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과 하심으로 스스로를 비워내라
탐심이라는 본능으로 괴로워
충족과 만족 있지 않기 때문
본능에 끄달리지 않는 삶은
감정부터 내려놓아야 가능해
기도와 보시로 감정 내려놓길
해당 영상은 조계종 미디어 홍보실 후원으로 불교AI음악 유튜버 곰딴이 제작했습니다.
[오늘의 명상]
산중의 참꽃들은 온갖 시름 달래 주고
보슬보슬 봄 빗방울 굳은 마음 살 녹이네.
달빛 별빛 비추이니 앞날 굳이 궁금치 않고
이런 인연 저런 인과(因果) 달 머금고 구름 가듯.
신심(信心)과 하심(下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불교에 귀의한 출가자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바로 하심입니다. 하심은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마음의 자세를 가지라는 가르침입니다.
삶에서 가장 큰 괴로움은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깁니다. 이를 욕심 또는 탐심(貪心)이라 합니다. 탐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며, 이 본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몸에서 비롯된 본능입니다. 몸이 요구하는 본능이 채워지지 않을 때 괴로움이 생깁니다. 배고픔, 몸의 고통, 성욕의 충족되지 않음, 잠을 못 자는 괴로움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두 번째는 정신에서 비롯된 본능입니다. 정신적인 본능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또 다른 괴로움이 나타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괴로움, 명예를 더 얻으려는 괴로움, 자존심이 상하는 괴로움, 더 뛰어나지 못하는 괴로움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본능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충족이나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를 다 가진다 해도 더 큰 우주를 원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것이 본능의 속성입니다.
육체적 본능과 정신적 본능은 의지가 강하다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억제하거나 참을 뿐입니다. 이러한 본능은 수천, 수만, 수억, 무량겁에 걸쳐 이어져 온 업(業)의 결과입니다. 업은 업식(業識)과 업장(業障)으로 작용하며, 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괴로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움을 줄이는 방법은 있습니다. 바로 신심(信心)과 하심(下心)입니다.
신심은 인과(因果)를 굳게 믿는 마음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업이 돌아오는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욕심, 성냄, 요행을 바라지 않고 그저 바라볼뿐입니다.
하심은 탐진치(貪嗔痴), 즉 삼독심(三毒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본능에 끌려다니지 않고, 끝없는 과보(果報)를 받지 않으려면 감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러려니 하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진정으로 내려놓으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우리가 반드시 믿고 실천해야 할 진리입니다.
기도와 보시, 정진은 이러한 실천을 돕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나의 탐욕과 성냄을 가라앉히고, 보시는 나누는 마음을 키우며, 정진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줍니다.
오늘도 신심과 하심으로 스스로의 본능을 바라보며, 감정을 비우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봄비가 굳은 땅을 녹이듯, 내려놓는 마음이 우리의 괴로움을 녹이고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오늘의 명상]
걱정될 일은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하거늘
과보(果報)를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요,
저지른 일은 이미 결과(과보)가 정해졌으니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걱정과 근심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욕심에 있습니다. 욕심은 단순히 크고 지나치게 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작고 사소한 바람, 심지어는 착한 결심과 바람조차도 욕심에 해당됩니다.
‘바르게 살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욕심 부리지 말아야지’와 같은 생각도 욕심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바람이 생긴다는 것은, 이미 그 반대되는 모습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바람이라도 이루어진다면, 그것에 대한 과보(果報)가 따라오게 됩니다.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인과(因果)의 법칙입니다. 작은 욕심에는 작은 근심이, 큰 욕심에는 큰 걱정이 따라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착한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언젠가 착하지 않은 마음을 경험하게 되고, 올바른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올바르지 못한 마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결국 빈자의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이 업식(業識)의 인과입니다.
우리가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원하고 바라는 마음, 즉 욕심 때문입니다. 바람과 욕심이 작을수록 근심도 작아지고, 욕심이 클수록 걱정도 커집니다.
예를 들어, ‘내일 아침에 해가 뜨지 않으면 어쩌나’, ‘저녁에 해가 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해가 뜨지 않거나 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인과와 인연에 따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미 저질러 놓은 일들은 과보로 나타날 것입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겸허한 마음으로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괴로움과 걱정을 줄이고자 한다면, 욕심을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라거나 원하는 마음을 줄이고, 모든 것을 인과와 인연에 맡기는 신심(信心)을 길러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욕심을 줄이지 않고는 그 어떤 재주나 요령을 써도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을 통해 마음의 분별심을 잠재우고, 마음을 비워나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가 짊어진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지금 내게 닥친 모든 일은 내 업(業)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평화가 시작됩니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지나갈 것입니다. 기도와 명상을 통해 욕심을 내려놓고, 과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평온한 하루를 만들어 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