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장보배의 24번의 계절] 1. 소한 _ 정동길을 걷다

매서운 추위에도 생명 움트듯…정동엔 ‘生’이 있다

나라 잃은 왕의 애환이, 그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백성들의 피와 눈물이 있는 정동길. 소한의 서늘한 계절 속에서도 이곳을 지킨 질긴 생명의 힘을 느낀다.
나라 잃은 왕의 애환이, 그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백성들의 피와 눈물이 있는 정동길. 소한의 서늘한 계절 속에서도 이곳을 지킨 질긴 생명의 힘을 느낀다.

높디높은 담벼락이 강처럼 흐른다. 굽이굽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어느새 처음과 끝을 하나로 잇는 이 오묘한 벽의 세계. 이 땅 현대사의 격랑이 여전히 살아 물결치는 이곳은 서울. 그리고 그 안에 오래된 심장과 같은 ‘정동(貞洞)’이 있다. 

아직은 차가운 계절. 하지만 뜨거운 심장 박동 울리는 이 벽의 세계에서 다시 길로 나서는 때, 이 매서운 계절도 분명 저물고 말 것이다. 분명 그러할 테다. 

소한(小寒)의 시작
절기는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주기를 24번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황도에서 춘분점을 기점으로 15°씩 한번, 두 번 이동해 나가면 어느새 한 해를 채우는 스물네 번의 절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흔히 달력에 쓰인 하루만 절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절기는 대략 보름을 기준을 바뀌어 가는 셈이다. 

봄이 시작되는 입춘,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 농사짓기 좋은 비가 내리는 곡우…. 

자연이 개발의 대상이 아닌, 의지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일 때의 셈법은 더 다정하고 아름답다. 숨 가쁘게 살아내는 열두 번의 한 달 대신, 스물네 번의 계절을 살고 싶은 이유다. 

1월에 맞는 첫 번째 계절은 소한(小寒). 

절기 순으로는 끝에서 두 번 째지만, 양력 기준의 새해에 들어선 가장 처음 맞이하는 계절. 하지만 공교롭게도 소한은 일 년 중 가장 춥고 엄혹한 시간이 될 터다. 

3천 년 전, 중국 화북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절기는 이 땅의 계절과 딱 그 거리만큼의 다름이 있다. ‘작은 추위’라는 뜻의 소한 뒤로 ‘큰 추위’를 말하는 대한이 오지만,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 1년 중 가장 혹한의 시기를 맞이한다. 

어디 절기뿐일까. 이 땅의 새 시절은 늘 그렇게 절절한 통증과 함께 찾아오곤 했다. 

정동길 바닥.
정동길 바닥.

정동 길에 서다 
왜인지 광화문을 필두로 한 종로, 소공동, 명동 등의 중구 일대 지역은 찬 바람이 이는 계절에 그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 같다. 

종로 사거리 회색 빌딩 사이를 파고들던 바람, 옷깃을 잔뜩 세운 채 이제는 사라진 피맛길의 목로주점으로 삼삼오오 향하던 사람들, 어깨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툭툭 털고 들어서던 노포의 후끈한 내음. 눈 내리는 광화문을 걷다 보면 어느새 펼쳐지던 덕수궁 돌담의 하얀 얼굴이. 

이제 막 시작되는 신도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이 거리의 겨울 서정. 어쩌면 그것은 이 일대의 틈새마다 냉기 어린 우리의 지난 역사가 배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발걸음마다 이 땅 근현대사의 아픔을 딛고 서는 길. 나라를 잃은 왕의 애환이, 그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백성의 피와 눈물로 지도를 만든 정동의 거리. 그곳에는 숨 가쁘게 휘몰아치던 이 땅 19세기의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20세기의 얼굴이 오롯이 남아있다. 소한 무렵 정동 거리로 나선 것은 그 서늘한 계절 속, 이곳을 지킨 질긴 생명의 힘을 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 지금은 그날의 현장이 재현돼 있다.

마주 보는 사람들
경복궁에서부터 광화문을 거슬러 걷다 보면 어느새 왕의 어진을 모시던 선원전(현재 공사 중), 그리고 정동 1928 아트센터((구)구세군 기념관)의 사잇길에 다다른다. 그 길에 들어선 지 몇 걸음 되지 않아 오른편에 보이는 철제 출입문. 그 너머에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에서 구 러시아 공사관으로 목숨을 걸고 피신을 했던 ‘고종의 길’이 있다.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목숨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순종과 함께 궁녀들이 쓰던 가마를 타고 어느 깊은 새벽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다. 이미 친위대 대대장 이진호의 배신으로 한번 실패했던 계획이었지만, 두 번째 시도에 이르러 성공한 것이었다. 

고종의 망명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지만, 몸을 피했던 그 1년간 고종은 독립문 건설과 독립신문 창간을 지원하고 각종 도시개조 사업을 실현했다. 또 관립 외국어학교를 세워 키워낸 인재들을 영입, 서구 세계에 대한제국의 존재와 일제의 부당한 침략을 알리는 데 애쓴 것이다.

그 밤, 폭 3m, 길이 120m 밖에 되지 않는 이 좁은 길을 달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힘없는 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동반한 일본의 강압 속에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다. 같은 정동에 위치한 중명전의 한 회의실, 왕의 빈 자리를 ‘을사오적’이 대신한 날이었다. 

고종의 길에서 가까운 중명전에는 지금도 그 날의 현장을 재현한 자리가, 그리고 바로 반대편 방에는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고종과 헤이그 특사의 흔적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작은 등불에 의지해 함께 독립선언서를 찍어내는 모습.
작은 등불에 의지해 함께 독립선언서를 찍어내는 모습.

오른발에 눈물, 왼발에 희망
고종의 길과 중명전이 구한말의 애환이 서린 현장이라면, 정동의 중심부에 자리한 정동 교회 곁으로는 수많은 근대문화유산이 자리해 있다. 비록 국권을 잃었지만, 이 땅의 사람들은 결코포기하지 않았던 증거들이다. 

선교사 H. G.아펜젤러가 두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한국 최초의 근대 사학인 배재학당 기념관.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기념관 옆 배재 어린이 공원에 자리한 ‘거사 전야’라는 작품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의병단을 조직한 독립운동가 윤희순 의병장, 그 곁의 배화여고 학생이 작은 등불에 의지해 함께 독립선언서를 찍어내는 모습. 윤희순이 직접 지은 ‘안사람 의병가’를 새긴 낡고 흐려진 동판의 모습이 안타까운데, 그래서인지 더욱 비장과 애잔함이 감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정동극장 방향으로 걷다 보면, 길 건너 거대한 병원 건물 사이에 가리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경교장’을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금광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친일파 최창학의 저택,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공간. 한국 전쟁 당시에는 미군 의료진들의 거처, 이후 강북삼성병원의 건물로 쓰였던 부침 많은 이곳. 난방할 여력이 되지 못해 냉골과 다름없던 경교장에서, 때로 친일의 부끄러움조차 잊은 최창학 가족들에게 눈치를 보아가면서도 김구 선생은 ‘문화로 융성한 나라’를 꿈꾸었다. 

하루를 백 년처럼 살았던 이들의 생을 빌려낸 오늘. 지금도 붉게 남은 혈흔의 옷자락,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김구 선생의 웃는 모습이 얼얼하다.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뭇 생명을 위해 켜진 등불이 항상 반짝인다.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뭇 생명을 위해 켜진 등불이 항상 반짝인다.

벽 너머로
지금이라도 날아갈 듯한 소녀상과 ‘광화문 연가’를 지은 이영훈 작곡가의 기념비를 지나 똑바로 걸어나가면, 비로소 정동을 상징하는 덕수궁 돌담길로 들어선다. 

지난 역사의 파란과 함께 이리저리 흐르다 정동을 벗어나는 시간. 돌담길 곁 성공회 서울성당의 뒤편에 자리한 사제관 앞에는 6·10민주항쟁의 진원지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에 거대한 지평이 시작된 이곳. 정동의 길은 끝까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환영처럼 울려 퍼지던 지난날의 함성이 실제임을 깨닫는 계절. 그 소리를, 빛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수송동 조계사 앞까지 다다른다. 아스라한 저 등불이 위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뭇 생명을 위해 켜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던가. 여전히 춥고 매서운 계절은 무섭지만, 그 아래 꿈틀대는 생명의 힘은 더욱 강한 것. 벽을 넘어 하늘로, 새로운 세계로 피어오르는 저 수만의 빛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장보배 작가

▶한줄 요약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던가. 여전히 춥고 매서운 계절은 무섭지만, 그 아래 꿈틀대는 생명의 힘은 더욱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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