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은 세샘트리오가 1978년 발표한 대중가요다. 제목 ‘나성(羅城)’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줄임말인 LA를 음차한 것으로 1970년대 당시 군부정권의 외래어 사용 규제 때문에 ‘LA에 가면’이라는 제목이 ‘나성에 가면’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014년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심은경 배우가 극 중 열창해 한 번 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곡이 됐다. 이 덕에 미국은 가 본 적이 없는 나도 먼 타향의 정취와 향수(鄕愁)의 도시로 LA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다 올해 여름 LA에 방문할 일이 생겼다. 국제포교사회가 숭산 큰스님께서 창건하신 LA 달마사에서 열리는 ‘제1회 자타카 어린이 영어 캠프’의 지도법사로 동행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매년 초 초등학생 불자들이 〈자타카(부처님의 전생담)〉를 영어 스피치와 각종 공연 형식으로 선보이는 ‘자타카 영어 말하기 대회’가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대회에 참석했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국 현지의 한국불교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는 발원으로 올해 처음 열리는 영어 캠프라고 하니 자못 기대됐다.
7월 18일 9명의 아이들과 처음 만나 함께 인천공항에서 LA로 가는 열두 시간의 비행에 올랐다. 입국심사장에서 “All kids are your sons and daughters?”(이 애들이 다 당신 아들딸인가요?)라고 오해 받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고, 한국의 두 배 이상 되는 물가에는 많이 놀랐다. 또 LA 달마사 주지 금선 스님과 달마사 정음한글학교장 우상 스님, UCLA 한국학 방문 연구원 천경 스님, LA 안국선원 주지 웅산 스님 등 많은 스님과 달마사 청년회 등 교민 불자님들의 큰 협조와 보살핌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LA 달마사에서 오전에는 숭산 스님의 전법제자인 폴 박(Paul Park) 법사의 불교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LA 근교의 유명한 관광지인 자연사 박물관이나 그리피스 천문대, 게티 빌라 등을 돌아보며 미국 서부의 정취를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아이들도 금세 친한 동무가 되어 어느새 이동하는 버스 안은 좀처럼 조용할 새 없이 소란스러워졌지만, 그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아이들 웃음소리, 쉼 없이 재잘대는 소리로 도량이 가득 찼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새삼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를 때, 한 명 한 명 아이들을 돌아다보았다. 맏언니같이 의젓한 우현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노래를 잘 부르던 체육부장 시우, 도라에몽 프로펠러 모자가 잘 어울리던 재주 많은 연우, 승부욕이 강한 똑순이 채은이, 장래 희망이 선생님인 재인이, 스케이팅 선수 키다리 소빈이, 여성스러우면서도 터프한 세린이, 비행기 앞 좌석에서 스님을 자꾸 훔쳐보고 씩 웃던 선나, 늘 관심과 사랑이 받고 싶은 동건이.
모두 부처님의 가피 속에 무탈하게 잘 다녀감을 감사드렸다. 이제 ‘나성에 가면’을 들으면 떠오를 아홉 분의 천진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