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대 자원봉사자 그룹
도쿄 엔메이지서 고서 조사
잠들어 있던 ‘대반야경’ 발굴
사찰 부흥 기원하며 經 조성
올 봄, 도쿄 유형문화재 등록
일본의 대학생 자원봉사자 그룹이 지역 사찰에 잠들어 있던 고서 600권을 조사한 결과, 지역 신행활동에서 사용되던 〈대반야경〉임을 밝혀냈다. 이 경전들은 올해 봄, 도쿄도의 유형 문화재로 등록됐다.
봉사그룹을 지도한 후지이 마사코 일본여자대학 교수는 “대학생이 실제 문화재를 조사하고 문화재 등록에 이른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소식을 8월 20일 일본의 ‘윗 뉴스’ 등이 특별보도했다.
경전이 소장된 사찰은 도쿄도 이타바시구에 소재한 엔메이지(延命寺). 약 400년 전에 건립된 진언종 사찰이다. 18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화재로 사찰이 쇠락하곤 했으나 그때마다 지역 주민들의 힘으로 부흥에 성공했다.
지난 2022년 무렵 이타바시구 교육위원회는 엔메이지에 소장된 에도시대의 불화들을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600권의 〈대반야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교육위원회는 사찰문화재의 권위자인 후지이 교수에게 협력을 의뢰, 자원봉사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집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은 약 40명. 조사는 2023년 10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진행됐다. 학생들은 600권의 경을 1권씩 조사해 각 권의 말미에 기입된 시주자의 이름, 거주지, 연도 등을 분석하고, 사진촬영 등을 통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학생들은 경전의 훼손을 막기 위해 조사 중엔 반지 등의 액세서리류를 금지하고 작업자 간의 소통을 위한 자체적인 규칙을 만드는 등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 연구활동에 적용하기도 했다.
조사결과 〈대반야경〉은 약 170년 전, 절의 부흥을 바란 지역 주민들의 발원으로 엔메이지에 봉헌된 것으로 밝혀졌다. 18세기 교토에서 만들어진 황벽판 대장경에서 인경된 목판 인쇄본으로 당시 일본 각지의 사찰에 보급된 판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엔메이지 소장본은 각 권의 말미에 시주자들에 관한 정보가 묵서로 쓰여져 있는 점이 큰 특징이다. 경전을 시주한 이들은 대부분 엔메이지 부근에 거주했던 주민들로 밝혀졌다. 조사에 참여한 일본여자대학 학생 하마구치 카호 씨는 “시주자의 거주지 중에는 현재도 남아 있는 지명도 있어, 조사 중에 ‘내가 아는 지역이다’라는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시주자 가운데는 무사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또 경전이 보관된 상자는 장인이 손수 만든 고급품으로 당시 서민의 다수였던 농민이 사찰의 부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후지이 교수는 “에도시대 지역 불교신앙의 모습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귀중한 성과”라며 “특히 학부생들이 실제 사료를 조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기회인지 알고 진지하게 봉사에 임해 준 것이 이번 성과에 연결됐다”고 평가했다.
박영빈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