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길을 묻는 이에게]자기가 이 세상에 나왔기에 오직 자기 주인공부터 믿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다 깨쳐도 부처님은 한 부처님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겁내지 마시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물러서지 마시고 당당한 마음, 내가 제일이라는 당당한 마음이 아니라
아주 올리지도 말고 내리지도 말고 항상 중심에다가 두십시오.

그림=최주현 작가
그림=최주현 작가

지난 호에 이어서

모두가 공했다면, 여러분 마음은 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느냐면 “마음은 모양이 없느니라.” 그런데 난 애들도 알아듣기 좀 쉽게 하느라고 체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체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게 걸림이 없습니다. 그 마음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 법의 모든 것을 다 결정 지을 수 있는 마음이요, 또 유의 쪽으로는 몸이 행하면서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이렇게 둘 아니게 굴릴 수 있다는 뜻이죠.  

어떤 스님이 또 있었더랍니다. 어떤 스님이 가르치느라고 지금도 낚싯대를, 낚싯밥을 주욱 걸어 놓고는, ‘요기에 모두 걸리지 않나, 걸리나?’ 하고 그렇게 선조들께서 해 놓으셨죠. 천칠백 공안이니 뭐, 여러 가지로 해 놓고, 천칠백 공안밖엔 안 됩니까? 이 세상에 어느 거 공안 아닌 게 없죠. 해탈 아닌 것도 없고 도량 아닌 데도 없고, 나 아님도 없고 모두가 그런 도리죠. 그런데 주욱 앉혀 놓고 하는 소리가 “너, 쌀 아닌 쌀을 아느냐?” 이러니깐 대답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쌀 까지 않은 게 쌀 아닌 쌀이죠.” 했단 말입니다. 허허허. 그것도 맞죠, 맞기야, 응. 하지만 그거하곤 정반대죠. 그래 또 한 사람한테 묻기를 “너는 그 쌀을 씻어서 밥을 할 때에 밥을 하지 않고 밥을 할 줄 아느냐?” 아, 그러고 물으니 “모르겠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한 사람한테 묻기를 “너는 밥 아닌 밥을 아느냐?” 그러니까, 그저 “밥 아닌 밥은 전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저 잡수면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지금 저 처사 말하듯이 “그냥 잡수면 되지 않습니까?” 이러더라는 거지. “음, 너는 그래도 좀 뼈다귀라도 얻은 듯하구나.” 이러더라는 거죠. “저것들은 모습, 가죽도 얻지 못했어.” 그러고. 그랬는데 또 한 사람한테 묻기를 “먹는 사이 없이 먹을 줄 아느냐?” 하고 묻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깐 그 스님은 아무 소리 없이 나가더니 수박 한 통을 턱 쪼개 가지고는 터억 갖다 놓고는 삼배를 올리고 가만히 앉아 있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쳇말로 “대뇌의 잠재의식 쪽, 현재 의식 쪽이 다 계합이 됐구나.” 하더랍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말입니다. “계합이 됐구나!” 이러고선 “너는 참 골수를 얻었구나!” 하는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그때에 껄껄 웃으시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만큼 차이가 납니까, 이게. 

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무걸 떠다 대도 되겠죠. 그리고 이 도리를 공부하면, 책을 보게 되면 벌써 심심하고요, 그 몇 구절 이럭하면 ‘아, 그것이 이런 뜻이구나.’ 하고 뜻으로 나오지 말로, 이론으로 나오질 않습니다. 이론으로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요. 거기 그 뜻에 다 있는걸요. 

그러니 앞으로 이 공부 하는 분들은 좀 더 살림에 끄달리지 마시고, 항상 그렇게 말씀드리죠. 우리 인생은 넓게 보면 나그네요, 좁게 보면 한 철, 찰나, 하루살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하루살이다’ 이런 뜻을 아십니까? 어떠한 뜻입니까? 하루살이다 하는 거는요, 지금 여러분이 하루살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나나 모두. 

시공이 돌아가는데, ‘시공이 없이 돌아간다’ 이 소리는 ‘여러분이 초월해서 돌아가라. 거길 따라서 돌아가라. 여기에 (가슴을 짚어 보이시고) 걸리지 마라.’ 그래서 우리가 하루살이라 해도 그건 말이 안 되죠. 하루도 안 들어가니까. 찰나다 이겁니다. 찰나! 여러분이 찰나찰나 사십디다. 가만히 보니까 금방 드러누웠다 금방 일어났다, 뭐, 금방 전등 켰다가 금방 또 딴 사람 만났다가 금방 딴 사람 만나고 이렇게 찰나 생활을 하시면서도, 하루라는 게 거기 왜 들어갑니까, 네? 그래서 옛날에 그랬다지 않습니까. 하루살이가 모기더러 말입니다, “술 한잔 먹자.” 하니까 모기가 “내일 술 한잔 먹자.” 그러니까 하루살이가 “내일도 있냐?” 그러더라는 거지. 허허허. 

여러분에게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진정코 믿는데도 참 그게 일이 영 안 풀리고 죽겠습니다.” 이러거든요. 그건 모두 당신네들 탓이다 이거야. 왜? 그만큼, 가만히 시험을 해 보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진짜로 자기 주인공을 못 믿기 때문입니다. 한 생각에 자기를 올려놓을 수 있고 한 생각에 자기를 구덩이에다 넣을 수도 있어요. 그래 어떤 사람은 야, 정성을 지극히 들이고 갔는데 고만 자기가 아프거나 고만 일이 안됐거나 이랬다는 겁니다. 그러면 긁어서 부스럼 만든 겁니다, 그게. 왜? 자기가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잘못했느냐? ‘에이, 그것 아리송하고 그거 뭐야? 체계도 없고 말이야.’ 이러고 그냥 불신하고 생각을 할 때 잘못하니까, 그건 자기가 똑바로 가르치려고 자기가 자기를 지금 지도해 나가는 거죠. 그런 걸 모르는 겁니다, 진짜로.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일이 없도록 삐뚜로 나가지 않도록, 오직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자기 주인공부터 믿어야 됩니다. 

내가 항상 그러죠, 자기가 나오기 이전의 영혼은 바로 엄마 아버지의 정자 난자에 배합이 돼서 삼합이 합해져서 탄생을 하는 거다. 임신이 되는 거다. 자기 영혼이 있기 때문에 엄마 아빠의 정자 난자가 한데 합쳐져서 임신이 되는 거지, 만약에 엄마 아빠의 정자 난자가 합해져도 영혼이 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 여러분이 삼신이라고 했고, 삼신이 받아들여야, 삼신이 합해져야 임신을 한다고, 그래서 삼신에게 빌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삼신도 여러분한테 있는 거고 그런 거지 딴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한생각에서 여러 가지 찰나찰나 하시듯이 그렇게 보살의 이름도 많고 부처님의 이름도 많지만,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시고 보살의 그 많은 이름도 바로 부처님의 화신인 이름일 뿐입니다, 다. 그냥, 전체가. 그러니 화신 보살한테 부처님께서는 핵이 돼서 말입니다, 핵이 돼서 위도 아래도 없는 중도의 밥그릇에다가 밥을 한 그릇을 준 것은, 즉 말하자면 보살한테는 칠보가 가득 차 있다 이거죠. 그러니 여러분한테 주고도 줄지 않고,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게끔 항상 내고 들이고 해도 항상 되남더라. 이런 게 보살의 뜻입니다. 이게 부처님의 화신입니다. 모두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보살 따로 있고 부처님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화신들이다’라는 얘기죠. 부처님은 부처님이 아닌 게 부처님이니까. 진리입니다. 하도 이름이 많고 나 아님이 없으니까 뭘로 부처를 세울 게 있어야지. 그래서 부처님이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한 가정의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이렇게 살면서 여러 식구가 그저 찰나찰나 그렇게 돌아가니까, 어떤 거 할 때 아버지라고 할 수가 없죠. 친구를 만났을 때 아버지라고 할까요, 자식을 만났을 때 아버지라고 할까요, 부인을 만났을 때 아버지라고 할까요. 모두가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 한마음의 본래자성불은 한마음이 붙어서 서로 돌아가니까 여러분이 아주 견고한 마음으로써 항상 진짜로 믿고 행하신다면 바로 여러분이 아니 될 게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와서 고라는 걸, 자기 몸에서 고라는 거를 벗어났을 때 얼마나 자유스럽습니까? 어디 가서 털퍼덕 앉아도 하나도 걱정이 없고, 먼지 앉을까 봐 걱정 없고, 먼지가 묻을까 봐 걱정도 없고, 기생이 와서 안겨도 걱정이 없고, 내 마음은 물들지 않아. 취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고 걸리지도 않아. 그런데 여러분은 그저 사랑한다고 한 번만 안기면 그냥 붙들고는 죽자 사자 하고 그러니 사고가 안 나? 응? 벌써 낌새를 채지. 이러니 모두, 허허. 에휴, 에휴, 참! (대중 웃음) 여러분이 바보예요, 모두! 사람 사는 게 그렇게 편리하고 남을 이익하게 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어떤 사람이 이랬더래요. 어떤 한 가련한 어머니,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서 딸이 사는데, 그 딸이 시집도 못 가고 어머니를 공경하기 위해서 너무 착하게 하니까, 어느 스님이 가다가 참, 불쌍하고 안됐거든요. 마음으로나 뜻으로나 그냥 보시를 듬뿍 한 겁니다. 듬뿍 하고 떠났어요. 그랬는데 시집가고 거기서 아들 하나를 낳아 가지고, 그 아들이 장원급제를 했어요. 장원을 해 가지고 살림을 다 해 나가는데 그렇게 편안하게 잘 살더라는 얘깁니다. 그러니 그거는 진짜 행(行) 보시며 바로 마음의 보시가 그렇게 컸던 거죠. 

여러분이 보시를 할 때 이쪽은 이쪽대로 병들게 하고 저쪽은 저쪽대로 병들게 하는 그런 마구니가 되지 마세요. 네? 이런다면 정말 이거는 여러 사람 죽이는 겁니다, 모두.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진짜 보시는 그게 아닙니다. 모두 내가 이런 게 (합장하시며) 다 보시지 보시 좋아하시지 마세요. (대중 웃음) 

그러니까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원효 대사가 파계했다고 그러지만 그것이 보시인 것입니다. 원효 대사가 처음에, 예전에는 장질부사를 많이 앓아서 죽으면 송장을 원두막에다 갖다가 그냥 넣습니다. 넣고는 먹을 거 갖다가 넣고는 돌보지 않습니다. 갖다 버렸지.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 들어갔거든요. 컴컴한 데 거기 들어가서 터억 드러누워서 그냥 곯아떨어졌는데, 아주 목이 말라서 배는 고프고 그랬으니까 얼마나 죽겠습니까? 여러분도 아주 무척 잘 아시는 얘기죠. 그러니까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다른 것은 뭐냐. 거기에 장구벌레가 잔뜩 들고, 물이 그냥 하나 고인 데다가 지붕은 새고 그러니깐 그냥 전부 고였거든요, 썩어서. 그런 거를 맛있게 먹고는 터억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장구벌레가 우글우글하더라는 겁니다. 그럼 그 장구벌레를 물하고 다 먹었다는 얘기죠. 그러니 구역질이 안 나겠습니까? 그러자 구역질을 하면서 생각을 한 겁니다. ‘아하! 그때는 생각을 안 하고 몰랐고, 보지도 않았고 생각도 없었고, 내가 지금은 보고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이 탈이로구나.’ 그러니까 ‘이 생각이 탈이로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곤 아예 이 해골바가지로 인해서 도를 깨쳤으니까 의상 조사는 의상 조사대로 가라고 그러고 자기는 당나라에 공부하러 안 갔던 거죠.  

그러면 그 생각은, 생각을 안 낸 것도 아니고 생각을 낸 것도 아닌데 어떤 생각이 바른 생각이냐는 얘깁니다. 이것도 관문이 될 수 있고 이것도 화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화두를, 이거 배우기 전에 화두를 갖고 하지 말고, 내 몸뚱이를 화두로 알아라 하는 겁니다. 

또 한번은 대안 대사가, 즉 말하자면 늑대 새끼가 죽어서 아, 좋은 데로 가라고 염불을 하려고 그러니까 갖다가 턱 놓더니 젖을 먹이더라 이거야. 그 죽은 데다 먹인 게 아니라 산 새끼한테다 먹이면서 이게 바로 천도다 이거야. 거기에서 또 그것도 화두가 될 수 있고 관문이 될 수가 있죠. 그래서 항상 내가 얘기해 드리죠. 만약에 젖을 먹이는 거는 방편이고, 내가 그 의식을 갖다가 나한테다가 넣었다고 본다면, 둘이 아니라면 그 무명만 죽였지 바로 내가 된 겁니다. 내 속에 넣었으니 내가 된 겁니다.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항상 그러죠. 좋은 데로 가게 하려면은 내 주인공에 넣으면 그대로다. 그대로 요리가 돼서, 벌써 거기서 한 바퀴 굴러 가지고선 천도가 돼서 나가는 겁니다. 나가도 또 줄지 않죠. 넣어도 그건 체가 없는 거니까. 

이렇게 자세히 떠먹여도 모르신다면 난 어떡합니까? 그러니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꺼내도 줄지 않는다. 이 마음은 체가 없다. 의식 자체가 체가 없는 거다. 그렇다면 바로 그러한 도리를 스스로 증득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관문이 될 수 있죠. 화두가 될 수 있고요.

또 한 가지는 무애가도 불렀는데 “도끼 없는 도끼를 어느 누구가 자루를 맞춰 주랴? 그 자루를 맞춰 준다면 기둥 없는 기둥을 깎아서 하늘을 받치련만….” 하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것도 관문이 되고 화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거는 어떻게 생각하죠? 야, “도끼 없는 도끼의 자루를 맞춰 준다면 기둥 없는 기둥을 깎아 하늘을 받치련만” 했습니다. 그랬는데 정말 자루를 맞춰 줬더군요. 아, 그러고선 하늘을 받쳤더군요. 그래서 신라가 그렇게 됐더군요. 그래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울고 있으니까 “원효 대사도 원효 대사답지 않게 눈물을 흘리십니까?” 하니까 “그 눈물 흘리는 거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소?” 했어요.  

여러분이 그 뜻을 잘 아신다면, 앞으로 아주 재빠르게,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우린 역사를 좋게 가져올 수가 없어요. 지금 영국이나 서독이나 내가 알기로는 서독이나 또 미국 사람들도 많이 마음을 갈구하고 있어요. 아주 갈구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절마다 기복이고, 절마다 죄를 씌워 주고 있어요. 한민족이면서도 한 불자면서도…. 가톨릭교, 기독교, 불교 이게 전부 불자지, 불자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불(佛)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 불입니다. 좋은 말 해 주는 거를 교(敎)라고 하니 그러니 바로 벌레 하나도 불교 아닌 게 어딨겠습니까? 

그런데 발로 몇백 번을 뛰어 봤자야 그 자리가 그 자리야, 지금 세대에. 이 마음이 한 번 뛸 때는 저런 타의 국(國)에도, 국이라는 건 지금 시쳇말로는 혹성을 말하는 겁니다, 타국을. 부처님께서는 그때 모두 모르니까 타국이라고 그랬죠. 서천국이니 타국이니 이렇게 말했죠. 그러니 우리가 공부를 하게 되면 타국에서도, 타국 보살들 일체가 다 여기에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찰나찰나 들고 납니다. 우리의 한생각이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렇게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뛰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된다면, 이끌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짜 보살이며 진짜 부처가 될 수 있는 거죠. 부처가 될 수가 있는 게 아니라 한 부처가 되기 때문에, 모두가 부처는 한 부처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이 다 깨쳐도 부처님은 한 부처님입니다. 모두가 한자리니까요. 

그러니 여러분, 항상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겁내지 마시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물러서지 마시고 당당한 마음, 내가 제일이라는 당당한 마음이 아니라, 아주 올리지도 말고 내리지도 말고 항상 중심에다가 두십시오. 중심은 여러분이 깨치지 못했으면 중심이고 깨쳤다면 중도입니다. 또 깨쳤다면 중용이고 깨치지 못했다면은 활용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과 저와 모두 한도량에 한도반으로서 공부하시자는 거지 내가 더 잘났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같이 앉았을 때는 더 잘났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왜? 일체가 둘이 아닌 까닭에요.  

그리고 끝으로 한마디 할 것은, 여러분이 와서 용건을 얘기하고 그냥 대답 들으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가세요. 왜냐? 그것은 비밀이니까 말로는 못 합니다. 여러분이 이 도리를 다 공부하신다면 내 속을 다 알아서 같이 아마 등장할지도 모르죠. 여기서 몸뚱이는 항상 말을 하고 보고 이러면서도 삼매에 드는 도리를 아셔야 됩니다. 가만히 눈 감고 앉아서 드는 것이 삼매가 아닙니다. 눈 뜨고, 그냥 치켜뜨지도 말고 내려 뜨지도 않는 도리가 바로 그게 삼매입니다. 그 도리를 말한 거지 진짜 눈을 그렇게 뜨라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그렇게, 스스로 그렇게 가지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항상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참선이요, 일상생활에서 화두요, 일상생활에서 바로 중용이 나오고 그대로, 나 자신의 생활이 그대로 바로 삼매가 될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이 돼야 되는 거죠. 그래야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여기서는 나가서 일을 하고, 또 나가도 하나로 고정되게 있는 게 아니라 수없이 나투는 거, 수없이 화하는 거…. 천백억화신이 다, 사람들이 산신을 원하면 산신의 모습으로 화해서 응해 주시고, 또 칠성을 원하면 칠성으로 모습을 나투어서 또 응해 주시고, 또는 독성을 그렇게 원하신다면 응해 주시고, 자꾸 몸을 화해서 보이는 그 모습 없는 모습이 자꾸 이렇게 화해 가면서 여러분에게 응해 주신다. 그래서 삼십이응신이 응해 주신다. 이러는데 삼십이라는 거는 숫자로 말할 게 아닙니다.  

그렇게 불가사의한 법, 그거는 저런 혹성도 바로,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이치도 있지마는 만약에 내가 한생각을 하면 타국에 있는 보살들도 또 어떠한 부처님들도 다 한자리를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한생각에 한 찰나에 드셨다가 한 찰나에 나시고 합니다. 이 불가사의한 도리와 법을 여러분이 그냥 지나가신다면 인간 된 도리에 정말이지 그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이 됐다면 그쯤은 알고 가야 되지 않느냐는 얘기죠.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죽은 생각이나 산 생각이나, 모습 없는 사람이나 모습 있는 사람이나 다 응해서 우리가 건질 수가 있는 일입니다. 건지는데 건지는 것도 공해서 내가 한 일이 없노라. 내가 한 일도 아니요, 내가 안 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 그분들 석가세존이나 단군 할아버지나, 우리네 육의 어머니, 아버지, 조상들이 전부 한 분이지 두 분이 아니에요. 내가 있음으로써, 마음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그 조상은 둘이 아니다 이거예요. 내 조상까지도 둘이 아니다 이거야. 내 조상이 본래자성이거든요. 그러니 본래자성불 아버지하고 지금 현재 자기 자식하고 상봉을 하십시오. 모두 상봉을 해야 합니다. 남북이 터져서 상봉을 해야 되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그 한 몸 안에 부(父)와 자(子)가 있으면 한 몸 안에서 따로따로 살아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부와 자가 상봉하시기를 바라면서 이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위 법문은 대행 선사 법문집 ≪허공을 걷는 길≫ 중 1989년 11월 19일 정기법회 법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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