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진우 스님의 Weekly 선명상] 28. 진정으로 평화롭다면

삼 일 닦은 마음은 한없는 보배다

삼독심 내려놓으면 걸림 없어져
진정 평화로우면 흔들리지 않아
기도와 명상 통해 평상심 유지를
방하착 선명상으로 망상 내려놓길

[오늘의 명상]
날마다 뜨는 해는 흐르는 시냇물 같아
오늘인가 했더니 어느새 내일이 오늘.
날마다 탐하고 성내며 살아온 세월
원하는 것 아직도 남았는데 머리부터 희었네.

“여보아라 청춘들아. 네가 본래 청춘이면 낸들 본래 백발이냐. 백발 보고 웃지 마라.”

청춘이 어느새 백발이 되었다는 회심곡의 내용은 세월이 화살보다 빠르다는 것을 빗댄 비유입니다. 한곳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보면 그 물이 그 물 같아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눈앞의 물은 이미 강물에 닿아 있습니다. 시간도 이와 같아서, 지금 흘러가는 순간을 깨닫지 못하지만, 어느새 우리의 머리는 희어지고, 인생의 뒤편에 다다라 있습니다.

무정(無情)한 세월이라 했습니다. 시간은 그 누구와도 주고받는 정(情) 없이 조용히 흘러갑니다. 내일, 내년, 그리고 내생(來生)까지 벌써 코앞에 와 있는 듯합니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자경문(自警文)>에 나오는 야부 도천(冶父道川)의 게송입니다.
“삼 일 닦은 마음은 한없는 보배요, 백 년을 탐한 물건은 하루아침에 이슬이다.”

이 게송은 마음을 닦아 본래의 자성을 깨달으면 시간은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과 성냄, 망상으로 지내온 시간은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은 결국 욕심이 빚은 결과일 수 있습니다. 욕심이 클수록 우리는 더 많은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고,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됩니다.

삼독심(三毒心), 즉 탐욕, 성냄, 망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마음에 걸림이 없고, 아쉬움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세월이 오고 가더라도 개의치 않고, 머리가 희어져도 상관없으며, 오늘도 내일도, 내생도 결국 지금 이 순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고요하고 평화롭다면, 시간은 더 이상 우리를 흔들지 못합니다. 욕심과 후회를 내려놓는 마음을 기르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기도와 명상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삼독심을 가라앉히고,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게 만듭니다.

놓음(방하착) 선명상은 이러한 마음을 기르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행입니다. 놓음 명상은 욕심과 성냄, 망상을 내려놓는 연습을 통해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도 삼독심을 잠재우고, 욕심과 후회를 내려놓으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껴 보십시오. 우리의 진정한 평화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해당 삽화는 진우 스님 선명상 게송을 생성형 AI에 입력해 제작했습니다.
해당 삽화는 진우 스님 선명상 게송을 생성형 AI에 입력해 제작했습니다.

[오늘의 명상]
힘들게 올라오니 그 희열도 만만치 않으나
내려갈 일이 그리 수월치가 않구나.
오르고 내림에는 고통과 희열이 함께 따르는 법
나의 인생은 어느 각도의 경사를 오르고 또 내려가고 있는가.

오늘의 글은 인과(因果)의 속성을 비유한 내용입니다. 불교의 근본 목적, 즉 성불(成佛)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려 합니다. 부처를 이룬다는 것은 괴로운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괴로움은 왜 생길까요? 그것은 바로 분별심(分別心)에서 비롯됩니다. 분별심이란 이렇다 저렇다 하며 두 가지의 반대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왜 분별이 생길까요?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반대의 하나가 동시에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좋은 마음은 나쁜 마음에 의해 생기고, 나쁜 마음은 좋은 마음 때문에 생겨납니다.

큰 것은 작은 것에 의해 커지고, 작은 것은 큰 것에 의해 작아집니다. 손등이 있으면 손바닥이 생기고, 동전의 앞이 있으면 뒤가 생기는 것처럼, 이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 역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을 인과(因果)라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즐거움, 기쁨, 행복을 추구하지만, 이들을 구하면 구할수록 필연적으로 괴로움, 슬픔, 불행 또한 그림자처럼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윤회(輪廻)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특히 인간관계, 사회적 현상, 국가적 상황, 세계적인 문제 모두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옛날과 지금, 동과 서를 막론하고 인과적 현상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평화, 흥망성쇠의 과정을 반복해 왔습니다. 가정과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필연적인 인과적 인연의 결과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관점이 다르다면 충돌이 생기고, 때로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은 순전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불교의 목적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사슬을 끊는 데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과적 흐름 속에서도 내 마음이 편안한가, 괴로운가의 문제입니다.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어떠한 현상에 부딪치더라도 감정이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좋은 감정조차 나쁜 감정을 부르기 때문에, 감정이 머물지 않는 상태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별된 두 마음은 극락에서도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분별을 일으킵니다. 분별 없는 마음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자체로 평화로운 마음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인욕보살로 계실 때, 가리왕에게 온몸을 난도질당하면서도 분별된 감정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몸에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인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신심(信心)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행임을 보여줍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명상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선멈춤 선명상은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별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고요를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오늘 하루도 마음속의 분별을 내려놓고, 인과의 흐름 속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성불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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