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송마나의  시절인연] 제주 법성도〈法性圖〉와 감로수

그림·최주현
그림·최주현

제주도 불교 성지순례 ‘선정의 길’을 두 차례 나누어 순례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선덕사(善德寺)로 들어가는 고즈넉한 숲길은 세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일주문을 지나자 탁 트인 경관이 신생의 설렘을 안겨 주었다. 오층 석탑을 지나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대적광전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 법성도(法性圖)가 조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신라 의상대사가 <화엄경>을 요약하여 진리의 세계를 7언(言) 30구(句)의 게송으로 요약하여 54각의 사각인(四角印) 속에 새겨 넣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제주도의 형상처럼 연못물 위로 네모반듯한 대리석에 조각된 법성도가 진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법성도를 에워싼 연못물에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멀리서 병풍을 두르고 있는 한라산 자락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내려앉았다. 빨강, 하양, 얼룩무늬 잉어들이 유유자적 노닐고 있었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연못 바닥이 훤히 보였다. 

깨끗한 것이 물의 본성일까? 물은 시냇물처럼 땅 위를 흘러가면서 깨끗해지고, 땅속을 이리저리 누비면서 깨끗해진다. 물은 호수처럼 고요히 가라앉아 깨끗해지고, 바다처럼 세상의 온갖 오염을 받아들여도 정화하여 깨끗해진다. 물은 언제나 깨끗한 물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아마도 물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깨끗한 물은 만물을 살려주는 생명수가 된다. 우리는 물을 마시지 않고 며칠이나 생존할 수 있을까. 지난 8월, 그 뜨거운 목마름에 우리는 고량진미보다는 깨끗한 물 한 잔을 먼저 찾았다. 동물이나 초목도 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이뿐이랴, 물이 없으면 더러워진 몸을 어떻게 씻고, 공장 용수가 없으면 공장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까. 

물은 깨끗할 때가 물이지 깨끗하지 못하면 물이 아니다. 생명은 물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생명은 깨끗하고 순수하다. 그래서 대부분 종교에서 물은 성스러움, 순결함, 거듭남을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의 사제들은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깨끗한 물을 그들의 머리와 손에 부었다. 예수가 요단강에 잠겨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입문할 때 욕조에 온몸을 담그거나 머리에 물을 뿌리는 세례를 거행한다. 인도의 바라나시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힌두교인이 찾아와 강물 속으로 몸을 담근다. 불교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아기 부처님 상을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을 행한다. 이것은 중생이 오욕의 때를 벗고 깨끗한 마음으로 거듭나는 것을 상징한다. 즉 깨달음을 얻어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깨끗한 감로수는 병을 치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관세음보살과 약사여래불은 호로병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병에 담긴 감로수(甘露水)는 달콤한 이슬, 부처님 말씀이다. 감로수는 육체에 깃든 병은 물론이고 마음의 병을 낫게 하는 진리의 말씀이다. 

법성도가 조성된 연못물이 유난히 깨끗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연못 둘레에 서 있는 관세음보살상의 호로병에서 감로수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청정한 감로수가 ‘화엄일승법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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