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최원섭의 불교, K-드라마로 만나다] 스스로 부처임을 알면 매일 꽃이 핀다

 6 ‘동백꽃 필 무렵’(2019)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 살아온 ‘동백’
“고맙다”는 용식 덕에 본래 모습 되찾아
서로를 부처님으로 보면 불국토 세계 열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최근 임상춘 작가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공개되었다. 이 드라마는 1960년부터 지금까지 오애순(배우 이지은)과 양관식(배우 박보검)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를 다룬다. 아직 전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올해를 대표하는 드라마로 꼽힐 것 같은 예감이 들 정도로 반응이 심상치 않다.

임상춘 작가를 대표하는 드라마는 뭐니뭐니해도 〈동백꽃 필 무렵〉(2019)이다.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 덕에 마지막회 시청률이 23.8%일 정도로 인기도 많았고, 그런 인기를 반영하듯 여러 개의 상을 받으면서 2019년을 대표하는 드라마로 자리매김하였다. 

〈동백꽃 필 무렵〉은 어린 필구(배우 김강훈)를 데리고 게장으로 유명한 ‘옹산’에 들어온 동백(배우 공효진)이 세상의 편견과 맞서고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과도 싸우며 당당히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이다. 그리고 동백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주변 사람들의 면면을 보여주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이야기’이자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동백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눅이 들어 사는 것은 어머니 정숙(배우 이정은)에게 버림받고 미혼모로서 혼자 필구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고 번듯한 가정을 일구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 지난 세월을 살아 왔다. 그나마 옹산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방패막이가 되어준 부녀회장 곽덕순(배우 고두심)의 사랑과 격려 속에 살고 있다. 항상 위축되어 있지만 실은 남이 뭐라든 행복을 찾아낼 줄 알고, 불의에 기꺼이 맞설 줄 아는 동백. 이런 동백의 본래 모습을 꺼내어주고 동백의 자존감을 북돋아주는 인물이 바로 덕순의 막내아들 용식(배우 강하늘)이다. 

용식은 동백을 향해 항상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히 차고 넘치는 사람이어유”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진심으로 한다.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동백이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를” 알아보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동백은 이런 용식의 태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고 기뻐하면서 “내 걱정해 주는 사람 하나가 막, 내 세상을 바꿔요”라고 한다. 

동백이 자신에게 집적대던 집주인 규태(배우 오정세)를 고소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바뀌게 된 것 역시 용식의 깜짝 생일선물 때문이다. 용식이 준비한 축하카드와 동백꽃 장식을 발견한 동백은 처음 받아보는 축하와 찬탄에 목놓아 울고 만다. 사실 이날은 자신이 보육원에 맡겨진 날이고, 정작 동백은 자신의 진짜 생일을 모른다. 하지만 용식은 “생일 모르면 내가 맨날 생일로 만들어 드린다”면서 동백의 34년이 충분히 훌륭하다고 말한다. 

다 알다시피 동백은 겨울에 피는 꽃이다. 그런데 동백의 생일인 8월에 왜 동백꽃이 필까? 

생일을 모르면 맨날 생일 하자는 용식의 말을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중생인 우리가 새삼스럽게 부처가 되었다는 생각을 할 것 없이 항상 부처로 살자는 말이다. 그러니 부처로 산 동백의 지난 34년이 모두 훌륭할 수밖에. 용식의 이런 격려에 비로소 동백도 자신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라는 자각을 시작하고 자존감 없고 자신감 없는 사람에서 당당한 사람으로 전환한다. 이는 동백이 스스로가 부처임을 자각하는 ‘초발심’의 대목이며 그것을 “꽃이 피었다”고 표현하였다. 드라마 제목인 ‘동백꽃 필 무렵’의 의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동백이 처음 발심하자마자 깨달음을 이룬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동백꽃이 핀 무렵인 것이다. 보현행으로 보자면 부처인 용식이 또 다른 부처인 동백을 부처님으로 대했기에 자신이 중생인 줄로만 생각하며 부처인 줄을 믿지 않던 동백도 최면과도 같은 용식의 말과 행동에 스스로 부처인 줄을 알고 부처로 살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용식과 동백의 이야기에 더해 향미(배우 손담비)의 죽음과 동백의 목숨을 노리는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정체를 밝히는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동백과 엄마 정숙의 재회와 갈등과 화해에 대한 내용이 더해진다. 또한 두 쌍의 부부, 규태와 자영(배우 염혜란)의 갈등, 종렬과 제시카(배우 지이수)의 이혼 위기 등이 부수적으로 전개되면서 모든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주조연의 모든 인물이 각자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고, 부처임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부처임을 자각하면 서로가 서로를 부처로 보게 되고, 부처들이 사는 불국토의 세계가 열린다. 드라마 초반에 동백이 용식에게 분실물센터에서는 사람들이 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자신은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고맙다’는 말은 상대의 진가를 완전히 인정하고 존경하는 맥락으로 쓰인다. 중생이 가진 여래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을 ‘고맙다’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동백,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지닌 본래 모습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동백에게 가장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해주는 것은 역시 용식이다. 그리고 마지막회에서 동백이 꿈꾸던 분실물센터 대신 택배 보관소를 운영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수시로 ‘고맙다’는 말을 듣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옹산의 게장골목이 바로 부처가 부처를 만나는 불국토임을 보여준다.

이제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신장이식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정숙과 동백이 행복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 정숙의 한 마디가 강렬하다. “해피엔딩이고 나발이고, 그냥 아껴 먹으면 맛대가리만 없지, 당장 배고플 때 홀랑 먹어야지, 그게 와따지. 그러니까 나중에 말고 당장 야금야금 부지런히 행복해야 돼.” 그리고 동백은 행복은 좇는 게 아니라면서 발을 딱 붙이고 찬찬히 둘러보면 천지가 꽃밭이라는 말을 한다. 천지가 꽃밭이면 꽃으로 장엄한 화엄(華嚴)의 세상이 아닌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선의가 모여 기적을 이루는 화엄세계를 설법한 훌륭한 법문이고 드라마 속 ‘옹산’은 우리가 살고 있는 평범한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자, 지금부터라도 내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내 마음을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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