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지상백고좌] 월정사 회주 연암 현해 대종사

“우린 본래 부처, 佛法대로 실천하면 성불”

동국대 종비생 1기, 日초청 유학생 선발
박사학위 받고 귀국 ‘법화경’ 15년 강의
‘한마음 가운데 삼천세계가 있다’ 경구에
‘법화경’ 공부…“중생, 진실 이끄는 經”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보살’ 좋아해”
상불경보살, 자길 낮춰 남 존경하는 보살
누구나 존경받는 성품 갖춤을 의미
대승불교 ‘인간 존중’ 정신 담겨있어

현해 대종사는… 1958년 월정사에서 만화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0년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64년 동국대 불교학과에 종비생 1기로 입학해 1968년에 졸업했으며, 1973년 동국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학한 뒤 초청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고마자와대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와세다대, 다이쇼대에서 동양철학과 천태학을 수학하고 귀국해 중앙승가대와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오랫동안 〈법화경〉을 강의했다. 1992년부터 2004년 1월까지 월정사 주지 소임을 맡았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조계종 제3·7·10대 종회의원을 지냈으며,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 및 대종사로 추대됐다. 현재 (재)불교문화진흥조계종 성찬회 이사장, 월정사 및 법종사 회주로서 월정사 서울포교원 법종사에서 대중을 만나고 있다.

가을빛이 완연하다. 가로수들이 오방색으로 단청을 한 듯 세상은 환하게 빛난다. 발밑에 뒹구는 낙엽 소리가 가을이 지나가는 소리로 들린다. 연암 현해 대종사는 2004년 1월에 월정사 주지소임을 내려놓고 서울 도봉에 바랑을 내려놓았다. 북한산 주봉을 마주하고 선 법종사는 월정사 서울 포교원이다. 법종사는 5층으로 된 신식 건물이지만, 어쩐지 오대산의 바람 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다. 현해 스님의 주석처인 서울 법종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무릎이 아파 예전처럼 기도도 못하고, 붓글씨를 쓰면서 지내요. 왼쪽 귀는 거의 안 들리고 오른쪽 귀는 약간 들려요. 보청기를 끼면 세수할 때 빼야 되고 잠 잘 때도 빼야 되고, 끼었다 뺐다 하니까 귀찮아 가지고 사용을 안 해요. 이제 나이 들면 쓸데없는 거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는 거지. 그러니까 늙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이지.”

세납 90세이신 스님은 요즘 서예 공부로 소일하신다고 했다. 서예 공모전이 있으면 재미삼아 출품하기도 하신단다. 스님께서 직접 만든 마가목 차를 내주셨다. 

“옛날부터 늙은이가 마가목 지팡이를 짚으면 허리가 안 아프다는 말이 있어요. 관절에 좋답니다. 법종사 정원에 마가목 몇 그루를 키워서 직접 만든 차입니다.” 

현해 스님은 1958년 월정사에서 만화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0년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수행하시는데 버팀목이 되는 은사스님의 가르침이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물었다. 이에 현해 스님은 내가 “우리 은사스님에게 배운 게 딱 두 가지가 있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첫째는 어른을 모시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은사스님은 노스님의 말씀이라면, 때로는 내가 보기에 굉장히 부당한 명령 같아도 거기에 대해서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또 한 가지는 불사하는데 내 개인의 사정이나 내 개인의 입장 이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사를 한다는 게 절대적이라 밥을 굶어가면서도 불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철저히 배웠어요.”

오대산스님들의 수행전통이 유명한 이유를 여쭈었더니 “한암 스님은 상원사에서 모든 스님들에게 참선, 경, 의식, 염불, 가람수호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직접 가르쳤다. 그것이 바로 오대산의 전통”이라고 했다.

“한암 스님은 아침 예불하고 나면 반드시 〈금강경〉을 독송해야 되고, 금강경 독송 후에는 1시간 기도해야 되고, 1시간 기도 후에는 참선을 했어요. 그때는 새벽 3시에 일어났는데, 하루종일 참선을 했어요.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 감자 농사를 직접 지었는데, 스님들도 이유 없이 똑같이 일을 했어요. 객스님들도 울력에 동원되었을 정도로 철저했지요.”

대중과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잠자고, 일도 같이 하는 것이 몸에 밴 한암 스님의 서릿발 같은 수행 정신이 오대산 가풍을 빛나게 하는 것 같다. 현해 스님은 1964년 동국대 불교학과에 종비생 1기로 입학해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 당시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여쭈었다. 그러자 현해 스님은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옛날에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면 반드시 스님의 안내로 절을 돌아보면서 사찰 역사와 불교 관련 설명을 직접 듣는 시간이 있었다. 안내할 사람이 없으니까 당시 주지였던 은사스님이 직접 안내를 진행했다. 그런데, 젊은 교장이 제일 뒤에 서서 담배 피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현해 스님은 은사스님을 모독하는 것 같아 성질을 부렸다.

“교장선생과 거친 말이 오가면서 ‘불교도 현대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출가 전에 같은 교회에 다녔던 후배 하나가 서울에 먼저 와 있었는데, 동국대 종비생 모집을 알려주고, 원서도 내주고 하여 대학에 갔어요.” 

현해 스님은 동국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일본의 초청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고마자와대학에서 공부했다. 학비는 면제 받았지만,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기에 고생도 많이 했단다. 

현해 스님은 〈법화경〉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중앙승가대와 동국대에서 15년 동안 법화경 강의를 하셨다. 동국대에 입학해 불교대학 학장이었던 김동화 박사님의 강의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화엄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하여 모든 것이 한 마음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법화경〉에서는 일념삼천설(一念三千設), 즉 ‘한 마음 가운데 삼천의 세계가 있다’라는 가르침에 놀랐지요.”

현해 스님에 따르면 〈법화경〉 사상의 핵심은 ‘공즉유(空卽有)’이다. 일체의 존재는 자기라고 고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엄연한 현실은 우리들 눈앞에 전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조계종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지만, 한때는 〈법화경〉이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전 출판 역사를 보면 조선 500년 이후부터 정화를 거쳐 우리 종단이 정식으로 성립되기까지 한 50년 동안에 경전 출판은 〈법화경〉이 제일 많습니다. 출판을 여러 번 했다는 것은 독자가 그만큼 많다는 거 아닙니까. 〈금강경〉은 내용이 거의 공(空)사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空)을 설명하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스님들도 전부 다 다르게 설명을 해요. 그런데 〈법화경〉은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만 해놓으면 누구든지 다 쉽게 읽을 수 있어요. 읽으면 뜻을 알게 되니 신도들에게는 오랫동안 〈법화경〉이 더 친근감이 있지요.”
〈법화경〉은 중생을 위해 방편을 열어 중생들이 진실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려는 경이다. 깨침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보살, 성문, 연각의 중생에게 방편을 베풀어서 그 방편으로 부처님의 세계로 이끌려는 것이다.  

현해 스님은 1996년에 〈법화경요품강의〉를 출간했다. 2006년에는 산스크리트본, 한문번역본, 영문번역본, 한글번역본 등을 대조해가면서 연구하여 〈묘법연화경〉을 세 권으로 완간했다. 이 작업을 위해 자료 조사에 3년, 번역에만 7년이 걸렸다.  

“날마다 지극히 기도하라…열반에 이를지니”
은사스님 지극히 모시던 노부부 있었다
매일 아침저녁 ‘금강경’ 독송하던 처사
어느 날 독송 중 홀연히 세상을 떠나니
그의 마지막이야말로 해탈, 열반 아닌가 

현해 대종사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해 대종사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해 스님께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법문을 청했다. 스님은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비유를 들려줬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 미친 코끼리를 만났다. 어디 숨을 데가 있나 둘러보다가 우물을 발견했다. 급하니까 드리워진 등나무를 타고서 우물로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아래를 보니 독사들이 우글거리는데 입을 벌리고 물려는 태세였다.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까 미친 코끼리가 기다리고 있고, 내려가려는데 밑에서는 독사들이 있었다. 그때 우물 중간에 흰 쥐, 까만 쥐가 나와 가지고 등나무 줄기를 깎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등나무 줄기가 끊어지면 죽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 순간에 우물 벽에 벌꿀들이 집을 지어가지고 꿀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그네는 그 달콤한 꿀맛에 취해 미친 코끼리에게 쫓기고 있음을, 우물 아래에서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도, 생명줄을 깎아 먹는 흰 쥐와 까만 쥐도 다 잊어버렸다. ‘안수정등’의 이야기를 마친 스님은 그 의미를 풀이했다.

“미친 코끼리는 세상 풍파를 말하는 것이고, 흰 쥐 까만 쥐는 낮과 밤을, 넝쿨은 우리의 생명을 뜻해요. 아래로 떨어지면 독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죽어서 지옥으로 갈지 천당으로 갈지 모름을 뜻해요. 꿀은 오욕을 뜻하는데 이런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오욕락에 취해 있어요. 풍파를 만나서 낮과 밤이 바뀌면 언젠가는 죽는 것이 인생살이 아닌가요.”

현해 스님의 말씀에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법문이다. 스님은 기도보다는 절 수행을 많이 하신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스님께 절 수행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를 청했다.

“내가 승가대학에 있을 때 여름방학만 되면 남해 보리암에 갔어요. 주지스님의 상좌가 승가대학을 다니고 있었어요.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법당에 들어가요. 기도 대신 절을 했어요. 관세음보살 한 번 부르고 1배하고, 또 관세음보살 한 번 부르고 1배하고 이렇게 해서 108염주를 30번을 돌렸어요. 열이틀 동안 날마다 3240배씩 절을 하고서 보리암을 내려왔지요.”

이렇게 3년을 계속했는데, 어느 날 보니 무릎이 망가져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스님의 말씀에 몸과 마음을 조복 받는 수행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스님은 〈법화경〉에 관련된 책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그중에서 〈조계종사 연구논집〉은 한일불교유학생교류회 상임대표로 있던 현해 스님의 주도로 연구논문을 엮은 것이다. 조계종의 역사를 정화운동 이후로 보고 50~60년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해 스님은 조계종 종조를 신라의 ‘도의(道義) 선사’로 보았다. 중국으로 구법을 갔다가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깨치고 조사가 되어 귀국한 도의 선사를 종조로 내세운 것은 ‘종지 종풍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조계종에 몸담고 있는 출가자와 재가불자들의 수행과 신행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조계종단의 위상을 높인 것이다. 

현해 스님은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보살’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상불경보살은 항상 나를 낮추고 남을 존경하는 보살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항상 합장하고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분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존경합니다’라고 말해요. 사람들은 상불경보살의 말에 화를 내면서 ‘거짓말쟁이, 나쁜 놈’이라고 하면서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요. 상불경보살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면서도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상불경보살’의 정신은 누구나 존경받을 수 있는 성품을 다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엔 ‘최상의 인간 존중’ 정신이 담겨있다.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돈과 탐욕과 권력을 쫓다보니 인간의 존엄성은 땅에 묻혀버린 상태다. 인간은 본래 부처인데 욕심 때문에 중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면 성불의 길로 가는 것이다.  

현해 스님은 불자들이 ‘장자궁자(長子窮子)’의 비유를 통해 ‘내가 바로 부처’임을 깨닫게 되면 좋겠다고 설한다. 

장자는 요즈음의 재벌을, 궁자는 거지를 뜻한다. 장자가 어린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그 아들은 밥을 빌어먹는 거지가 되었다. 장자는 밥을 빌러 온 거지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고, ‘내 아들’이라고 했지만 거지는 완강히 거부하면서 도망갔다. 장자는 생각을 내어 거지를 자기 집에서 똥 치우는 궂은 일을 하는 하인으로 부렸다. 장자와 아들은 점차 친해졌고, 장자는 죽기 전에 동네 사람들을 불러놓고 ‘저 하인은 본래 내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전 재산을 다 물려주었다. 

“이 비유에서 장자는 부처님을 가리키며, 궁자는 중생을 뜻합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이지만 어쩌다보니 중생 노릇을 하고 있지요.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중생의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대승불교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보살사상을 비유로 말하고 있어요.”
스님은 장자가 아들에게 청소시키고 똥 치우게 하는 그 본래 목적은 ‘부처’임을 깨우쳐 주려는 것이라 한다. 지금 중생들이 기도하면서 ‘돈 벌게 해주십시오’하는 것은 장자의 아들이 ‘똥 치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기도해서 돈 벌면 뭐 해요? 불타는 집에서 나오는 것이 해탈이지요. 부처님은 중생의 모든 고통을 없애주고 대신에 복락을 주겠다는 원력으로 사시기 때문에 고통이 없어요. 우리도 해탈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기도해야 합니다.”

스님께 “일상에서 불자들이 어떤 신행생활을 하면 좋은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해탈할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니 “일반 신도가 해탈하기는 참 어렵다”면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월정사에 우리 은사스님을 지극히 모시던 노부부가 있었어요. 그 처사님이 은사스님을 알고부터는 꼭 아침에 일어나서 〈금강경〉 한 편 읽고 또 저녁 먹고 나서 자기 전에 〈금강경〉 한 편을 읽었어요. 독송할 때는 방에 홀로 앉아 했어요. 어느 날 마누라가 옆방에서 〈금강경〉 독경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가 끊어지기에 이상해서 문을 살짝 열어 보았어요. 처사가 책상 앞에서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기에 ‘여보, 여보’ 하고 불러보니 이미 숨이 끊어져 있더래요. 이것이 해탈, 열반 아니에요? 얼마든지 일반 불자들도 해탈할 수 있는데 힘이 드니까 안할 뿐이지요.”

그러면서 현해 스님은 일상에서 날마다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기도를 해보라고 불자와 현대불교신문 독자들에게 권했다. 

“나는 신도들에게 ‘아침에 일어나거든 세수부터 하고 반드시 밥 먹기 전에 염주를 돌려가면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시라. 그리고 저녁에도 자기 전에 반드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라’고 해요. 염불을 300번이든 500번이든 정해놓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꼭 행하는 생활을 익히라고 합니다.”

현해 스님의 〈법화경〉 법문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내가 바로 부처’임을 자각하고 해탈할 수 있도록 수행해야 한다는 현해 스님의 가르침이 불자들의 가슴에 꽃 한 송이로 피어날 것이다. 

문윤정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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