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Telling-장애인불자의 ‘예불의 꿈’

평범하게 보이는 신행활동도
장애인 불자들에겐 절실한 꿈
장애를 장애로 보는 건 분별심
관심이 불교·세상을 바꾼다 

▲ 그림 강병호.

보리수 아래 핀 연꽃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장애인불자들의 모임인 보리수아래 회원들이 이 땅에 나투신 부처님을 기리는 날이었다. 다양한 예술공연으로 어우러지는 장애인불자들의 잔치 9회 보리수 아래 핀 연꽃들의 노래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소중한 자리.

공연일인 53, 흐린 날씨 탓에 하루 종일 비바람이 불었다. 뉴스에는 몇 년 만에 불어 닥친 강풍이라며 조심하라는 소식이 지칠 줄 모르고 전해졌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다. 1년에 한 번 있는 중요한 행사였기에 더욱 그랬다. 일찍 공연장에 도착해 공연에 나서는 회원들의 무대를 점검하고 격려하면서도 마음은 줄곧 건물 밖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그칠 수만 있다면. 회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다행히 부처님도 이런 마음을 아신 걸까. 우리의 걱정은 기우였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언제 그랬냐는 듯 비바람은 멎었다. 내내 건물 밖을 서성이던 불안한 마음도 어느새 우리들의 가슴속으로 돌아왔다. 물론 듬성듬성 비어있는 객석을 채울 순 없었지만.

이날 춘천에서 올라온 중증뇌성마비장애인 정상석 씨는 자신의 시 하늘을 사랑할 수 있다면을 낭송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좋아/ 아무리 배고파도 나는 좋아/ 하늘을 안아볼 수 있다면/ 하늘을 품에 안고서/ 고은님 환한 미소로 노래할 수 있다면.

정 씨는 손가락 시인으로 불린다. 이것은 그가 장애로 인해 바닥에 누운 채 손가락을 움직여 시를 쓰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이 별칭에 담겨 있는 도전의 의미는 다른 많은 장애인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시 낭송을 도와준 중앙승가대학 동아리 자비나눔스님들을 향해 띄운 그의 미소는 천만불짜리였다.

지체장애가 있는 김미선 소설가는 허공이 사랑이다’, 뇌성마비인 이순애 씨는 한강’, 고성연 씨는 를 스님들과 함께 낭송했다. 발달장애인 최준 씨는 사랑가와 대장부를 가야금 병창하고, 한사랑파주공동체 지적장애인들의 난타 연주는 흥을 돋웠다. 수화로 무음(無音)의 노래를 들려준 학인스님들과 장애인불자들의 시어(詩語)를 가사로 만든 노래 등 다양한 공연은 같은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됐다.

장애인불자들과 함께 같은 길을 걸어준 이들의 정성, 좋은 공연을 위한 열정, 후회 없는 최선의 노력,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하나 됨이 있을 뿐이었다. 벅찬 감동이 한 방울의 눈물 돼 흘러내렸다. 말은 없어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염화미소가 공연장에 가득했다.

현 조계사 주지인 지현 스님의 원력 아래 결성한 보리수 아래를 이끌어온 지 11. 감회가 새롭다. 물론 지난해에 느꼈던 것과 조금은 다른. 매년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은 우리들의 원력이 끊이지 않게 뒷받침해주는 엄마 같다. 이 마음 더 키워 이제는 장애인 템플스테이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주 마곡사에서 체험한 템플스테이가 장애인불자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회장님, 저는 법당에 있는 부처님 앞에서 진심어린 기도를 올려보는 게 소원입니다. 이것도 욕심일까요?”

지체장애로 인해 휠체어를 타는 한 회원이 나에게 말했다. 비장애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행위를 욕심이 되는 건 아닌지 묻는 그의 말에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마음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남 일처럼 쉽게 얘기하고 싶지도, 현실적으로 도움 되지 않는 응원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였다.

그 소원을 위해 열심히 불심을 닦고 있잖아요. 스스로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간절히 바라고 정진하면 이뤄진다는 것을.”

가슴 먹먹해진 나도 별 다른 대단한 얘기를 해줄 순 없었다. 장애인들이 신행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환경이 어떠한지 알기에.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좋은 얘기를 해줄 수 없는 미안함과 그럼에도 마음 놓지 않고 정진해나가는 모습에 대한 고마움이 복잡미묘하게 얽혔다.

법당에서 예불 보는 것,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값진 법문을 듣는 것, 풍경소리 댕댕거리는 사찰에서 하룻밤 묵는 것. 전부 장애인불자들이 소원처럼 여기는 일이다. 장애 때문에 선뜻 마음 내기가 힘드니 그 바람은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일 수 있겠지만.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고민하다가 서로 힘을 모아 장애인 템플스테이를 기획하게 됐다. 준비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질수록 멀게만 느껴졌던 꿈이 점차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곡사에서 지금까지의 그 어느 날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우리와 함께해주신 중앙승가대 학인스님들은 그 모습 하나하나가 관세음보살의 화신과 같았다. 장애인불자와 스님이 11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난관에 부딪힐 땐 함께 넘고,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이 감격스러웠다. 가본 적 없는 서방정토가 이러할까. ‘스님, 우리 함께 가을 속 피안(彼岸)으로 가요라는 템플스테이 주제처럼 우리는 이날 미혹의 차안(此岸)을 넘어 깨달음의 피안에 다다른 듯 장애라는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법당에서 예불을 올릴 때는 모두 환희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이들이었지만 그런 표정은 나조차도 본 적 없는 감동이었다. 우리는 삼존불 앞에 스님들과 함께였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하나의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예불이 이런 느낌이군요.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법당에서 예불을 봤습니다. 그동안 법당은 저에게 마치 다리 없는 강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곳처럼 멀었어요. 그 거리만큼 저와 불교는 멀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됐네요.”

옆에 있던 한 회원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리곤 눈물 한 방울 툭. 법당 마루에 떨어져 터진 눈물방울처럼 그의 오랜 편견도 깨졌다.

이루기 어려운 것을 가까스로 해냈을 때의 감동은 누구나 그렇듯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해냄이 계속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감동이 아닌 당연한 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그 당연함에 감사한 마음은 묻혀 잊히기 마련이다. 작은 것에 대한 감사함, 눈물을 떨군 그에게서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진심이 느껴졌다.

이날 부슬비 아래 장애인 불자와 스님이 함께 걸으며 나눈 속내는 진실했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한 위빠사나 수행은 번뇌로부터 멀어졌으며, 같이 밥 먹고 잠을 잔 추억은 가슴에 오롯이 새겨졌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내준 스님들이 승가대를 졸업하고, 어느 사찰에서 소임을 맡게 된다면 그 절만큼은 장애인들이 부담 갖지 않고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조금씩 조금씩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을까?

분별심을 내어 장애를 장애로 보면 그것은 장애가 된다. 하지만 장애를 개성으로 보고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 혹자는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포교를 하느냐고 말할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과는 다른 삶, 분명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고 부처님 품안에서 불자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닌 그저 불교가 좋아 모인 장애인들이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할 수 있었던 건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행이 세상을 맑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옆에서 지지해준 스님과 도반들의 아낌없는 격려 덕분이었다.

지난해 가을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 또 다른 희망찬 내일을 꿈꾸던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이 왔다. 함께 템플스테이를 즐겼던 학인스님들이었다. 스님들은 말했다.

그때 그 템플스테이에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됐어요. 참 좋았어요. 우리 다시 템플스테이 하러 가요.”

먼저 손 내밀어준 고마운 스님들, 그렇게 우리는 521~22일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양양 낙산사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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