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서 배우자 공식 행사 개최
진우 스님 ‘선명상’ 가르침 전해
사찰음식 만찬‧간화선 체험도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의 불교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 문화외교의 장이었다. 특히 불교계는 법회로 APEC 성공 개최를 기원한 데 이어, 불국사에서 공식 외교 행사가 열리고 특별 만찬에는 사찰음식이 선보이는 등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문화강국의 면모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가장 주목받은 행사는 10월 31일 불국사에 김혜경 여사 주최로 열린 APEC 정상회의 참석 경제체 배우자 행사다. ‘시간을 잇는 다리, 문화를 잇는 마음’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참석해 한국불교를 소개하고 조화와 상생의 가르침을 전했다.
존재의 관계성과 하나됨을 자각하게 하는 선명상을 알리는 시간도 마련됐다. 진우 스님은 “선명상을 통해 우리는 나와 타인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그 순간 내면에서 자연스레 자비심이 피어난다”며 “그 자비의 마음이 널리 확산될 때 이웃과 나라, 나아가 세계는 평화로움 속에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무설전에서 서울 진관사 스님들이 직접 준비한 차를 마시고 직접 다과를 만들며 한국 불교문화를 체험했다. 김 여사는 “천년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여사와 참석자들은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를 배경으로 공식 기념 촬영을 했다.
대통령실은 배우자 행사 장소로 불국사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불국사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이상을 잇는 가교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소로서, 당시 우리 선조들이 추구해 온 이상세계인 불국(佛國)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한 철학이 깃든 곳”이라며 “그런 곳을 APEC 회원 경제체 배우자들이 찾은 것은 각기 다른 문화와 가치를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로 연결하는 상징적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10월 30일 경주 황룡원 잔디마당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특별만찬에서는 사찰음식이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날 만찬은 경상북도가 주최한 공식 환영 행사로, 세계적 기업 CEO와 국제기구 고위 인사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과 식문화 콘텐츠 전문기업 네츄르먼트가 기획‧연출한 특별만찬에서는 제철 식재료와 전통 발효식품으로 만든 3가지 코스 요리와 발우 한상차림, 후식 등이 선보였다.
특히 한상차림은 발우를 모티브로 제작된 그릇에 담긴 연자밥과 배추무된장국, 홍시배추김치, 연근선, 김부각 등으로 구성돼 호평을 받았다. 후식으로는 다식과 주악, 송편, 송차 등이 제공됐다.
선재 스님은 ‘비움의 미학과 공존의 철학’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음식의 본질적 가치와 자연에 대한 존중을 담은 사찰음식의 의미를 설명하고 “공양은 온 우주의 생명을 맑고 건강하게 해주는 식사법”이라고 소개했다.
홍성미 네츄르먼트 대표는 “사찰음식은 한국의 정신문화와 지속가능한 생태철학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며 “이번 만찬을 통해 한국 식문화의 철학적 깊이와 문화적 다양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의 수행법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동국대 WISE캠퍼스(총장 류완하)는 10월 28일 교내 선센터에서 APEC 참가국 CEO와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간화선 체험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한국불교 수행의 정수인 간화선을 통해 ‘마음의 평화’에서 ‘세계의 평화’로 나아가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11개국 100여 명이 참여했다.
수불 스님(안국선원장)이 지도법사를 맡아 실참과 질의응답을 이끌었다. 또 다도와 발우공양 체험도 함께 이뤄져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수불 스님은 “한 번의 체험이 완전한 깨달음을 주지는 않더라도, 깨달음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을 기원하는 법석과 문화행사도 이어졌다. 조계종 제13·14대 종정을 역임한 진제 법원 대종사는 10월 25일 부산 해운정사에서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와 인류 평화를 발원하는 대법회를 봉행했다.
또 부산불교연합회(회장 정오 스님, 범어사)는 10월 26일 범어사에서 ‘2025 팔관회 호국기원법회’를 봉행하고 APEC 정상회의의 성공 개최를 기원했다.
불국사박물관(관장 종천 스님, 불국사 주지)은 12월 7일까지 특별전 ‘솥의 기억, 감춰진 염원’을 열고 고려 불교공예의 가치를 국내외에 알렸다. 경주ICS(회장 황경환)도 11월 1일까지 경주IC휴게소 갤러리에서 ‘경주 APEC 성공 기원 선서화전’을 열고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의 작품을 비롯한 100여 점을 선보였다.
이처럼 이번 APEC 정상회의는 한국불교가 평화의 상생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문화외교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