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간과하지 말라
수행에선 본질인 ‘明’을 알아야
無 집중, 지엽말단 치우친 행위
평안을 꿈꾸었는데 도달한 곳은 이에 상반되는 곳이라면? 우리 시대의 단면이 이와 비슷하다. 평화와 질서의 이름으로 전란이 일어난다. 사회질서 유지의 기능이 오작동하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노력들이 질병을 불러오고 있다. 일종의 기능항진으로 인한 역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증상들은 자가면역질환(自家免疫疾患, Autoimmune disease)으로 검토 가능하다. 이 질환은 병원균이나 이물질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켜주어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을 공격하는 증상들이다.
자가면역의 오작동은 모든 장기와 조직에 나타난다. 전신성 증상을 보이는 루프스는 물론, 특정 장기의 조직을 파괴하는 갑상선 질환과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 류마티스성 관절염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공통적 증상은 만성피로, 발열, 탈모 및 피부질환, 안구이상과 수면장애, 관절과 근육 이상, 체중변화, 우울증, 감각이상, 기억력 감퇴, 식욕변화, 소화장애 등이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기술문명의 발달과 비례하여 이 질환이 대두된 것이기에 문명 질환의 다른 명칭에 해당한다. 이들은 한마디로 현대적 질병들의 총체적 집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알레르기나 아토피와는 다른 해석을 요구한다.
특이한 현상으로 면역기능이 저하되면서 그 증상이 호전되기도 한다. 노화, 감염, 질병 등으로 인하여 면역기능이 저하되면 증상이 좋아진다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의료기술과 보건위생이 발달한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에 의존한 과도한 노력들이 우리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문명이 그 기저에서부터 붕괴하고 있다는 위험한 경고이기도 하다. 즉 본질을 간과하고 사소한 것에 집중하여 기능부전으로 진행되는 국면이다.
면역체계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처럼 정교하게 움직인다. 사소한 차이를 감지하며 자기와 비자기를 감별하는 면역세포들은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 정교함이 지나쳐 자신을 적군으로 간주하는 디테일(detail)의 오류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디테일은 제거한다는 de와 꼬리를 뜻하는 tail의 합성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잘려진 꼬리를 형상화한다.
꼬리라는 군더더기를 버리고 몸통을 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볼 것을 보지 않게 되는 것, 즉 본질을 놓치고 부스러기에 집중하기에 엉뚱한 것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 디테일과 대비하기에 충분한 개념 교사자(較些子)는 ‘사소한 차이의 비교’라는 본뜻으로부터 비교대상에 상당하게 된다는 의미로 전환된 것이다.
물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의 근본 자리에 무명(無明)이 놓여있다. 없어야(無) 할 것을 제거함으로 깨달음인 명(明)에 도달하는 일은 불교 수행의 기본이다. 이는 본질인 명(明)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없어도 되는 무(無) 자체에 집중하는 것은 잘라진 꼬리라는 거두절미의 입장이 아니라 지엽말단으로 치우치는 격이다. 자기를 스스로 공격하는 자학적 상태처럼 무(無)라는 겉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꼴이다. 밝음(明)을 구족하고 있음에도 어두워진 상태에 주저앉은 형상이다. 불교는 본래 내재한 성품으로서의 불성을 제시한다.
여래의 종자를 간직하고 있기에 중생의 성품을 ‘여래장’이라고 지칭한다. 무명을 떠나 도달하는 곳이 명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본래 밝음을 구족한 실천자 보리살타(보살행자)라 할 수 있다. 단 본질을 온전히 이해할 때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