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樂 없는 무분별한 중도심이 ‘부처님 마음’
중생심은 매 순간마다 고락이 교차
욕심이 많을수록 영욕의 마음 커져
1의 마음 가지면 고락도 전부 ‘1’
고락·생사 초월 부처님 마음은 ‘0’
보시와 정진으로 업과 습 끊어내야
[오늘의 명상]
새싹 돋고 잎 피고 열매 맺고 씨앗 되는
나무 한 그루의 일생을 꼭 알고 싶은가.
세월 속 풍상(風霜)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진다네.
모든 만물은 생겨나면 반드시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화려하게 핀 꽃은 아름다웠던 만큼 추하게 사라지고, 이름 모를 야생화는 눈에 띄게 화려하지 않지만 추한 모습 없이 사라집니다. 사람 역시 화려하게 산 사람은 영욕(榮辱)의 파도가 교차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온 사람은 그대로 있는 듯 없는 듯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음을 비워 도를 이룬 사람은 사라질 때도 마음 편하게 사라지지만, 마음을 비우지 못한 사람은 사라질 때도 회한(悔恨)이 가득 찬 상태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중생의 마음이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것과 상관없이 고락(苦樂)의 두 마음이 교차합니다.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편안한 중도(中道)의 마음에 가깝게 되지만, 욕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영욕(榮辱)의 마음이 크게 격동하게 됩니다.
마음을 1에서 100으로 나누자면, 1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즐거움도 1이요 괴로움도 1입니다. 10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즐거움이 10이요 괴로움도 10이고, 100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즐거움이 100이면 괴로움도 100입니다.
고로 부처님의 마음은 ‘0’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도 괴로운 마음도 없는 무분별의 중도심이 부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락의 마음도 초월하고 생사의 마음도 초월한 상태가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인과(因果)란 즐거운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뜻합니다. 즐거운 마음이 원인이 되어 괴로운 마음이 생기게 되고, 괴로운 마음이 원인이 되어 즐거운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욕심을 내어 원하는 바를 이뤄 행복한 마음의 상태가 50이라면, 언젠가는 인과적 과보에 의해 실패에 따른 50의 괴로움도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태어남이 10이라면 사라짐 또한 10이 되고, 뜨는 해가 100이라면 지는 해도 100이 되며, 산을 올라 정상을 밟았다면 내려오는 것 또한 올라간 만큼이라는 뜻입니다.
수행자가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는 이유는 단 1의 마음도 갖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래야 인과를 벗어나고 업(業)을 멸하여 고락도 생사도 사라진 중도의 마음 즉,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중도의 마음만 유지할 수 있다면 굳이 출가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마음을 비우고자 하나 몸에 밴 업습(業習, 습관과 버릇) 때문에 중도심을 유지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두 가지 분별(分別)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것과 심(心)적인 모든 것을 버린 비운 상태가 되거나, 복(福)이라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보시(布施)와 정진(精進), 참선과 기도 수행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명상]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놓아야 하느니
하나를 쥐고 또 다른 하나를 쥐려 한다면
쥐었던 하나마저 잃게 될 것이다.
욕심은 본능입니다. 욕심은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오욕락(五欲樂)이라 하는데, 어느 하나라도 구비가 안 될 때는 괴로움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오욕을 충족하는 것은 곧 즐거움입니다.
다섯 가지 욕심이란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성욕(性慾)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을 가리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먹는 욕심입니다. 우선 먹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을 자려는 욕심입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은 3일 정도 자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생깁니다.
종족 번식과 쾌락을 위한 성욕이며 재물욕은 미리 대비하여 축적을 해 놓으려는 욕심입니다. 추위가 오거나 전쟁이 나거나, 재해가 일어나게 되면 먹고 자는 문제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명예욕은 자신을 과시하려는 우쭐한 마음입니다. 또,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다섯 가지 욕심은 사람이 가지는 본능으로서 너무나 자연스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살 수 없는 절체절명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먹고 자야 살 수 있는 오욕락도 결국 고락사(苦樂捨, 괴롭고 즐겁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라고 하는 삼수(三受)작용의 감정 문제로 귀결됩니다.
배고프면 괴롭고, 배부르면 즐겁습니다. 그러나 괴롭고 즐거운 업의 습기가 먼저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배고프고 배부르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가 고파서 괴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 마음의 습기가 먼저 있기 때문에 배고픈 현상이 따라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괴롭고 즐거운 마음의 분별심을 먼저 없애야 배고프고 배부른 현상도 따라서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분별심을 없애지 않고서는 영원히 배고프고 배부른 현상이 윤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수면욕과 재산욕, 성욕, 명예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오욕락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능적인 마음의 업을 다스릴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마음의 분별심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분별심을 제거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입니다. 현상의 실체가 없으며, 문제의 근원은 현상을 보는 자신에게 있다고 보고,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아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수행 밖에 답이 없습니다. 선명상을 통해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좋고 싫음, 옳고 그름과 같은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욕심은 욕심대로 부리고 살면서 한편으로는 분별심을 없애려고 하는 마음은 애초 성립되지 않습니다.
들이쉰 숨을 뱉지 않고 계속 들이쉴 수는 없듯이,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듯이, 지나친 욕심은 모두 다 잃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일상의 생활에서도 늘 유념하도록 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