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이 시작되는 가을의 길목
마침내 추분(秋分)이다.
지난 3월 봄을 알리던 춘분의 시간. 태양 황경 0도로 시작되었던 절기는 이제 지구 반 바퀴의 여정을 완주하며 ‘추분’이라는 새로운 계절의 관문을 통과한다.
일 년에 단 두 번, 이 두 절기는 서로의 대척점에 서서 낮과 밤의 시간을 똑같이 나눠 갖는다. 하지만 춘분을 기점으로 낮이 길어지고 따뜻한 계절이 시작된다면, 추분은 정확히 그 반대를 향해 나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다르고, 또 닮아 있는 두 세계의 권력 이동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추분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밤은 낮으로부터 힘을 탈환하고 그의 세력을 넓혀갈 것이다. 이제 계절은 완연한 가을로, 또 다가올 겨울과 함께 길고 긴 밤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신비롭고 웅장한 대결은 태양과 지구가 공존하는 한 계속될 터다.
스물네 번의 절기 중 오직 네 절기만이 이처럼 천문 현상과 관련된 이름을 갖는데, 바로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이다. 다른 절기들이 그 무렵 자연의 모습을 본떠 이름을 지었다면, 이 네 절기에는 하늘의 현상이 담겨 있다. 덕분에 이즈음이면 여느 때는 볼 수 없는 자연 현상을 목격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해가 지나는 길을 뜻하는 황도(黃道). 그 길을 따라 나타나는 신비로운 빛무리 ‘황도광(黃道光)’이 바로 그렇다.
9월 하순의 추분. 깊고 어두운 새벽 밤이 되면 저 멀리 동쪽 하늘에서 은은한 광휘가 퍼져 오른다. 마치 동이 트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것이 ‘가짜 새벽’이라 불리는 황도광의 모습이다. 태양이 지구의 적도를 지나는 찰나의 계절, 행성과 행성 사이의 우주 먼지들은 제 몸에 태양 빛을 반사해 거대한 빛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빛은 이 지구별에 닿아 가장 어두운 밤에도 그 곁을 지키는 영원한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바위 위의 성지
“중생이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폭풍이 불어 나찰에 잡혔을 때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나찰의 난을 벗어나게 되나니.”-〈법화경〉
나찰은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악귀다. 푸른 눈에 검은 몸, 붉은 머리털을 지니고 어디에서나 집요하게 죄인을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악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에서 죽음의 화신을 만났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을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금산 남쪽 봉우리 해발고도 681m의 기암절벽 위에 한 천년고찰이 머무른다. 바로 한국의 3대 관음 성지 중 하나인 남해 보리암이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각각 이 땅의 동해와 서해, 남해를 지키는 관음 도량.
고산준령(高山峻嶺)의 험난한 바위산이지만 지금은 산 중턱까지 난 아스팔트 길이 그나마 이 신령한 성지를 찾는 이들을 돕는다. 소백산맥에서부터 뻗어 이어 온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 구역이다.
장대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 대장봉, 형리암, 화엄봉, 일월봉, 삼불암 등 금산을 지키는 웅대한 봉우리들. 그리고 그 비범한 산세에 안긴 보리암. 이곳을 찾은 이라면 누구라도 이 도량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영험한 곳임을 믿게 될 터다.
683년(신문왕 3년) 원효 대사가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의 이름을 ‘보광산’이라 짓고, ‘보광사’라는 암자를 세운 것이 이곳의 시작이다. 이후 조선 현종 때에 이르러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준다[菩提]’는 뜻의 ‘보리암’으로 바뀌었다고.
금산이라는 이름도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오르자, 은혜를 갚는 뜻에서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의 ‘금산’이라는 이름을 내린 것이다.
반드시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명찰의 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장하며 바다를 바라보는 저 해수관음보살의 무구한 모습이 뭇 중생을 끊임없이 이곳으로 향하게 한다.
푸르른 망망대해에서 삶을 일구는 이들도, 깊고 어두운 고해(苦海)에서 홀로 헤매는 누구라도 위로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곳. 이곳에서는 별을 노래하듯, 누구라도 관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별을 보는 집
남해 보리암에는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작은 전각이 하나 있다. 바로 ‘간성각(看星閣)’이다.
‘볼 간(看)’에 ‘별 성(星)’ 자를 쓰는 이곳은 이름 그대로 ‘별을 보는 집’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이 깊은 산중 누각에 올라 밤하늘의 수많은 별 중에서 유독 빛나는 하나를 열렬히 숭배했다.
그것은 바로 카노푸스(Canopus). 아시아 지역에서는 ‘노인성(老人星)’ 혹은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수성(壽星)’, ‘남극수성(南極壽星)’ 등으로 불리는 별이다.
태양보다도 수만 배 밝고, 그 모습이 쉬이 흔들리지 않아 대항해 시대부터 오늘날 우주 항해까지 인류의 나침반이 되어 준 위대한 별.
인류의 삶은 별과 함께 깊어지고, 성장한다. 그리고 이 길고 끈끈한 관계는 천문학적 현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대한 서사시가 되고, 또 간절한 신앙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노인성은 바로 그런 믿음과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옛사람들은 노인성이 나타나면 세상이 태평해지고, 군왕이 장수하며 나라가 안전해진다고 믿었다. 반면, 이 별이 보이지 않으면 군주와 나라의 명운이 위태롭다고 말이다.
어디 군주의 목숨뿐일까. 노인성은 사람들의 수명을 관장하고, 무병장수를 전하는 신이 되어 민중의 삶 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노인성을 우리나라에서 관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위도가 너무 낮아 오직 제주도의 한라산, 남쪽 해안 일부 지역에서만 이 귀한 별님을 찾을 수 있으니까.
남해 보리암은 노인성을 관측할 수 있는 성지(星地)다. 지금은 보리암을 찾는 이들을 반기는 종무소로 바뀐 간성각. 별에 기대어 건강을 기원하고, 국운을 논하는 세상은 나날이 사라져가지만, 변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일 뿐. 저 신비하고 오래된 별은 지금도 깊은 밤 저 작은 누각을 찾아 머물다 가곤 하는 것이다.
완성으로 가는 시간
노인성은 추분과 함께 등장하는 별이다. 매년 9월 추분부터 이듬해 3월 춘분까지 50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만 이 귀한 별을 만날 수 있다.
북극성, 북두칠성과 함께 노인성에 대한 옛사람들의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매년 추분이면 국가 제사를 올리고, 조선 시대에는 추분과 춘분 두 번에 걸쳐 노인성제(老人星祭)를 지내 나라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또 이 별의 모습을 의인화한 노인성도를 그려 귀하게 여기며 부적처럼 곁에 두곤 했다고.
작은 키에 늘어진 흰 수염, 유달리 길고 큰 두상을 지닌 주름진 노인. 술을 좋아해 늘 호리병과 표주박을 차고 다니며 장수를 상징하는 흰 사슴과 학을 타고 다니는 성신(星神). 이것이 수많은 이들이 상상하고 완성한 노인성의 모습이다.
깊은 밤 만인의 길을 밝히고 생명을 관장하는 최고의 별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이 지혜가 되고, 힘이 되어 마침내 완성된 존재.
이제 더욱 풍성하게 차오를 가을도 그러할 것이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저 자연에 관음보살의 자비가, 노인성의 강인함이 머문다. 다시 가을, 추분의 문이 열린다.
▶한줄 요약
춘분과 대척점에 선 절기, 추분을 통해 이제 계절은 완연한 가을로, 또 다가올 겨울과 함께 길고 긴 밤의 시간을 향해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