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강소연의 수행 다이어리] ‘존재의 감옥’서 탈출하는 법

개가 달 봤다, 이제 달이 개를 본다. ⓒ강소연
개가 달 봤다, 이제 달이 개를 본다. ⓒ강소연

10. 바탕자리(2)

불교란 존재(개념 또는 덩어리)를 분해해서 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현상을 꿰뚫어 보아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요소들과 과정들’을 파헤친다. 그러면 ‘무상·고·무아’라는 진리가 드러난다. 대상을 꿰뚫어 그 실체를 보는 마음을 빤야(통찰지)라고 한다. 막연히 ‘내 몸과 마음’이라고 인식했던 ‘덩어리’를 빤야로 ‘분해’해 보면, 그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끊임없는 만남과 그것의 무상한 전개임을 알 수 있다. 

이 전개를 오온(五蘊, 색-수-상-행-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는 한, 6근과 6경의 끊임없는 만남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만남(촉, 觸)’을 통해 ‘느낌(수, 受)’이 일어나고, 이는 ‘인식과 분별(상, 想)’을 일으켜 ‘좋다 또는 싫다’로 반응(행, 行)하게 된다. 인식과 분별 작업에는 에고로서의 나(말라식)와 무의식(아뢰야식)이 이미 개입되어 작용한다. 그것은 ‘알아차림’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탐진치(貪瞋癡)’로 반응한다. 

‘나’라는 ‘존재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이것과 저것이 만나 연기(緣起)되어 일어난 것에 대해 ‘취착’하면서, 다양한 오염 요소들(불선심소)이 줄줄이 작용하여 고통이 전개된다. 내 몸과 마음, 이것을 덩어리로 인식하는 한(즉, 분해해서 보지 않는 한) 그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존재’라는 것은 모두 ‘조건 지어져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서로서로 맞물려 족쇄 채워진 조건들의 감옥이다. 이것과 저것이 만나 결속되어 일어나는 것을 연기(緣起)라고 한다.

붓다께서는 통찰지로 모든 존재의 결박을 보셨기에 ‘존재는 고(苦)’라는 진리를 천명하셨다. 다시 정리하면, 우리의 실체는 ‘조건의 결박으로서의 덩어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는 그 자체로 감옥이다. 그것이 감옥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자유는 없다. ‘존재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 붓다이시다. 존재(덩어리)를 해체해서 보는 방법! 그것은 ‘사마타+위빠사나’〔정혜쌍수定慧雙修 또는 지관겸수止觀兼修〕다.

사마타 수행이란 하나의 대상에 몰입함으로써 몸에 붙어있는 의식을 (몸으로부터) 분리시켜 마음을 해방시키는 작업이다. (6근과 6경의 만남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동요의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잡아매어 둔다. 지속적 집중으로 마음의 분리가 일어나고 마음은 절대 고요에 든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대상을 꿰뚫는 빤야(통찰지)가 발사된다. 빤야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마타가 필수이다. ‘사마타’를 한자로 번역하면 ‘정(定, 고정하다, 안정하다)’ 또는 산란한 마음을 멈춘다는 의미로 ‘멈출 지(止)’가 된다. 빤야는 ‘통찰하여 깨닫다’라는 의미로 ‘혜(慧)’로 번역된다.

‘나’로부터 ‘의식의 분리’가 필수!
사마타의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하나의 집중 대상(집중점)을 형성하고 마음을 그것에 고정시킨다 → ②(자꾸 산만해지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집중 대상에 부단히 붙여놓는다 → ③그 상태를 유지하면 대상이 뿌옇게 흰 구름처럼 보인다(니밋따) → ④대상이 점점 커지고 투명해지고 밝아진다 → ⑤(의식이 대상에 붙어 있으므로, 몸이 의식으로부터 놓여나서 자연 상태로 돌아가) 몸의 정화가 일어난다. → ⑥(‘나’는 사라지고) 대상만이 홀로 찬란하다(무량광 또는 여의주). →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만 있다. → ⑧끝없는 바탕의식(반응 없이 아는 마음)과 하나가 된다(그 자리에서 ‘나와 세상’을 관조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집중 대상에 의식을 붙여둠으로써 의식이 (더 이상 ‘나’에게 붙어 있지 않고) ‘분리’가 일어나고, 대상에 붙어 있던 그 의식마저 떨어져 나가고, 결국 바탕의식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마타의 과정을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심(尋, 일으킨 생각) → 사(伺, 지속적 고찰) → 희(喜, 분리에 따른 희열) → 락(樂, 괴로움도 기쁨도 없는 지극한 평온한 사념청정捨念淸淨)으로 말씀하셨다. 

개가 달 봤다, 이제 달이 개를 본다
이 과정을 ‘개와 달’에 비유해 보겠다. 평생 냄새를 쫓아 바닥만 킁킁대던 개가, 누군가(선지식이) 천공의 달을 가리키자 처음으로 고개를 든다. 그리고 달을 응시한다. 킁킁대는 분주한 행위는 평생을 욕망(또는 집착)의 노예로 자각 없이 사는 나의 모습이다. 천공의 달을 응시하는 행위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사마타 수행이다. 계속 끈질기게 달을 응시하니, 개에게 붙어있던 의식이 분리되어 달에게 가서 붙는다. 의식은 개로부터 분리되어 달과 하나가 된다. 이제는 반대로 저 아래에서 킁킁대는 개를 내려다본다. 달빛은 지상의 개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비춘다. 달은 창공 그 자체가 되어 세상을 관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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