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미디어 인 붓다] 51.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아메바 소녀들의 저주 탈출기 

8등급 여고생들 학교에 붙은 귀신과 숨바꼭질
학원물로 시작해 호러로… 저주에서 살아남기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한 장면.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한 장면.

지금이 딱 그 시기다. 수능 시기. 성당이나 교회, 무속도 저마다 합격 기원 기도를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입시철 기도의 스펙터클은 불교가 클리셰(의도된 힘이나 새로움이 없어진 진부한 상투구, 상투어)다. 이때가 되면 절에 가서 100일 불공이나 108배도 하고, 초도 켜고, 연등도 달고, 수능 기원 이름을 적어 기와도 올리고, 착 감기는 염주도 사서 입시생 팔목에 채워준다. 불자들은 당연히 드리는 정성이겠거니 하지만 불자 아닌 사람들도 그런다. 

수능 기원 잘 들어주신다고 입소문 난 이름난 절, 영험하다는 불상 앞에서는 학부모들 무릎에 굳은 살 배기도록 드리는 절이며 기원이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다. 수능 전날과 당일이면 대부분의 방송국에서는 봉은사나 동화사 같이 이름난 절에서 눈 꼭 감고 염주를 굴리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비춰주며 매년 주요 뉴스로 새로 보도한다. 수험생은 매년 새로 생기니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처음이면 처음이라 떨리고, 재수나 그 이상의 재도전하는 수험생들은 실패의 기억 때문에 떨리니 엄숙하고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의 주인공들은 입시를 앞둔 여학생들이다. 그리고 한 여학생이 수능 앞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절에 간다. 불심이 깊어서 가는 건 아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듯 입시철 반짝 불공을 드리러 가는 것도 아니다.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스님이 수능 합격 기도발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도 아니다. 그 스님이 전설적인 학교 선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전설이냐고? 무려 수능 전국 수석을 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비구니가 되어 지금 지연이 찾아가는 절의 주지 스님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지연이 스님을 찾는 까닭은 공부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 아니고, 어쩌다 들러붙은 학교 귀신 때문이다. 

입시 포트폴리오 제출할 영화를 함께 찍고 있는 세강여고 방송반 지연(김도연), 은별(손주연), 현정(강신희)는 고등학교 3학년, 각자 야무진 미래를 꿈꾸고 있다. 영화감독 지망인 지연은 연출을 하느라 심각하고, 인플루언서 연예인을 목표로 하는 은별은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하는 틈틈이 SNS 방송에 열심이다. 묵묵히 카메라를 들고 있는 현정은 촬영감독이 되고자 근력을 기르려고 아령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서 함께 영화를 만드는 이 소녀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아메바’로 불린다. 

아메바라고? 단세포 생물인 그 아메바? 아니 왜? 입시공화국, 학벌 서열 계급에서 바닥을 깔아주는 이 학생들 내신이 8등급이라서. 공부를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거면 왜 내신에 수행평가까지 등급을 나누고, 수시·정시 나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학교 지원하느라 용을 쓰겠어? 누군가는 공부 머리가 있고, 누군가는 예체능 감각이 있고, 또 누군가는 사회성이 좋은 거지. 이렇게 말할 수는 있어도 딱 성적표 등급 나오면 대부분의 8등급 받은 학생들은 풀이 죽게 마련이다. 그 성적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전공에 들어가기 어렵다며 ‘아메바’ 소리 듣는데 무심하긴 어렵다.

좀 오래된 학교들은 전설이나 괴담이 있고, 이 여학생들이 다니던 세강여고에도 전설이 있다. 개교기념일에만 나타나는 귀신이랑 밤새 숨바꼭질해서 잡히지 않으면 귀신이 수능 정답을 가르쳐 준다는 솔깃한 전설. 심지어 1998년에는 무려 세 명의 선배가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선배들은 저렇게 잘했는데 자신들은 8등급이라니 참 맥 빠질 수밖에.

그래서 지연은 막바지에 들여다 봤자 성적 오르기 힘든 교과 공부가 아니라 방송실 컴퓨터 앞에 앉아 포트폴리오로 제출할 PPT 자료를 만들기로 한다. 방송반 같은 동아리에는 해묵은 기자재도 쌓여있고, 선배들이 만들었던 자료도 쌓여있고, 지금 동급생인 친구들 낙서도 있기 마련. PPT가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캐비닛 안에서 ‘1998년 개교기념일 귀신 숨바꼭질’이란 이름이 적힌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하게 된다. 

수능이 코앞인데 파일도 아니고 비디오테이프라니! 방송실에는 VCR 기기도 있겠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하느라 지친 지연이 비디오테이프를 보기 시작하면서 학원물로 시작한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은 호러 장르로 스르르 빠져든다. 수능 만점 맞았던 선배들이 남긴 그 비디오는 익숙한 공포영화들을 섭렵한 김민하 감독의 연출로 오싹한데 유쾌하고, 조마조마한데 산뜻하고, 다 아는 것 같은데 한 끝이 다른 재미로 관객들을 비명과 포복절도 사이에서 널뛰게 한다.

IMF로 국가부도가 현실 공포이던 1998년, 한물 간 줄 알았던 학원물+공포물 장르로 한국 호러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연 〈여고괴담〉이 개봉됐다. 2024년 세강여고 여학생들에게 〈여고괴담〉은 아마도 클래식과도 같을 것이다. 비디오테이프로 귀신이 활성화되는 〈링〉도 그 시기였다. 〈여고괴담〉과 〈링〉은 모두 흥행에 성공하며 시리즈로 이어졌다. 매년 치르는 수능이라도 매년 새로 입시 불공드리는 기사가 나오듯 〈여고괴담〉과 〈링〉 시리즈는 신인 배우들과 신인 감독들의 조합으로 서늘한 재미를 주었다. 그러면서 〈여고괴담〉에서 귀신이 복도에서 다가오는 점프컷 장면이나 〈링〉에서 머리 푼 귀신이 TV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밈이 되고 있다.

김민하 감독은 세강여고 학생들과 이런 공포영화의 밈들을 가지고 한바탕 놀아 보자고 관객들을 초대한다. 그렇지만 이 학교 귀신은 〈링〉이나 〈주온〉 시리즈의 귀신들처럼 간 떨어질 듯 놀랍기만 한 귀신이 아니다. 〈월하의 공동묘지〉에 나오는 귀신처럼 머리를 풀고 출몰하지만 한국 전설 속의 귀신들이 거의 그렇듯 딱 한국 귀신이다. 누굴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원을 들어달라고 따라 붙는다. 

‘장화홍련전’의 귀신이 사또를 죽이려고 죽인 것이 아니라 귀신보고 놀란 사또가 제 풀에 죽은 것처럼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을 보면서 소녀들도, 관객도 으스스한 기운에 잔뜩 겁은 나지만, ‘귀신 숨바꼭질’을 하게 된 이상 잘 도망가고, 잘 이겨내야 한다. 숨바꼭질은 원래 잡힐까봐 긴장하는 놀이고, 긴장이 클 때 놀이가 더 재미있게 된다. 

학교에는 종교부도 있는데, 종교부에는 일본어가 이상한 듯 유창한 2학년 후배 민주(정하담) 딱 한 명뿐이다. 그 단 한 명이 요괴나 귀신 부리는데 꽤 전문적이라니, 우리의 쫄보 아메바 소녀들은 최선을 다해 숨바꼭질을 하기 위해 후배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메바 소녀들은 선배스님이 준 염주와 가톨릭 세레명도 있는 은별의 묵주, 일본 요괴 이야기에서 하듯 소금까지 준비하고 귀신과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김민하 감독이 아메바 소녀들을 연기하는 연기자들과 만들어낸 이 영화는 장르를 되풀이 하거나 변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만든다.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를 만들며 최첨단 고비용 VFX 컴퓨터 그래픽 범벅이 아니라 예전 방식의 특수촬영과 신세대 감성의 대사와 편집, SNS 라이브 방송 느낌의 화면에 흠뻑 빠져 비명지르고 웃자고 한다. 아메바 소녀들이 밤새 귀신과 숨바꼭질 하는 동안 촛불 켜고 목탁 두드리다 학교까지 달려온 선배스님의 진심이 부처님에게도 성모 마리아에게도 통하게 되면, 수능 그까짓 거, 다 같이 잘 보면 되는 놀이로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