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율론 잘해야 범패도 잘할 수 있습니다”
16살 죽을 고비 넘긴 후 佛門 들어
은사 대은 스님 권유로 ‘범패’ 배워
범패, 경율론 바른 이해 있어야 가능
임종 시 가족들 울며 소리치는 것
망자가 生 정리할 시간 뺏는 행위
생의 애착도 원한만큼 좋지 않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홍원사에 들어서면 7층 석탑과 쌍사자, 석등, 포대 화상이 반겨준다. 활짝 핀 능소화는 담장을 장식하고 있으며,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도량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창건주 동주 원명 스님이 천일기도를 회향하고 사찰을 건립하기 위해 명당을 물색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옛 양천관아 터이고, 그 위에 현대식 건물로 홍원사를 지었다.
조계종 초대 어산어장 동주 원명 스님의 인터뷰는 스님의 주석처 홍원사에서 진행했다.
어산(魚山)은 범패, 범음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불교의식으로, 소리와 춤이 있다. 어산은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전통음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어장은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 불교의 재(齋)의식을 총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범패스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 근황을 여쭈었더니 “올 6월에 정오 스님과 함께 〈오종범음역해〉를 15년 걸려 출간했기에 숙제를 마친 느낌으로 홀가분하게 지내고 있어요”라고 했다.
곧바로 범패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물었다. 스님은 ‘운명’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가 스님이라서 어릴 때부터 염불과 범패에 익숙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천수경〉 〈반야심경〉 〈고왕경〉 등을 다 외웠어요. 아버지를 따라간 절에서 범패를 하고 바라춤을 추는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했지요.”
16살 때 심하게 아파서 죽음을 경험했다. 숨만 겨우 쉴 수 있을 정도였는데 죽더라도 유언은 남기고 싶었다. “내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으면 영혼 수계식을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야 다음 생에 일찍 출가를 할 것 같았다. 그때 만약 내가 살아나면 반드시 출가하겠다고 결심했다. 17살에 대은 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 직지사에서 고암 대종사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했다. 대강백으로 이름난 은사 대은 스님으로부터 대교과를 수료했다. 기억력이 좋으니 아무리 많은 분량을 가르쳐주어도 배우는 대로 다 외웠단다.
스님의 출가 당시에는 서울에서는 사미계 받고 나면 정해진 코스처럼 범패를 배웠다.
“은사 대은 스님께서 ‘범패를 배워야 중물이 든다’면서 출가하자마자 범패를 배우라고 했어요. 그때는 ‘중질할 줄 아느냐?’라는 말은 바로 ‘범패를 할 줄 아느냐’라는 뜻이었어요.”
은사스님의 말씀을 부처님 말씀으로 여겼으니, 서울 봉원사에 가서 상주권공(常住勸供)을 배웠다. 상주권공은 처음 범패를 배울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죽은 이를 위한 재이다. 이렇게 해서 송암 스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한 마디를 배우면 그것을 가지고 하루 10시간씩 연습했어요. 새벽 예불 올리고 시간 나면 연습하고, 저녁 예불하고 시간이 나면 또 혼자서 연습을 했어요. 송암 스님의 시봉을 제가 도맡아서 다했기에 재하러 가실 때 늘 모시고 다녔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혼자 100번 연습하는 것보다 선생하고 10번 하는 것이 낫고, 선생님하고 10번 하는 것보다 재장(齋場)에서 재 지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어요. 재장에서 보고 들은 것이 많았기에 관련 의식을 이틀 만에 다 배웠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한 번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어요”
동주 원명 스님은 독강으로 3년 만에 범패 전 과정을 다 배웠다. 다른 사람이 10년에 걸쳐 배울 것을 스님은 3년 만에 다 익혔으니 범패 천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동주 원명 스님은 선방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 밤을 새워가며 범패공부를 했다.
“어산을 하려면 경·율·론(經律論)을 모두 공부해야 합니다. 〈화엄경〉 〈정토경〉 〈법화경〉 〈조사어록〉을 바탕으로 해서 의식을 만들었기에 경전을 모르면 어산으로 활동하기가 힘들지요. 영혼 천도를 하려면 영과 마음이 통해야 하기에 계행이 청정해야 합니다. 시식, 대령, 관욕은 자격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자격이란 법력을 말하는데, 참선이든, 염불이든, 기도든 수행력이 있어야 해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문경 대승사 등 제방 선원에서 칠 년여 참선 공부를 하였다. 선원에 계실 때 기억나는 일화가 있는지 물으니, 극락암에서 여섯 철을 살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1972년 동안거 선방에 한 80명 넘게 모였어요. 극락암에 경봉 조실스님이 계셨는데, 연세가 많은 노장이라 돌아가시기 전에 지도를 받으려고 많은 스님이 모여들었어요. 10월 그믐날 종사영반이 있어요. 해마다 삽삼조사로부터 보조국사, 서산·사명 조사의 다례(茶禮)를 지내는 행사입니다. 영산재를 지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경봉 스님께서 사흘 동안 계속 말씀을 하시는데도, 저는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가만히 보니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닌 것 같아 경봉 조실스님을 찾아뵙고 의식을 좀 배웠다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내가 의식과 범패를 할 줄 아는 것이 들통이 나서 사흘이 멀다하고 불러냈어요.” 10년은 수좌로 살고 싶었는데, 참선 공부하러 왔는데 재를 올린다고 자꾸 불러내서 난감했다고 한다.
“처음에 선방에 가서 한 2, 3년은 오로지 정진에만 마음을 쏟았어요. 수좌 생활이 몸에 익혀지자 3년쯤 지나서는 해제에도 나오지 않고 선방에서만 지냈어요. 그때 혼자 고요한 산사에서 마당을 돌면서 그전에 배웠던 범패를 해봤어요. 그때서야 범패의 진수를 알았어요. 배울 때는 가락 외우느라 다른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몇 년간 수행정진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청정해져서인지 그 소리의 본래 경지가 느껴졌어요. 배운 소리를 해보니 이것이 바로 천상에서 천신들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리를 하다가 잠시라도 마음이 흐트러지면 소리가 다른 데로 가버려서 엉망이 되니, 마음이 고요하고 일심이 되어야 소리가 되는 것이란다. 스님은 소리라는 것은 선정의 극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실감했으며, 그것이 바로 부처님 세계라고 덧붙였다.
“불자라면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질 수 있어야”
자비심 갖고 내 가족과 이웃 대해야
지혜 키우려면 ‘불교 경전 공부’부터
“지혜 있는 사람, 죽음도 두렵지 않아”
동주 원명 스님은 한국불교에서 제일가는 어장인 송암 스님 문하에서 소리를 익혔다. 송암 스님은 열반하기 3일 전까지 강의를 하셨고, 제자들이 물으면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가르침을 주었다. 스승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이 동주 원명 스님은 2013년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3호 경제어산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주석처인 홍원사에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을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주 원명 스님의 문하에서 경제어산 이수자인 문현 스님, 정오 스님, 현준 스님 등 여러 경제어산 이수자와 전수자들이 배출되어 조계종단의 어산을 이끌어가고 있다.
조계종 어산 어장의 맥은 동주 원명 스님의 노력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05년 조계종 원로회의에 참석해 동주 원명 스님은 ‘1954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강원에는 강사, 선원에는 조실의 전통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지만 어산의 어장 전통은 끊어졌다. 어장을 복원하자’라고 건의했다. 이 건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법제화했다. 이에 따라 2006년에 동주 원명 스님이 조계종 초대 어산 어장으로 추대됐다.
스님께 불교 대표 재의식인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의 설명을 구했다. 설행하는 것만을 봐서는 속인이 보기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워서다.
“영산재는 죽은 자를 위한 재이고 49재입니다. 생전예수재는 죽어서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생전에 미리 지내는 재입니다. 이것도 사자(死者)를 위한 49재와 동일하게 49일 동안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수륙재(水陸齋)는 육지와 바다의 유주무주 고혼을 위해 지내는 의식입니다.”
스님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내외로 초청받아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을 시연하셨다. ‘음악은 세계적인 언어이기에 범패를 공연하면 외국인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해요. 그때 내가 범패의 길을 가고 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는 말씀을 하셨다.
동주 스님은 죽은 이를 위한 재를 많이 올리다 보니 임종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다. ‘마지막 생각이 다음 생을 결정 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임종이 중요하다. 그 중요성에 대해 스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평소에는 말을 안 듣다가도 무슨 소리가 나면 바로 반응해서 듣죠. 우리는 숨 안 쉬고 있으면 죽은 줄 알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몸뚱이 중에서 귀가 제일 늦게까지 의식이 남아있다고 해요. 임종을 앞둔 사람이 알아듣던지 못 알아듣던지 간에 저는 법문을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동주 원명 스님은 망자들에게 들려주는 법문 한 자락을 그 자리에서 전했다. 이 법문은 우리도 가슴에 새기면 좋을 것 같다.
“이 몸뚱이는 한 번 태어나면 죽는 거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해가 떴다가 시간이 되면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죽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내 말을 꼭 믿으면 반드시 당신은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당이나 극락세계에 간다. 왜 그런가 하면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 부처님이 약속했다.”
아미타불의 48대원 중에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이라 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불국토에 태어나려는 이는 내 이름을 염불하여 왕생하게 될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원래는 평생동안 지극 정성으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숨넘어갈 때만이라도 아미타불 10번만 부르면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비롯하여 스물다섯 보살을 대동하고 와서 극락세계로 데려오겠다고 부처님이 약속했다.
“아미타불 염불을 당신이 지극히 부르면 대보살과 스물다섯 보살이 당신을 극락세계로 데려간다. 두렵게 생각하지 말라. 이것을 영접받아 서방정토에 왕생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먼저 아미타불을 해요. 임종 직전의 사람이 소리 내서 염불은 못하니 생각으로 따라서 부르라고 합니다.”
동주 원명 스님이 염불을 10분 정도 해주면 금방 돌아가시는 분도 있고, 손발이 다 굳고 금방 죽을 것 같았는데 깨어난 분도 보았다고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듣고 극락세계로 가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이 그대로 읽혀진다. 염불 수행을 꾸준히 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 연결됐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내 스님은 염불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신라시대에 금강산 건봉사에서 32명의 스님들이 ‘만일염불회’를 결성해 염불수행을 했어요. 건봉사에 만일염불회를 연 32인이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갔다는 것을 기록한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1만일 동안 부른다는 것, 1000일을 10번 곱하여야 1만일이 된다. 2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실로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면 서방정토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총림이라고 하면 선원·강원·율원·염불원이 갖춰져 있었는데, 지금은 통도사 한 군데만 염불원이 있는 것이 좀 안타깝습니다. 옛 염불원에는 북과 광쇠가 갖추어져 있어 그걸 치면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는데 참 신명나지요.”
스님은 인연이 닿으면 임종염불과 임종법문을 한다. 특히 임종을 앞둔 가족들에겐 숨넘어갈 때 울지 말고 조용히 아미타불 염불을 해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죽을 땐 잘 죽어야 합니다. 시끄럽게 아버지, 어머니하고 부르면서 울고 소리치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마지막 귀한 시간을 빼앗는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애착, 재산에 대한 애착이 있으면 자꾸 뒤를 돌아보니 좋은 곳에 가기 어렵지요. 우리가 원한이 있으면 좋은 곳에 못 간다고 하잖아요. 애착도 원한만큼 좋지 않습니다.”
동주 원명 스님은 팔순 노구이지만 새벽 종송을 하고, 새벽 예불을 올린다. 지금도 새벽에 600배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팔순이신데 그렇게 절을 많이 하시면 무릎이 괜찮은지 걱정이 됩니다”라고 했더니 “다리가 좋지 않긴 하지만, 수행자에겐 당연한 일”이라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현대불교신문 독자들을 위해 불법(佛法)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법문을 요청했다. 이내 스님의 법문이 곧바로 이어졌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완전히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신(迷信)이란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희미하게 믿는 마음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의심하고, 이러면 될까 안될까 하고 저울질하니 기도가 안 되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을 100% 믿고 기도하면 성취하지 못할 일이 없어요. 〈금강경〉에 ‘여래는 참된 말을 하는 자이고, 실다운 말을 하는 자이며, 한결같은 말을 하는 자이며,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자이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이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중생들이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으니 5번이나 간곡하게 말씀을 하셨어요. 불자가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고 기도를 올린다면 소원성취가 될까요?”
그러면서 스님은 “불교는 자비와 지혜의 종교인데 불자들은 경전공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자비심을 가지고 내 가족과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지혜를 키우려면 경전공부를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경전의 지식을 통해서 지혜를 깨닫는 거예요. 지혜가 있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도 두렵지 않아요. 살려준다고 해도 고마울 것이 없어요. 지혜로 생사가 본래 없음을 깨달으면 우린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어요.”
자리를 일어나며 인사를 올리니 스님은 짧은 법문이자 당부로 화답했다. 스님이 설한 법문은 내겐 ‘금구(金口)’로 다가왔다.
“부처님 말씀을 믿고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지난해보다는 올해가 더 행복해야 하고, 지난달보다 이달이 더 행복해져 하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해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