의 수행자가 되어 매일 새길을 헤쳐 나간다.

새로운 출발

어릴 적부터 경전을 외우는 것도, 생각도, 일솜씨도 뭐든 빨랐던 덕에 주변에선 이른 출가를 권했지만. 쉬이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절에서 자랐다고 다 출가를 하는 건 아니에요. 절에서 함께 자란 또래 친구들도 다른 삶을 살고자 했으니까요.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을 봤는데, 정신이 번쩍 나더라고요. ‘아이로서 출가하여’라는 대목을 보는 순간, 제 삶의 이유를 깨달은 것 같았어요. 아, 이것은 내 얘기구나, 나는 출가를 해야 한다 하고요.”

막연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차이는 동서남북의 갈래 만큼이나 분명하다. 때로 그 모호한 경계에서 머물거나, 헤매기도 하지만 결국 그 미세한 차이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은 운명의 당사자다. 글에도 생명이 있어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 그 존재를 찾아내는 이들과 인연을 맺는 법. 그날의 한 줄 글귀는 지견 스님에게 자신의 지난 삶과 앞으로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해 준 셈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삶이었다.

유달리 오감이 예민하여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보는 것이 남달랐다는 스님. 음식에 소금을 먼저 넣었는지 설탕을 먼저 넣었는지조차 단박에 구분하는 기술(?)은 출가 후, 진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바로 사찰음식이다.

“서른 살이 됐을 때 도반스님에게 사찰음식 강의를 해보라고 권유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은사스님께서 반대하셔서 접었지요. 그런데 몇 년 후에 또 다른 분이 제안해 주더라고요. 그때 이게 내 운명인가 싶어 어린 시절부터 제가 먹고 자란 레시피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해야 하는 일의 힘

“그냥 열심히 했어요. 사찰음식뿐만 아니라 절 운영에 도움이 되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겠다 싶으면 뭐든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따게 된 자격증들이 나중에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요가 자격증을 취득해서 임산부와 노인, 어린이들을 위한 수업을 하고 명상과 꽃꽂이, 심지어 종이접기와 한식 자격증까지. 혹여 쓰임이 있다면 무엇이든 에둘러 돌아가지 않고 부딪혔다.

“어릴 적부터 절에 살았으니 마늘을 다져본 적이 있어야죠(웃음). 한식 자격증을 딸 때는 맨날 눈 비비고 울면서 파, 마늘 다졌던 기억이 나요. 과연 이걸 내가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참 신기하게도 꼭 필요한 때가 오더라고요.”

절집의 대소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연중 사찰음식 교육을 진행하고, 그간 꾸준히 이어 온 나눔 활동을 체계화하기 위한 협동조합 신설, 일 년에 두 번씩 개최하는 대규모 사찰음식 시식회, 상품개발과 판로 개척까지. 지견 스님의 하루는 그야말로 24시간이 모자라다.

“몇 년 전부터 4개년 계획을 세워 차곡차곡 절집의 기반을 마련했어요. 그 4년 동안 콩나물 하나도 제대로 못 사 먹었던 것 같아.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불사하는 동안에는 사과를 하나 팔아도 금방 다 팔렸어요. 그런데 불사가 끝나니 그만큼은 안 되더라고요(웃음). 부처님 힘이 참 신기하다, 이것이 해야 하는 일의 힘이구나 했지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어서 실천하라. 이런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어떤 세상에서나 안락을 얻는다(소부경전)’ 스님의 하루는 오랜 경전 속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먼 항해를 거쳐 신대륙을 찾은 만화 속 루시가 그런 것처럼, 스님의 하루는 매일 도전의 연속이다. 그리고 씩씩한 주인공이 삶을 개척하는 모든 모험이 그러하듯, 그 여정은 반드시 해피엔딩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날을 향해 오늘도 지견 스님의 모험은 현재진행형이다.

▶한줄 요약

김치진물국수는 밀가루 분이 국물에 잘 퍼지도록 헹구지 않고 그냥 끓여내야 국물이 한결 걸쭉해지고 국수 면에 담긴 염분 덕분에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간이 맞는다. 신김치 쫑쫑 썰어 넣고 마무리로 구운 김 조금 부숴 넣으면 맛이 몇 배 더 풍성해진다.

지견 스님의 김치진물국수 만들기

재료
건표고버섯 4~5개, 다시마(선택), 신김치 1/3포기, 시판 국수, 김 1장.

만드는 법
1. 다시마와 말린 표고버섯 4~5개를 푹 끓여준다.
2. 신김치 1/3포기를 한입 크기로 잘라 1에 넣고, 김칫국물을 적당히 부어준다.
3. 시판 국수 2~3인분을 반으로 잘라 넣고 면이 익을 때까지 끓인다.
4. 국수가 익으면 그릇에 담은 후 구운 김을 부숴서 뿌려주면 완성!

 

지견 스님은 김치진물국수를 “어지간한 라면보다 끓이기 쉽다”고 소개했다.
지견 스님은 김치진물국수를 “어지간한 라면보다 끓이기 쉽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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