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를 변화시키는 연습, 남을 바라보는 지혜
단점은 인정하고 장점에 집중하면
더 이상 미움·불평에서 살지 않아
직장 내 갈등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기 쉬운 문제다. 하지만 그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크게 달라진다. 아침마다 여럿이 온라인에서 금강경법문을 공부하며 나눈 법담 중 직장에서 겪는 갈등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킨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영석(가명) 님은 다년간 함께 일해온 한 직원과 소통이 어려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직원은 항상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다른 직원들까지 힘들어하며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영석 님은 특히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상사의 말만 따르는 그 직원의 태도에 불만을 느껴, 매일 퇴근 후면 아내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아침마다 금강경을 공부하다 보니 그 사람을 통해 내 마음을 바꾸라고 하시니 그게 참 어렵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은영(가명) 님이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법담을 이어갔다. “직장 동료로 인해서 정말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어요. 벌써 수십년 전 얘기네요. 어디다 얘기하고 풀 데가 없어서 매일 남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내가 욕을 해봐야 그 사람은 바뀌질 않는 거예요. 나는 나대로 맞고, 상대는 또 본인대로 맞으니 서로 바뀔 이유가 없었던 거죠. 어느 날 남편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매일 똑같이 사람을 미워할 수가 있냐’고 묻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남편한테도 하소연 못 하고 넋두리를 할 데가 없어진 거예요. 결국 남편의 질문 덕분에 반복적인 습의 부딪힘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공부는 얕았지만, 그동안 들은 법문을 떠올리며 더 이상 남을 욕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한 가지 장점을 꼭 찾아내자. 그 사람의 1등인 점만 바라보고 받아들이자. 내가 인정하고 집중할 건 그 한 가지의 장점이다. 그 장점만 보고 나머지는 모두 다 넘기자. 달라서 부딪힐 수 있는 것이니 가볍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저쪽을 바꾸려고 하지 말자. 내가 바뀌자’라고 결심했죠.”
남을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몸소 깨닫고 나눠주신 은영 님을 다같이 찬탄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한 가지 장점을 찾자’라는 다짐을 지켜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은영 님은 법문 듣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매일 정진하며 스스로가 다짐한 인간관계에서의 원칙을 잘 지켜왔다. 사람의 단점만 보려는 마음을 버리고, 장점에 집중하는 연습 덕분에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고, 더 이상 미움과 불평 속에서 살지 않게 되었다는 경험담을 들으며 공부자리에 함께 한 분들이 공감했다.
법회에서 항상 듣는 법문이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고, 온 우주법계 그 자체가 부처님으로 꽉 차 있는 세계’라는 것인데 우리는 왜 부처님을 보지 못할까? 내가 따로 있다는 착각, 남과 대립해 있는 나의 생명이 따로 있다는 아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금강경에서 일러주신다. 그것이 없으면 온통 이 세상에 부처님만 계시니 그 부처님들께 오직 예경 올릴 뿐이라는 보현행원품의 법문도 동시에 떠오른다. 보현십원의 첫 번째인 예경제불(禮敬諸佛)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마음인데, 이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하심(下心)이다. 은영 님의 ‘장점 하나만 보고 나머지는 흘려보내겠다’는 마음 역시 하심의 표현 아니겠는가.
한탑 스님께서는 예경제불에 대해 이렇게 법문해주셨다. “티끌 수만큼 많은 부처님을 예배공경하라고 하신 것은 곧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중생을 공경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남들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분별심입니다. 나와 따로 떨어진 못난 중생이 있다는 분별심은 만심(慢心)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만심을 조복받으려면 하심해야 합니다. 하심은 곧 공경심과 같은 뜻으로, 하심을 몸으로 나타낸 것이 절입니다. 하심하여 겉모양에 속지 않고 보는 지혜가 열리면 모든 사람이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를 부처님으로 보면서 예배 공경한다는 것은 온 우주 전체에 부처님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부처님밖에 없는 세계, 즉 절대 무한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절하는 연습을 합니다. 우리가 정진하는 것은 ‘부처님과 같은 생명 내용으로 살겠습니다’ 하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절할 때나 정진하면서 발원할 때, ‘당신께서 이 세상 사람 전부를 부처님으로 모시듯이, 저도 세상 사람 모두를 부처님으로 보는 지혜의 눈을 열겠습니다’ 하는 것이 발원의 원칙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절을 부지런히 하면 내 지혜의 눈이 밝아집니다. 내 지혜의 눈이 밝아지면 밝아질수록 그만큼 이 세상이 밝아집니다. 이 세상은 본래 밝은 것인데 본래 밝은 것을 몰라서 어둡다고 생각했다가, 정진해서 내 마음이 밝아지면 그만큼 이 세상이 밝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