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소리를 듣고 이리로 저리로 치우치지 마십시오
망상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모든 것을 놓는 데서
나도 없고 분별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분별하고 고집하고 저렇게 분별하고 고집한다면
언제 인간 세상을 벗어나겠습니까.
여러분은 분별을 망상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 분별이 없다면 부처를 이룰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분별은 바로 우리가 성장하는 데에 거름이 되기도 하고 진화를 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마음에 지혜를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단 생각나는 건 모두 망상이라고 생각을 하시니까 그 생각대로 망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에 의해서 여러분을 건지면 여러분 몸속에 있는 중생들도 다 건져질 수 있고, 여러분의 마음이 건져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몸에 있는 중생들의 마음도 벗어질 수가 없어서 건져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행이 그대로 보살행으로 여여하게 돼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미신의 짓을 하면서 행을 똑바로 못 하기 때문에 중생이란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마음공부를 하게 되면 질서도 정연하고, 계율도 일체 다 지킬 수 있고, 시간도 지킬 수 있고, 말도 법으로서 실천을 할 수가 있고 또 도의와 의리,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실천행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유권을 얻어서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분별을 망상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저 바다를 가 보십시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물이 있기 때문에 젖는 것이 있죠? 그 물은 얼음도 될 수 있고 다시 물도 될 수 있고 파도를 일으킬 수도 있고 잔잔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활이자 진리이자 도라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파도가 잔잔하게 가라앉으면 망상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하시고, 파도가 일면 아휴, 또 망상이 떠오른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런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참선이 되겠습니까? 망상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모든 것을 놓는 데서 나도 없고 분별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분별을 놓지 못하신다면 아마도 여러분을 놓지 못하고, 여러분 각자를 놓지 못한다면 일체 끄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보는 대로 망상이고, 보는 대로 망상이 쉰다고 합니다. 쉬는 것도 없고 망상이 일어나는 것도 없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망상이 일어나는 건 뭐며 망상이 가라앉는 건 뭡니까? 그것이 다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항상 말씀드렸듯이 여러분 각자가 이 세상에 나지 않았더라면 고(苦)도 없고 멸(滅)도 없고 세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났기 때문에 모든 게 있는 건데 과거도 생각지 말고 미래도 생각지 마시고, 남의 소리 듣고 이리로 치우치고 저리로 치우치지도 마십시오. 왜냐하면 내가 난 게 태초요, 내 몸뚱이가 난 것이 바로 화두요, 그리고 내 몸뚱이가 난 것이 진리요, 상대와 모든 일체가 다 같이 공존하는 것을 한마음이라고 합니다. 한마음은 어떠한 개별적인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가 한데 합쳐진 것이 한마음입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하나 들어도 같이 들리는 거, 그거를 실천궁행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분별하고 고집하고 저렇게 분별하고 고집한다면 언제 인간 세상을 벗어나겠습니까.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그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무심법행이라고 알고 불심을 바로 무심종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심법행을 그대로 여여하게 하는 것이 그대로 열반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따로따로 분별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고생을 하시고 병고에 휘달리고 부적을 벼개 안에다 넣고 온통 붙이고 자시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신 짓을 안 한다면 미신은 없는 것입니다.
옛날얘기 하나 할까요? 옛날에 김 진사 댁이라고 있었습니다. 광해군 당시일 겁니다. 그런데 그 집이 삼 대째 내내 아들 하나밖에는 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독자도 그냥 끊어졌습니다, 나이 오십이 가까웠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부인은 항상 불공을 드리러 부처님 앞에 안 다닌 데가 없습니다. 불공드리러 다니다 다니다 어느 절엘 가니까 그 절의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직껏 다녀도 다닌 사이가 없고 여직껏 불공을 드려도 불공드린 사이가 없어. 그러니 오늘부터 진짜 불공을 드려라.”
바로 지금으로 치면 자력 신앙을 믿어라 이거죠. “일체가 거기에서 나오는 거니까 일체 거기다 놓고, 생남을 못 하는 것도 손이 끊긴 것도 다 거기에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에다 맡겨 놓아라. 이렇게 믿음을 갖는다면 너한테 이익이 있고 생남을 할 수 있느니라.” 아, 그러시거든요. 그리고 “먼 데로 찾아다니지 말고 가까운 데서, 항상 너희 안방도 법당인 줄 알라.” 하시더랍니다. “하물며 너희 안방뿐이겠느냐. 변소까지도 법당이니라. 네가 변소 안에 있으면 그게 법당이니라.” 그러시더랍니다. 아, 그런데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더랍니다. 하지만 그래도 큰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신 거라 노력을 하고 노력을 하던 끝에 임신이 됐습니다.
임신이 돼서 어린애를 낳았는데, 보니까 아들이라 이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두 부부가 하나는 50이 넘고 하나는 50이 가까웠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거는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이렇게 귀하게 열서너 살까지 길렀단 말입니다. 그랬는데 병이 들기 시작을 하니까 옴쭉을 안 하고 먹지도 않고 다 죽게 생겼습니다. 이제 숨이 넘어가려 넘어가려 하니 그냥 울고 법석들을 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목탁을 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지금 도련님이 다 죽게 돼서 난가가 됐는데 바깥에서 목탁을 치는 중놈이 어떤 놈이냐?” 그러곤 머슴이 달려 나오니까, 그 스님은 머슴한테 말입니다, 아주 각별히 “안녕하십니까?” 하며 아주 코가 땅에 가 닿도록 절을 하더랍니다. 그러니깐 “어떤 놈이냐?” 하던 그 머슴 놈이 가만 생각을 하니까 여직껏 평생을 살아도 그렇게 존대 받아 본 예가 없어요. 그러니 그게 너무 고마워 거기서 그냥 털석 주저앉아서 엎드렸습니다. “세상에, 스님 같은 분이 세상천지에 어디 계십니까? 나는 이날까지 이렇게 늙도록 한 번도, 하다못해 애들한테까지도 존대를 못 받아 봤습니다.” 이거야. 그러니까 거기서 감화를 받았던 거죠.
그래서 극진히 모시고는 안에 대감마님한테 가서 고했습니다. “여기 달같이 밝고 지혜 있는 그런 큰스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니 저 스님이라면 도련님을 낫게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고 가서 고했습니다. 그러니깐 맨발로 뛰어나왔습니다, 급하니까 말입니다. 급하면 다 그러시죠. 평소에는 가만히 웃고 즐기다가도 그리고 고통스러운 것도 고할 줄도 모르다가도 아, 그냥 급하게 되면 그때 가서야 급하다고 그러니 그때는 이미 차는 지나갔죠. 요런 말을 꼭 하고 넘어가야 속이 시원하거든요. 허허허.
그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애가 낫는다면 내게 주겠느냐?” 하고요. “이 애는 부처님께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당신한테 줬어. 그러니 병이 낫게 되면 내게 주겠느냐?”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인이 있다 하는 소리가 “내가 임신하기 전에 태몽을 꿨을 때 어느 스님이 면경 조그마한 걸 하나 갖다가 깨끗이 닦아서 소중하게 간직하라고 갖다 주더라. 그러니 부처님이 갖다 주신 애는 틀림없다.”라고 자기 영감한테 얘기를 급하게 하면서 “아들이 죽는 거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빨리 대답하시라.” 하고 독촉이 심하거든요. 아, 그러니까 아버지도 “사실 부인 말 들어 보니까 죽는 거보다는 낫지.” 하며 쾌히 응낙을 했습니다. 그렇게 응낙을 하고 보니까 얼마 안 있더니 숨을 돌리면서 애가 깨어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 이틀 사흘 만에 툭툭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 중병이 들었던 아들이 말입니다.
그래서 병이 나으면 닷새 후에 올 테니 아들을 달라고 그러고는 갔는데, 꼭 닷새 후에 스님이 오셨더랍니다. 그래서 데리고 갔죠. 데리고 가서 기르는데 무럭무럭 잘 자라서 공부도 하고 나무도 하고 시키는 대로 그저 빨래도 했습니다. 그 도령의 법명은 ‘각성’이라고 하고 법호를 ‘벽암’이라고 했답니다. 그랬는데 그 벽암 행자가 말입니다, 처음에 행자로 들어가서 조그만 게 나무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렇게 일은 시키면서 글공부는 하나도 안 가르쳐 주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러다가 나이 20살이 되어서야 겨우 이제 앉아서 뭐, 말씀도 해 주시고 이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절 생활을 한 지 근 10년이 됐을 때 스님이 사흘 저녁을 내리 말씀을 해 주시면서 경(經)을 내놨습니다. 무슨 경을 내놨느냐.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을 내놓으시고 그것을 설했습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가슴에 탁 이렇게 닿질 않고 자꾸 튕기더랍니다. 그러니깐 스님을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이게 자꾸 튕기니까 말입니다. 스님을 붙잡고 또 사흘 밤낮을 내리 금강경 한 권을 읽고, 화엄경 한 권을 읽고, 또 법화경 한 권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깐에는 그걸 다 읽고 나서는 그 이치는 알겠고 하니까 이제 떳떳하게 되더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지 사흘 후 그 스님은 그냥 열반을 하셨어요. 그랬으니 그분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엉엉 우니깐 어느 노스님 한 분이 오시더니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백성이 풍비박산이 되고 나라가 위태하게 될 테니 내려가 보거라. 무술도 배우고 활도 쏘는 걸 배우고 다 배웠으니 나가서 나라를 건지는 데에 다 바치도록 해라.” 이렇게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한양엘 가서 돌아보니까, 그때 마침 무술 대회가 있다고 하더랍니다. 무술 대회에 가서 무술을 하는데 어떠한 아주 힘이 세고 그런 사람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오랑캐의 장군으로 신분을 숨기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시합을 하는데 오랑캐의 그 장군이 이 사람을 죽이려고 나무칼로 하다가 나중엔 진짜 칼을 달라더라는 겁니다. 진짜 칼로 둘이 싸우다가 이 벽암 스님이 그냥 노리니까 아, 칼도 떨어뜨리곤 그냥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스님을 죽이기 위해서 속이고 와서 무술 시합을 한 겁니다. 그러고는 도망을 가서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무술 시합에 이겨서 장원을 했습니다. 장원을 해 가지고서, 그 뭡니까? 또 잊어버렸죠. 광해군! 그분한테 가서 얘기를 했습니다. “오랑캐가 앞으로 느닷없이 쳐들어올 테니 성도 쌓아야 하고 군사들에게 무술도 가르쳐야 하니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시오.” 하니까 “이렇게 평화스러운데 무슨 오랑캐가 쳐들어오고, 무슨 성을 쌓고, 무술을 가르치고 그러느냐.” 하고 아예 절레절레 흔들더랍니다. 그래서 그만 먼 데로 도로 떠났습니다. 그것도 저것도 다 버리고 말입니다.
떠나서 얼마 있다 보니까 어느 스님이 오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네가 불심으로 무심종을 삼지 못했고, 무심법행으로서의 행을 하지 않았으며, 분별을 끊지 못하고 너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을 해내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빨리 나라를 구하러 내려가거라.” 이러시더라는 겁니다. 그래 내려갔죠. 간단히 얘길 해야지 이거 길어서 안 되겠군요. 그래서 내려가니까 그때는 인조대왕이 광해군을 내쫓고 턱 왕좌에 앉았더랍니다. 그래서 그분하고 상의를 하니까 옛날 그 직을 그냥 주면서 “그럼 빨리 도처에 성을 쌓고 무술을 가르치고 하라.” 이렇게 해서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성을 쌓기 시작한 것이 지금 저 남한산성을 제일 먼저 쌓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나기도 전에 오랑캐가 쳐들어왔습니다.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인조대왕은 그리로 피난을 시켰지만 중전이나 다른 그 일가족은 다 딴 데에 있어서 피난을 못 시켰죠. 그러다가 오랑캐가 다 쳐들어와서는 거기 성도 그냥 에워싸고 쳐들어오는데 군사들이 모두 파김치가 돼 가지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벽암 스님은 이렇게 생각을 한 겁니다. 내가 먼저 말을 타고 나가면 사기가 돋궈지지 않을까 해서 말을 타고 그냥 쏜살같이 나갔습니다.
나갔는데 만난 사람이 무술 대회 할 때에 만난 그 사람이더랍니다. 그 사람이 창이나 칼로 어떻게 해야 할 텐데, 딱 서서는 “스님!” 하더랍니다. 그래서 쳐다보니까 그 사람이 하는 소리가 “나는 스님한테 내 목숨을 건졌어요. 내 생명의 은인이니 내가 군사들을 다 몰고 떠나겠습니다. 그러니 스님은 돌아가시오.” 이러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모두 군사들을 철퇴시키고 그냥 떠났어요.
떠나고 난 뒤에 들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왕은 피난을 시켰지만 왕의 일가족이 다 붙들렸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고만 탁 생각을 한 겁니다. ‘아하 그 스님께서 불심으로 무심종을 삼으라고 그러셨는데, 내가 그걸 미처 생각을 못 했구나.’ 그때는 그렇게 말씀을 해도 여기에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닿질 않은 겁니다. 무심종을 삼으랬고 또 “무심법행으로 그냥 밀고 나가면 너의 모든 백성을 건지고 나라를 건지고 또 중생들한테 전부 불씨를 심어 줄 수 있느니라.”, “마무리가 잘될 것이니라.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회향이 깨끗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거를 그걸 미처 생각을 못 했단 말입니다. “아하, 여기에 있는 걸 그랬구나!” 하고 종적을 그냥 감추어 버렸어요.
그래 이 말씀을 해 주신 스님이 이 얘기를 마치시면서 끄트머리에 하시는 소리가 “얘야! 그 불심을 무심종으로 삼을 때에 전 우주가 들리느니라. 또 무심법행을 할 때 전 우주가 세상 일체 만물만생이 전부 같이 돌아가고 그 돌아가는 자체가 바로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그것이 법으로서 그대로 진행이 되니까 실천궁행이 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러시면서 하는 소리가 “문이 많아서 문이 없고 문이 없어서 문 찾기가 어려우니라. 그러니 문이 많아서 찾기 어렵고 문이 없어서 찾기 어렵고, 이건 무슨 연고냐?” 이거야. 그것도 관문일 수도 있고 바로 공안일 수도 있고 화두일 수도 있다 이겁니다. 그건 그쯤 해 두고요.
그러면 그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문이 없어서 문 찾기 어렵고 문이 많아서 문 찾기 어려운 그 도리를 아시는 분은 손 들고 말씀하세요. 그게 무슨 연고로 그렇게 되는지? (대중 …) 그럼, 여러분은 모두 도인이니까 그대로 아시고요. 그런데 그게 아주 도인일 수도 있고요, 이게 말을 잘못하면 어쩌나 해서 못 하는 수도 있고요, 허허. ‘분별을 놓으랬는데 말이야.’ 하고선 못 하는 수도 있죠. 참 이 선도리(禪道理), 이것은 우물쭈물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디다가 들이대도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선법이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내 안이 서야 당당하고 떳떳하게 깊은 주먹을 내밀 수 있는 그러한 이치가 되겠죠. 그럼 그건 그대로 두고 넘어갑니다.
또 한 가지, 예전에 백장 선사가 이렇게 모아 놓고 설법을 하고 마치셨는데 노인 한 분만 안 가셔요. 이거는 여러분이 지금 스님네들 아니시더라도 다 아시는 겁니다. 아시는 건데 그 뜻은 또 진짜 알기가 어렵죠. 그런데 노인네가 안 가요. 노장이 안 가고 있으니까 누구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그 노장이 하는 소리가, 자기는 과거에 이 절의 주지로 있던 사람인데 어느 학인이 와서 “이 불법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하고 물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은 이렇게 대답을 해 줬다는 거죠. 그 노장 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의 얘기예요. ‘인과에 안 떨어진다’고 그랬어요.
그 말대답 하나가, 불락(不落)이라고 한 대답 하나가 잘못되어서 아, 이거는 오백 생을 글쎄, 여우 몸을 받아 가지곤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스님, 날 좀 살려 주십시오.” 하거든요. “그래, 어떻게 해서 살리느냐.” 하니까 “내가 그대로 스님한테 여쭐 테니 스님이 대답해 주십시오.” 이거거든요. 그래서 고대로 묻더랍니다. 그럼 아시겠죠? 그대로 물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인과에 매(昧)하지 않는다, 매이지 않는다.” 이러고 대답을 하셨거든요. 어둡지 않다, 매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끄달리지 마시라’ 이런 거 얘기했죠. 즉 여여하다는 얘기죠. (중략)
그렇다면 지금 불락(不落)이냐 불매(不昧)냐? 즉 말하자면 인과에 떨어지느냐, 인과에 끄달리지 않느냐? 그것도 관문이 될 수 있고 공안이 될 수 있고, 모두가 공안 아님이 없고 관문 아님이 없어. 문이 없는 까닭에 전체가 문이지.
그럼 그건 그렇게 제껴 놓읍시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 한 송이를 들었다. 가섭존자가 웃었다. 이런 것도 관문이 되고, 그것도 화두가 될 수 있고, 그것도 공안이 될 수가 있는 거죠. 만약에 가섭도 없고 꽃도 없고 그 든 분도 없다면 뭐라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것도 바로 두 번째 관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거는 우리가 그렇게 잘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러한 관문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렇게 여러 가지 말을 한 거는 여러분이 여러 가지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걸 이론으로만 알고 그 도리를 모른다면, 아무리 옆으로 꿰고 위로 꿰고 바로 꿰고 이래도 그건 학설이요, 이론이요, 부처님 제자 될 자격이 없는 겁니다. 부처님 제자 될 자격이 없는데 어떻게 보살행을 하며 어떻게 실천궁행의 법을 그대로 준수할 수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위 법문은 대행 선사 법문집 ≪허공을 걷는 길≫ 중 1989년 10월 15일 정기법회 법문의 일부 정리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