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왜 사찰서 멀어졌나?

1972420, 장애인을 위해 민간단체에서 시작된 재활의날이 햇수로 45년째다. 1981년 장애인의날로 명칭이 변경되고 장애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지만 유독 사찰에서 장애인을 만나기란 어렵다. 만 중생이 평등하고, 모두 불성의 씨앗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는 불교에 장애인이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계 장애인포교, 문제의 원인과 현황을 진단해봤다. 편집자 주

장애인 종교 불교 7.2%
접근성 결여·사찰 무관심
전법도량 전국 6곳 불과하고
편의시설 법적 강제성 없어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사바세계에서 헤매는 모든 중생을 구제해 생사해탈의 열반에 이르게 하겠다는 사홍서원의 제1서원. 대승불교의 근본 원이며 법회를 비롯한 한국불교 의식을 마칠 때 반드시 외는 서원이다. 우리는 이 서원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을까? 단순히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아 무심코 입으로만 외고 있진 않을까? 앞서 소개된 장애인불자들의 신행이야기에서 그동안 비장애인불자들이 놓치고 있던 중요한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수 250만 명(2014년 기준). 즉 국민의 약 5%는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장애인고용패널조사가 경제활동 가능한 15~75세 장애인을 대상으로 조사, 2014년 발표한 장애인의 종교 유무별 추정 수 및 비율통계에 따르면 90여만 명의 장애인이 종교를 신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는 종교별 장애인 수가 없었지만 2001년 한국갤럽이 발표한 장애인 생활실태 및 장애인에 대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61.5%), 가톨릭(12.6%), 불교(7.2%) 순이었다. ‘천만 불자를 자랑하는 불교에 유독 장애인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에 대한 낮은 인식
지난 20149, 한국불교 1번지 서울 조계사에서 빈곤문제 해소를 위한 시민초청 무차대회가 열렸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와 빈곤사회연대가 공동주관한 이 행사는 기초생활수급자와 노숙자, 장애인 등을 초청한 자리였다. 행사 후 1주일이 흘러 장애인정보문화누리의 논평이 발표됐다. 논평에 따르면 행사에 참석한 청각장애인은 수화통역이 없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동장애인뿐만 아닌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결사본부 관계자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다.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흔히 장애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동에 불편을 겪는 지체장애인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물론 지체장애인이 장애인의 절반가량에 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청각, 뇌병변장애인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기본적인 장애유형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었다면 불거지지 않았을 문제다.

한편 위와 같은 문제는 작게는 아쉬움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장애인불자들이 사찰에서 겪는 고충은 깊은 상처로 남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불심을 다지며 신행을 이어온 시각장애인 김지훈(가명) 씨는 10여 년 전 한 사찰에서 느낀 차별적 대우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이 함께 있으면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비장애인과 같은 법당에서 법회를 볼 수 없었어요. 별도의 방에서 스피커로 법회를 들으라고 했거든요. 시각장애가 있으니 보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거겠죠. 우리도 같은 법당에서 숨 쉬고 법석을 느끼고 싶어요.”

장애로 인해 사찰을 찾아가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그에게 비장애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가슴을 후벼 파는 손톱 같았다. 김 씨는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해 겪으면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법회를 여는 사찰만 다니게 됐다.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장애를 업에 따른 결과라고 받아들이는 불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불자들의 인식이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가늠케 한다.

장애인 신행단체 보리수아래 지도법사를 맡고 있는 법인 스님(일지암 주지)장애인에 대해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느꼈다면서 이런 시각으로 인해 장애인들이 법당에 찾아오는 걸 불편하게 느끼는 불자들이 늘고, 휠체어 법당 출입을 반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불교계 장애인 포교는
불교계에서 장애인 포교를 전담하는 단체는 조계종 포교원 산하 장애인전법단이 유일무이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경찰병원국제어린이청소년 등 기타 전법단에 비하면 활동이 많이 미약한 수준이다. 장애인전법단에 누적 등록된 장애인불자의 수는 약 600.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불자의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2011년 출범한 장애인전법단은 지금까지 불교수화동영상점자경전 등을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이외에 장애인식 개선 캠페인과 성지순례, 문화유적 답사 등을 실시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업 역량이 감소하고 있다. 올해 장애인전법단 사업계획은 <사찰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가이드북> 제작과 해외성지순례, 지역별 장애인불자회 구성 등이다. 하지만 예산의 90%가 성지순례에 집중돼 있어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거나 기타 사업 진행에 있어 소홀할 수밖에 없다. 해외성지순례가 주요 사업으로 자리 잡은 지는 4년째다. 게다가 결과보고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아 포교원도 예산지원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애인전법단 실무를 맡고 있는 이승배 영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기획운영지원부장은 전법단 예산으로는 전담인력을 두는 것이 어렵다. 결국 누군가 실무를 겸해야 하는데 개인 업무에 치여 세심하게 챙기기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장애인전법단은 현재 <사찰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가이드북> 제작을 위해 장애인복지 전문가들로 실무위원을 꾸린 상태다. 올 연말까지 책자 발간을 목표로 집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역별 장애인 불자회 구성은 스님들의 열정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아울러 종단차원의 장애인식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장애인 포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승려연수교육 종단지도자과정에 한국사회와 복지를 주제로 한 강좌가 있지만 개괄적인 현황만을 다룰 뿐이다.

자원봉사활동 실적에 따라 승려 연수점수를 부여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장애인시설은 소외돼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 봉사활동 인증을 요청하는 스님은 월 평균 30~35명이지만 장애인시설 봉사는 10%남짓이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배식봉사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장애인전법도량이 장애인 포교에 앞장서고 있어 다행이지만 6곳에 불과하고,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을 아우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장애인전법도량은 서울 화계사국제선센터광림사, 의왕 청계사, 김포 용화사, 영주포교당이 전부다. 장애인전법도량은 대부분 정기적으로 장애인불자들의 편의를 도와 법회를 실시하고 있다. 전통사찰양식인 경우에는 이동에 도움이 되는 경사로 설치 및 장애인전용화장실 마련 등을, 현대식 도량은 점자 및 수화법회 등에 힘을 쏟고 있다.

특수학교 부재법령 한계도
장애인불자들의 이탈은 불교계 특수학교가 없다는 점에서도 발생한다. 지난해 기준 전국 사립특수학교는 총 92곳이지만 불교계가 운영하는 곳은 없다. 게다가 국내 최초 사립특수학교는 19464월 이영식 목사에 의해 설립된 대구맹아학교이고, 1977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특수학교 역시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기독교계 학교들이었다.

강태봉 한국시각장애인불자회장은 대부분의 특수학교 법인이 기독교계여서 장애인불자들의 종교가 바뀌는 일은 흔하다. 특히 기숙사 생활이 많아 그곳에서 기도문을 외우고, 관련 교리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까워진다“11 결연 등의 혜택도 교회를 다니는 장애인들에게 돌아가 불심을 다지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통사찰의 경우, 문화재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의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종교시설의 편의시설 설치기준은 500이상인 곳에만 해당된다. 이마저도 의무로 설치해야 하는 편의시설은 주출입구접근로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주출입구 높이차이 제거 출입구() 경보 및 피난설비가 전부다. 장애인을 위한 계단 및 승강기를 비롯해 화장실 등은 설치를 권장할 뿐이며, 점자블록이나 유도 및 안내시설 등은 권장사항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얽힌 불교계 장애인 포교는 발전 속도가 더딘 편이다. 사회 역시 타 분야에 비해 장애인 분야의 발전이 뒤처지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범불교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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