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Weekly 선명상] 38. 선악(善惡)과 업(業)

본디 선악은 없다…업에 따라 나타날 뿐

사바세계 중생들, 업에 의해 살아가
인과의 습관이 우리의 행동 결정해
선과 악 구분하되 감정적 접근 금물
​​​​​​​선입견 갖지 말고 이해심을 가져야 

[오늘의 명상]
솔잎 끝에 매달린 맑디맑은 이슬방울
밝은 햇빛 반짝 닿아 오색 빛이 영롱한데 
이런 생각 저런 감정 소슬바람에 실려 보내니
맑은 마음 풍경(風磬) 소리 이슬방울에서 울리네.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중생들은 각자 자신의 업(業)에 의해 살아갑니다. 업이란 인과(因果, 이것이 원인이 되어 저것의 결과가 생기는)가 습(習)이 되어 버릇이 반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 때로는 즐겁고 괴로우며, 때로는 선하고 악하며, 때로는 정의롭기도 하고 불의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본래 악한 사람이 아니고 악할 수밖에 없는 인연이 닿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악하게 되는 인과의 습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선설(性善說)은 맹자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사람의 성(性)은 선(善)한 것이고, 악(惡)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성악설(性惡說)은 순자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사람의 성(性)은 악(惡)한 것이고, 선(善)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보는 선과 악은 서로 상대적인 업의 모습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선악 모두 사라진 상태를 진공(眞空)이라 하여 업 자체가 없는 것이지만, 사바세계 중생에게는 하나가 생기면 다른 하나가 덩달아 생겨 이내 속진(俗塵)의 업이 발생하고 맙니다. 

중생, 특히 사람은 어느 때는 착하고 어느 때는 악한 경우가 누구에게나 발생하게 됩니다. 다만, 인과(因果)에 의한 인연의 시간(때)에 따라 달리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볼 때에는 ‘지금은 선의 때가 되어 착한 사람이구나’ 또는 ‘지금은 악의 때가 되어 악한 사람이구나’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되 사람을 미워하거나 선입견을 갖지 말고 먼저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과 악으로 접근하면 선악(善惡)은 인과로서 영원히 엎치락뒤치락하게 될 뿐이니, 선은 악을 부르고 악은 선을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악에 대한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곡식과 돌이 섞였으면 돌만 골라서 치우면 될 터인데, 돌을 치우면서 굳이 감정을 실어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악을 부수어 통쾌할 수는 있으나, 악은 또 다른 악의 인과를 낳게 되어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 사바의 모습이고 내 마음의 모습입니다. 악을 부수는 분별의 통쾌함보다는 인과의 순리를 볼 줄 아는 지혜로 현상을 대한다면 선악은 자연스럽게 구분될 것입니다. 

이런 후에 정의로운 자비심과 행동하는 자비행이 저절로 이뤄집니다. 그리된다면 내 자신의 행동은 맑은 마음의 풍경(風磬) 소리 되어 이슬방울에도 아름답게 울리게 될 것입니다.

해당 삽화는 진우 스님의 선명상 게송을 생성형AI에 입력해 제작했습니다.
해당 삽화는 진우 스님의 선명상 게송을 생성형AI에 입력해 제작했습니다.

[오늘의 명상]
무지개는 서로 다른 색깔들 모여 아름답듯이
자연도 사람도 여러 색이 모여 조화로운 것이니
어느 색깔이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다 하겠는가
세상도 사람도 서로 색깔이 다를 뿐인 것을.

세상은 서로 상대적으로 반응하며 움직입니다. 풍요로움이 있으면 메마름이 있고, 맑은 하늘이 있으면 먹구름 덮인 하늘도 있습니다.

번개 치고 파도 일고, 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생기는 것은 지극한 자연의 섭리(攝理)이듯이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건강한 만큼 병이 오고 젊음이 있었으니 늙음이 오는 것입니다.

사람 간에도 시비(是非)와 싸움이 있고, 병란과 전쟁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에 있어서 가뭄과 수해, 지진과 해일이 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바세계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움직임이나 사바세계를 만드는 원인인 마음의 모습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비바람 몰아치고 먹구름이 쏟아내는 폭풍우가 있었으니, 맑은 햇살과 아름다운 무지개가 피어나는 것처럼 세상의 섭리 또한 인과(因果)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는 것 또한 인간이 가지는 권리이자 한계이고 순리(順理)라 할 수 있겠으나, 다만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것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괴롭고 슬프고 불행한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화를 내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자연이나 사람의 마음은 인과에 의한 순리이기 때문에 화를 낸다고 하여 천둥번개가 바뀌어지거나 잔잔한 바다와 파도치는 바다 중에 어느 한쪽만 취할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모습들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결과적 모습들이 잘못되거나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할 뿐입니다. 번개와 지진과 폭풍우와 해일이 잘못되거나 옳지 않다고 보지 않듯이 사람간의 시시비비의 문제 또한 자연의 이치와 다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사람간의 문제에 있어서도 옮고 그름이 아닌, 자연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봐야 합니다. 마치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을 보듯이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스스로의 마음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새는 양 날개로 납니다. 한쪽만의 날개로는 높이 날 수 없고, 오랫동안 날 수 없습니다. 인간사 역시 한쪽은 옳고 한쪽은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적인 마음을 갖지 말고, 무지개 색깔을 보듯 서로 다름에서 오는 조화로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자비의 마음이라 합니다. 자비의 마음은 우리 스스로를 평안하고 편안하게 만듭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