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최원섭의 불교, K-드라마로 만나다] 불교의 눈으로 드라마를 본다면…

1. 불교학자가 드라마에 꽂힌 사연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불교 철저히 ‘사람’ 중심
드라마도 ‘사람 ’중심…인물, 서사 불교적 조명 예정

‘불교 드라마’와 ‘불교의 눈으로 보는 드라마’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드라마에는 관심도 없고 경전만 들여다볼 것 같은 불교학자가 드라마에 ‘꽂힌 썰’을 먼저 푼다. 

21세기의 20~30대를 ‘MZ세대’라고 부른다. 30년 전인 1990년대의 20~30대는 ‘X세대’라고 불렸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던 기성세대와 달리, ‘개성’을 중요시하고 ‘개인’에 관심을 두는 세대라고 해서 ‘신인류’라고도 했다. 이들은 1980년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컬러TV를 보고 자라면서 이미 어린 나이에 영상매체의 화사함을 몸으로 체득했고, ‘마이마이’로 통용되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 ‘헤드폰’을 꽂아 음악을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또 1990년대에 출시된 삐삐(무선호출기)와 PCS(개인휴대통신), 인터넷은 시공간의 제약을 단숨에 부숴버린 것이었으니, X세대는 실제로도 대중매체와 기계문명이 넘쳐나는 뉴미디어시대를 누리기 시작한 신인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X세대의 불교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비해 서적과 잡지, 신문 매체가 늘어나고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외국 서적들이 번역되면서 기존의 집단적인 종교활동보다는 불교철학과 개인의 수행 쪽으로 관심이 쏠렸고, 불교방송(BBS, 1990)과 불교TV(BTN, 1995)가 생기면서부터는 미디어에 익숙한 X세대답게 대중매체에서 불교를 찾는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침 상업광고에서도 스님들이 등장했다. 노스님과 함께 대나무 숲을 걷으며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한석규 배우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한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깊은 산속에서도 통신이 잘 된다는 SK텔레콤의 광고(1998)는 종교를 떠나 대단한 호평을 받았고, 몇 년 뒤에는 후속작도 나왔다. 이번엔 젊은 비구니스님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나무가 우거진 한적한 숲길을 걸어가는데, 저만치서 자전거를 탄 수녀님이 그 곁을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되돌아와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다. 광고시장에 종교화합의 장을 열며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준 SK텔레콤의 광고(2001)다. 

그런데 TV를 틀 때마다 스님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잠시, 곰곰 생각해보니 어색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전화기를 잠시 꺼두어도 될 만큼 통신사의 기반시설이 좋다”는 첫 광고의 배경에는, 노스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SK텔레콤의 신기술이 없이는 통신도 되지 않는 심산유곡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불교가 그만큼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중의 심리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살아남는 상업광고의 세계, 그 속에 당시의 일반인들이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녹아 있다. 자전거로 대표되는 친세속적인 기독교와 21세기에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도보’라는 원시적인 수단을 사용하면서 깊은 산속에 머물러 있는 불교가 정확하게 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디어에 스님들이 등장하고 사찰이 나온다고 해서 마냥 반갑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보다 조금 앞서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미국 영화 ‘보디가드’(1992)였다. 테러 위협을 받는 유명 가수와 그 가수를 지키는 보디가드의 사랑 이야기가 기본 줄거리인데, 눈길을 끈 건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화의 본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비록 저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기도가 들어감으로써 사실은 주인공 ‘보디가드’가 ‘신’을 상징하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기독교 문화가 서양사회에서 얼마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면 저런 상업영화에서까지 버젓이 종교적 가치를 표방하는지 의아스러웠다.

그 후로 우리 사회를 찬찬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국사책에 나오는 고려대장경이 지금 해인사에 있는 국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는 할까? 스님이 등장하고 사찰을 배경으로 하기에 ‘불교 영화’ 또는 ‘불교 드라마’로 분류되는 작품들 중 대부분이 불교적이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답답했다. 

자, 그렇다면 ‘불교의 눈으로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세한 이야기는 작품을 통해 차차 풀어가기로 하고,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불교는 철저히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가르침이었다. 비록 지금은 전생의 업을 안고 태어나 윤회 속에 갇혀 고통의 바다를 헤매는 중생이지만, 누구나 공부하고 수행하면 깨달아서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도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이지만, 드라마 안에는 우리 곁에 존재할 법한 주인공들이 세상과 맞닥뜨리면서 겪는 온갖 고난과 여러 가지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그러니 드라마 또한 ‘사람’이 그 중심에 있다. ‘불교의 눈으로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어떤 불교적인 소양을 갖추었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주변 인물들과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불교적인 가치관을 보여주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21세기는 미디어의 시대다. 불교 또한 여러 미디어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매일 보는 드라마와 광고에 불교적인 내용이 담겨 있고, 영화와 가요와 소설책 하나에도 불교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교인지 몰랐는데 불교에 빠져들게 하는 최고의 전법이고 포교가 될 것이다. 

우리 대중문화에서 힐링과 치유가 화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30년 넘게 불교를 공부해온 학자이자 불자로서, 힐링과 치유에 부처님 가르침보다 좋은 명약은 없다고 확신한다.

최원섭 대행선연구원 연구원.


그런 점에서 불교의 눈으로 드라마를 보는 이 자리는, ‘꼰대’로 불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철없는 X세대가 지금의 MZ세대에게, 드라마를 보며 조금이나마 평안함을 얻고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라고 건네는 작은 위로의 손길이다.

최원섭 연구원

최원섭 연구원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의 불교주제구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철선사상연구원 전임연구원과 금강대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대행선연구원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선사상 연구와 더불어 대중문화를 통해 불교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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