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장보배의 24번의 계절] 13. 소서_영월길을 걷다(下)

불·물 기운 요동치는 여름의 문턱

통일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보덕사 경내 전경.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인 극락보전(왼쪽 첫 번째)과 단종어각(왼쪽 두 번째)이 자리한다.
통일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보덕사 경내 전경.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인 극락보전(왼쪽 첫 번째)과 단종어각(왼쪽 두 번째)이 자리한다.

하지 전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망칠까, 마른하늘 걱정만 했더니 예년보다 빨리 달려온 장맛비 소식에 또 한 번 세상이 어수선하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막연한 침묵뿐. 다만 빗줄기를 헤집고 다가오는 후끈한 열기만이 이 계절을 설명하려 애를 쓴다. 두 얼굴의 여름이 숨 가쁜 몸부림을 시작하는 지금, 소서(小暑)의 시작이다. 
 

작은 전쟁
6월 중순이 지나자마자, 전국 메밀 농가의 피해를 우려하는 뉴스가 연달아 들려온다. 때 이른 장마로 메밀의 수발아 현상이 일어나 수확량과 상품성이 떨어질 상황에 놓인 것이다. 

수발아는 수확 전 메밀의 종실(씨앗)에 싹이 트는 현상으로, 그렇게 된 메밀은 식용 또는 종자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

문제는 메밀 종실이 물에 젖은 후 단 하루라도 기온이 25℃ 이상이 되면 수발아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메밀 수확 시기인 소서 즈음에 장마철이 겹치면, 농가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득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지를 넘긴 여름의 비는 결코 혼자인 적이 없다. 반갑지 않은 더위가 빗줄기 너머, 기어코 함께 오고야 마는 것이다. 


유월은 계하(季夏)이니 소서 대서 절기라네 
큰비도 때로 오고 더위도 극심하다. 
초목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에 물이 괴니 악머구리(참개구리) 소리 난다. 농가월령가 ‘유월령’ 중에서

 

옛글에 남겨진 이 시절의 풍경은 자연의 변덕스러움을, 또 그 안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뭇 생명의 모습을 담담히 전한다. 애타는 농부의 마음이야 어찌하겠는가마는 그저 이런저런 모습을 지닌 계절일 뿐이라고, 그렇게 함께 이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듯이. 

‘작은 더위’, ‘작은 여름’이라는 뜻을 가진 소서는 한 해의 11번째 절기. 태양 황경은 이제 막 100도를 넘어 하지와 대서 사이에 자리한다. 

이즈음은 장마 전선이 한반도 전역에 장기간 머물러 습도가 높고,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는 때. 빗줄기가 잠시 거두어지면 수증기 머금은 대기의 열기가 이른바 여름의 ‘매운맛’이 되어 슬그머니 찾아오는 것이다. 그 뜨거운 가운데 본격적인 김매기는 시작되고, 빗속에서 살아남아 다시 뙤약볕에 익어가는 과일과 작물을 위한 채비로 쉴 틈이 없다. 

7~8월의 가혹한 더위와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기 전, 먼저 다가온 여름은 이미 작은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정화와 재생의 시간
여름은 불과 물의 기운이 함께 요동치는 계절. 이 절기에 빼놓을 수 없는 속절(俗節)이 하나 있다. 

물의 명절이라 불리기도 하는 ‘유두절’은 음력 6월 보름, 올해는 7월 9일에 든 오랜 세시풍속이다. 신라 시대부터 이어진 이 전통은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준말로, 물 맑은 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닦아 액을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신라의 옛 땅인 경상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유두절을 ‘물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래 절기란 중국에서 유입돼 여타 풍속도 그와 동반하는 것이 많지만, 유두절은 우리 땅에서 자생한 고유의 문화다. 조선의 실학자 정동유는 “유두만이 고유풍속이며 그 외의 절일은 중국에서 온 것”이라 전했을 정도. 

이날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동류수(東流水)를 찾는 것은 해가 뜨는 동쪽이 맑고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과거에는 물맞이를 하며 사찰과 논을 찾아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또 연회를 즐기며 이 불의 계절을 맞이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물맞이 풍습이 아주 오랜 시간 불교와 결합해 그만의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인들은 흐르는 물에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유두절에 불교적 의미를 더해 ‘보살계도량(菩薩戒道場)’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국가가 주도하는 보살계에 가장 먼저 나선 이는 당연히 임금이었으며,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이 보살계를 받고 불제자임을 공고히 하는 의식을 치른 것이다. 만백성이 그와 함께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물은 생명. 옛사람들은 때로 정갈한 관욕 의식으로, 또 흐르는 물 아래서 번뇌를 씻고 청정한 새 생명이 되어 다시 살아났다.

 

보덕사 사천왕문.
보덕사 사천왕문.


그 여름의 소년 왕

1457년 6월 28일. 세종의 적장손이자 문종과 현덕 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난 16살의 소년 왕, 단종은 타는 듯한 더위를 뚫고 이제 막 강원도 영월에 도착한 참이었다. 한양을 떠난 지 열흘 만에 당도한 낯선 땅. 청계천 영도교에서 서럽게 울며 헤어진 정순 왕후는 이제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조선 왕조 역대 국왕 중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갖추었다는 단종. 하지만 조부모도 부모도 모두 그만을 남겨둔 채 눈을 감은 상황에서, 권력을 탐하는 악연의 무리에게 단종의 정통성이란 한낱 먼지와 같은 것이었다.

즉위한 지 1년 만에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반강제로 왕위를 빼앗기고, 이어 단종의 복귀를 두려워한 수양 대군은 자신의 조카를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를 보낸다. 

남한강 상류인 서강이 둘러싼 자그마한 내륙의 섬 청령포. 이곳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륙봉(六六峰)의 기암절벽으로 막혀 도망이 불가능한 천혜의 감옥이었다. 

단종이 영월에 도착한 때가 바로 소서 즈음. 내내 더위와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두 달 만에 거센 장마로 인해 영월부 관아를 향해 몸을 옮겨야 했다. 

단종이 유배를 떠난 뒤, 그해 여름은 이상 기온이라 할 만큼 유독 날씨가 궂었다고 했던가. 단종은 섬을 물에 잠기게 할 만큼 강한 장마가 오기 전, 간신히 육지 땅을 밟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삼도천과 다름없었음을 어린 소년 왕은 알았을까. 단종은 그해 11월 숙부에 의해 끝내 목숨을 잃고 만다. 

 

단종어각에 봉안된 단종 어진.
단종어각에 봉안된 단종 어진.

영월 시내와 가까운 영흥리에는 조선 6대 국왕 단종이 잠든 장릉(莊陵)이 자리한다. 선왕릉 중 태조의 건원릉, 중종이 잠든 정릉과 함께 왕후 없이 임금 홀로 묻힌 3기의 능 중 하나. 

단종이 세상을 떠나자 거두는 이 없이 버려진 시신을 영월호장 엄흥도가 몰래 거두고 자신의 가문 선산에 가매장한 땅. 그렇게 이곳은 한 소년 왕의 영원한 쉴 자리가 되어 버렸다. 

그 곁의 고적한 마을 길을 따라 걸으면 나타나는 장릉의 수호사찰, 태백산 보덕사. 통일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창건한 이곳은 영조 때 단종 복권과 함께 장릉 수호사찰로 자리매김한다. 

아늑한 자태의 사천왕문을 건너면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도량, 그 깊숙한 곳에 신비롭게 자리한 사성전과 칠성각,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해우소까지. 보덕사는 장릉 수호사찰의 역사적 의미 외에도 영월 방문 시 꼭 들러 봐야 할 유산으로 가득하다. 
 

영월읍 영흥리에 자리한 조선 단종의 능, 장릉.
영월읍 영흥리에 자리한 조선 단종의 능, 장릉.

그리고 사찰의 중심 전각인 극락보전의 오른편, 바로 그곳에 단종의 어진을 모신 ‘단종어각(御閣)’이 있다. 조심히 전각 안에 들어서자 포르르 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마는 작은 새. 지금도 홀로 이곳에 머무는 소년 왕의 곁을 지켜 주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어진 속 어린 왕의 눈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세상의 어떤 고난도 피하지 않겠노라 말하는 듯 당당한 눈빛이 이 여름의 어느 날을 응시한다. 

다가올 혹서의 여름은 매섭겠지만, 다시 소나기가 내리고 나면 우린 모두 다시 태어날 것이다. 지난 아픔과 번뇌는 모두 흘려보내고 새롭게, 외롭지 않게. 

▶한줄 요약 
‘작은 더위’, ‘작은 여름’이라는 뜻의 소서는 하지와 대서 사이의 11번째 절기다. 옛 사람들은 물맞이를 하고 풍년을 기원하면서 이 계절을 맞이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