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스토리텔링 경전에세이] 23 반야심경 ②

절대적 가치 기준은 없다 

깨끗함은 좋고 더러운 것은 싫어
상대성이 본질적으로 모두 空하며
가치가 동등하다는 게 반야의 사상

그림=최주현
그림=최주현

‘나’를 공부하다
앞서 아이가 자전거타는 법을 익히는 예를 들었습니다. 든든한 아버지가 뒤에서 붙잡아주니 두려워도 페달을 밟을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도 태어날 때부터 자전거를 잘 탔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역시도 지금 이 아이와 똑같은 과정을 통해서 잘 타게 되었습니다.

〈반야심경〉의 첫머리는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도 이렇게 공부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괴로움을 건너느니라”라는 구절은 이것을 말합니다. ‘행할 때’란 말은 반야바라밀다 공부를 할 때, 반야바라밀다의 깊은 경지를 향해 나아갈 때라는 뜻입니다. 

무슨 공부를 한단 말일까요?

가장 먼저,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을 말해봅시다. 보통 사람들은 ‘나’라는 정체를 그리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인데, 뭘 더 말하고 말고 할 것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냥 ‘나’에게 맛난 음식 먹여주고 멋진 옷을 입히고 안락한 소파에 눕혀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는 이렇게 애지중지 보살피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츰 무너지고 그러다 파괴됩니다. 늙고 병들어가는 과정이 그것이지요. 이럴 때 사람들은 영양제나 보약을 먹고 더 안락하게 눕는 것, 병원에 더 열심히 다니고 운동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나’를 한번 들여다보자, 대체 무엇으로 이뤄져 있기에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 보살펴도 무너지고 달라지는지….”

이런 사람을 수행자라고 합니다. 그렇게 ‘나’를 사색과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서 면밀히 살펴본 결과 “다섯 가지로 이뤄져 있었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이 다섯 가지 근본적인 구성요소를 ‘오온’이라고 합니다. 오온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오온이 강하게 집착되어 있는 것을 ‘나’라고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이 오온이 시절인연을 따라 무너지고 소멸하는 현상을 만나도 당황하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치를 완벽하게 꿰뚫어 알아서 더 이상 나라는 생각에 얽매여 번뇌를 일으키거나 악업을 짓지 않는 사람은 성자가 되는 것이고, 그 성자 중에 최고의 성자를 아라한이라 부릅니다. 

여기까지 도착하면 사실 수행은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오온으로 이뤄져 있다고 아는 것-이것도 대단한 깨달음입니다. 불교대학에서는 이 오온을 ‘색·수(느낌)·상(생각)·행(결합)·식(식별)’이라고 배웁니다. 그리고는 넘어갑니다. 오온이 그 다섯 가지라고 배우는 것으로 끝내는 거지요. 하지만 진짜 공부는 내 몸과 마음에서 색이 어떤 부분이고, 수, 상, 행, 식은 어떤 부분이고 역할을 하는지를 깊이 사색해야 합니다. 불교교리 공부는 바로 이런 세밀한 곳에 깊이 사색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지면에서 이런 걸 다 일일이 설명드릴 수 없으니 나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아라한이면 다 된 거다?
아무튼, 이걸 완벽하게 공부하여 번뇌를 완전히 없앤 성자를 아라한이라고 부르는데, 허걱! 알고 봤더니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단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 ‘오온’이 ‘자기 성품이 빈 것’ 즉 ‘공한 것’이라는 관찰까지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휴~ 산 너머 산입니다. 하지만 불교교리는 이렇게 단계별로 진행됩니다. 이처럼 아라한이 도달한 깨달음의 경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깨달음의 경지가 모든 것이 빈 것이다, 즉 모든 것이 공하다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 그동안 내가 공부하여 밝혀낸 진리가 자기 성품이 빈 것이로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공하다’라고 안 그 자체에 머물면 철저하지 못한 공이니까 다시 또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관찰하고 또 관찰하며 도달하는 경지마다 빈 것이라고 알아내는 것, 이것이 프라즈냐(prajn)요, 이 프라즈냐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어로 옮긴 것이 ‘반야’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수행은 여기까지 나아갔습니다. 모든 것은 다섯 가지 구성요소 즉 오온으로 이뤄져 있다는 앎의 경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오온이 공한 것이구나라는 앎까지 나아가니까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색즉시공이라니?
여기까지 도달한 관세음보살은 아직 아라한에 머물러 있는 사리자에게 이 이치를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부릅니다.

“사리자여!”

이름을 일단 부른 뒤에 오온이 공(빈 것)이라는 이치를 일러주는 것입니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와 같느니라.”라고요. 불자님들 집에 가보면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사자성어가 크게 쓰인 액자를 자주 봅니다. 반야심경의 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나는 ‘색즉시공’만 이야기하면 100점 만점에 20점이라고 말합니다. ‘색’은 오온의 첫 번째에 나오는 것이어서 대표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했고 그 뒤에 나오는 ‘수상행식’도 곧 공한 것이라는 걸 빠뜨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말하려면 ‘오온즉시공 공즉시오온’이라 해야겠지요.
이 정도로 말씀드리고 지나가도 될까요? 

관세음보살(관자재보살)은 다시 한 번 “사리자여!”라고 그 이름을 부릅니다. 우리 같은 보통의 불자가 아니라 자기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킨 아라한인 사리자에게 법문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리자여!’라는 호칭 대신에 “아라한이여!”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습니다. 보살마하살이 아라한을 공부시키는 경이 반야심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라한인 사리자를 불러놓고 이번에는 공(空)의 경지 안에서 법문을 들려줍니다. 

한글반야심경에서는 “이 모든 것은 공하여~”라고 이어집니다. 한문경전으로는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한문에서 제법(諸法)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諸法)은 공이 모습을 띠고 있는 것(空相)이라고 합니다.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모든 것이 다 똑같이 공한 것(空)인데, 현상적인 측면에서는 서로가 제각각 다른 모습,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잖아요. 개성 넘치는 그 모든 것은 모두 공(空)이 인연 따라 모습(相)을 띠고 드러난 것이라는 말입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 엄청 크거나 아주 작은 것, 매우 깨끗하거나 몹시 지저분한 것…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가득 차 있는 현상이나 사물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태어남을 좋아하고 죽는 것은 싫어합니다. 큰 것을 좋아하고 작은 것은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은 생각만 해도 싫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대적인 것이라 느껴지는 것들이 사실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자기 성품이 빈 것(空)이요, 그런 면에서는 가치가 동등하다는 것이 반야의 사상입니다. 그러니 “나지도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전부 공한 것이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니, (본질적으로 말하면) 생겨난 적도 없고 멸한 적도 없고 더러운 적도 깨끗한 적도 늘어난 적도 불어난 적도 없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어휴~ 어렵다, 정말 어렵다!

이런 이치를 글로 써내려가는 나도 갑자기 혀가 꼬이는 것만 같습니다. 역시 반야의 이치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렵고 복잡한 것 같습니다. 아주 쉽게 예를 들어본다면, 우리에게는 누구나 은근히 만나고픈 이상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키는 몇 cm 정도는 되어야 하고, 얼굴은 탤런트 누구처럼 생겼으면 좋겠고, 집안은 이렇고, 학벌은 이렇고, 성격은 이렇고, 연봉은 이런 정도고….

그런데 내가 품고 있는 이상형의 기준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어서 내 입장에서는 000cm 터 정도면 키가 큰 편이나 누군가에게는 보통 수준의 키일 수도 있습니다. 연봉 몇 천만원 정도라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건 꿈에서나 바랄 만한 액수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 정도는 ‘껌 값’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뭐가 절대적인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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