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힙하게’(2023)
생활환경 변하면서 ‘동물권’ 인식 생겨나
불교는 일찍이 동물에 불성 있다 가르쳐
수행자 발원 담아 보리·수리로 이름 지어
2022년 말 기준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552만이라고 한다. 이 숫자를 인구로 계산하면 어림잡아도 1324만 명이 넘으니 대략 우리나라 사람의 3분의 1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셈이다. 반려동물과 지낼 때 가장 바라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그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고 답한다. 보통의 경우는 눈빛이나 표정, 몸짓으로 교감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아파서 힘들어할 때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그래서 떠오른 오늘의 드라마는 ‘힙하게’이다.
봉예분(배우 한지민)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와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처럼 수의사가 된 예분은 외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동물병원을 이어받았다. 작은 농촌 마을인 무진시에서 동물병원이라 함은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보살피는 ‘가축병원’. 가축에 관심이 전혀 없는 예분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꾸리고 싶어한다.
어느 날, 마지못해 출장을 간 소 농장에서 출산이 임박한 황소의 엉덩이를 만지며 새끼를 촉진하는 순간, 농장에 유성이 떨어지고 예분에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동물의 엉덩이를 만지면 동물이 보고 들은 일이 보이는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처음엔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하던 예분은 열다섯 살 늙은 개 덕구가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할아버지가 안타까워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사연을 할아버지에게 전하며 비로소 초능력의 쓰임새를 발견한다. 덕분에 줄을 설 만큼 동물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과연 이 초능력이 사람에게도 발휘되는지 확인하려는 예분. 문제는 이 초능력이 엉덩이를 만져야만 발휘된다는 점이다. 고민하던 예분이 일부러 만원버스를 골라 실험하는 순간, 문장열(배우 이민기) 형사에게 성추행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만다.
한편, 광역수사대 형사였던 장열은 어떤 사건의 결정적 용의자에게 속아 촌구석 무진시 강력반으로 좌천되어버렸다. 그러니 어떻게든 강력사건을 해결해서 성과를 인정받고 광역수사대로 복귀하는 것이 유일한 장열의 꿈이다. 그런데 만원버스에서 남자의 엉덩이를 만지던 예분을 체포했더니, 엉덩이를 만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본다며 자기가 초능력자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이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한 장열의 입장에서는 예분의 능력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서울로 복귀하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만 같다. 이렇게 이 둘이 힘을 합쳐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며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힙하게’의 주요 내용이다.
지금은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익숙해지고 가족처럼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반려’라는 개념보다는 ‘애완’이라는 말이 보편적인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개를 예로 들어보자. 개는 그저 마당에 목줄을 하고 앉아 있다가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짖어대고 학교 갔다 돌아오면 꼬리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하는 동물이었다. 낡고 찌그러진 양은 그릇에 사람이 먹다 남은 밥을 먹여 키우고, 그 집을 지키는 ‘가축’이었던 것이다.
진정한 애완견(愛玩犬), 그러니까 ‘장남감 개’는 우리가 사는 집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생겼다. 마당 있는 집을 찾아볼 수 없게 되면서 개들도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개가 요긴해졌다. 애완견은 미용실에서 목욕과 치장을 시켜주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해주어야 하며 사료를 따로 먹여야 했다. 같은 방에서 함께 사니 얼굴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덩치도 작으니 안아주기도 쉬워서 접촉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자연스럽게 개를 ‘내 아이’라고 부르게 되고 사람들은 저절로 ‘엄마’와 ‘아빠’가 된다. 아파트 생활에 맞게 함부로 짖지 않고 용변을 가릴 줄 아는 예의 바른 ‘아이’로 자라게 하려면 교육도 필요하고, 하루 종일 혼자 둘 수 없으니 강아지 유치원도 성행 중이다.
세상의 이런 흐름을 타고 ‘TV동물농장’(2001)과 ‘주주클럽’(2002~2009), ‘와우! 동물천하’ (2002~2003)와 같은 방송이 생겨나면서 ‘동물의 왕국’(1969)이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1984~2004)와 성격이 전혀 다른 동물의 세계를 전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간이 흐를수록 개는 ‘애완’이 아니라 ‘반려하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고 주변의 동물들과 평화롭고 조화롭게 함께 살려면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즉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진작부터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도 하고 산천초목이 설법을 한다고도 말해왔다.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남달랐던 것이다. 유명한 동물 훈련사들이 방송에 나와서 동물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전부터 모든 생명이 우리처럼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며, 또 그런 만큼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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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반려동물에게 불교식으로 이름을 지어준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조주 스님 덕분에 사찰에 사는 개 이름이 ‘무(無)’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 화두를 챙기고 싶은 수행자의 발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보리(菩提)’라는 이름도 괜찮아 보인다. 보통 반려견을 부를 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리!” 하고 시작하면 “보리, 보리, 보리!”의 3연타는 기본이다. 반려견을 한 번 부를 때마다 보리 진언을 세 번 염송하는 셈이다. 듣는 보리도 밑바닥에 감추어져 있던 보리심을 일으켰으면 싶다. ‘수리’라는 이름도 좋을 것 같다. “수리, 수리, 수리!”를 부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저절로 정구업진언을 염송하게 된다.
평균적으로 13년 전후를 사는 반려견은 대체적으로 인간보다 먼저 떠나게 마련이니 그들의 생과 사를 모두 ‘내’가 함께 하는 셈이다. 그들의 짧은 생은 어쩌면 끊임없이 변하는 무상의 이치를 우리에게 알려주는지도 모른다. ‘보리’라는 이름에는, 세상의 많은 보리가 금생의 보리 진언 공덕으로 내생에는 생사를 벗어나 축생의 탈을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이별의 슬픔은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이 많은 만큼 크다. 가정의 달이나 되어야 사람 가족을 만날 일이 아니라,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지 않으면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만큼도 슬프지 않은 민망함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드라마 ‘힙하게’가 우리에게 하는 말처럼.
“중요한 건 초능력이 있고 없고가 아니었다. 그 사람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 당장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표정을 읽고, 말을 건네 보시라. 그러면, 초능력 없이도 소중한 이들의 진심을 알 수 있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