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미디어 인 붓다]45. 영화 〈퍼펙트 데이즈〉

지금은 지금, 일상이라는 화두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 일상 담아
도시 위생 매진…구도자 같은 모습 

영화 ‘퍼펙트 데이즈’ 한 장면 갈무리.
영화 ‘퍼펙트 데이즈’ 한 장면 갈무리.

나라를 새로 세우는 큰일을 함께 한 이성계가 무학 대사 사이에 있었던 여러 일화 가운데 하나. 하루는 이성계가 무학 대사에게 “내 눈에는 대사가 돼지로 보입니다”라고 했더니 무학 대사는 태조 이성계에게 “제 눈에는 전하가 부처님으로 보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여워하거나 당황하라고 건넨 수작에 저런 답을 들은 이성계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무학 대사는 천역덕스럽게 “돼지 눈에 돼지가 보이고, 부처 눈에 부처가 보인다”고 답했다. 같은 것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 그리고 같은 상황도 격에 따라 급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퍼펙트 데이즈〉도 그런 예가 될만한 영화다.

모름지기 극영화란 꽤 별스런 사건의 기승전결이 있어야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별스런 점을 굳이 찾아야한다면 썩 별스런 사건이 없어 보이는 것이 그나마 별스러운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누군가 ‘〈퍼펙트 데이즈〉가 어떤 영화야’라고 묻는다면 영화의 등장인물과 줄거리, 배경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유난한 관심을 갖게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로 엮어낼 만한 기승전결의 서사가 없고, 서사물의 주인공이 겪는 사건을 통한 성장이나 변화도 없으니까.

그래도 이 영화를 설명할 거리는 나름 굵직굵직하다. 제목 못지않은 ‘퍼펙트’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리라는 보증이 국제영화제 수상 이력이나 감독과 배우의 명망을 더하는 영화계 인심으로 볼 때,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독일 감독 빔 벤더스가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야쿠쇼 코지를 주연으로한 합작 영화인 〈퍼펙트 데이즈〉는 딱 어떤 내용이라서가 아니라 막연히 뭔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영화일 것이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은 종교인들이 선정하는 에큐메니컬상과 심사위원들이 선정하는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 영화에서 어떤 종교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구도’ 또는 ‘수행’의 미학을 펼쳐 보인다. 그러면서도 딱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장면, 듣고 싶어 할 소리, 느끼고 싶어 할 감정들을 정교하게 연출해서 얼핏 일상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허투루 새어나가는 우연 하나 들어설 틈 없이 꽉 짜여 있다. 

이 영화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개최되었던 2020 도쿄 올림픽에 맞춘 홍보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위생’이 전세계적 화두이던 시기에 사람이 모여도 되는가를 걱정할 때,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는 기획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것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올림픽이 열리기에 안전한 도시로 도쿄를 알려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가장 더럽다고 여겨지는 화장실조차 아름답고 깔끔하니 도쿄 방문을 꺼리지 말라는 홍보를 하기 위해 공중 화장실을 무대로 단편 영화와 사진집을 제작하려는 고도의 문화 마케팅을 위해 빔 벤더스에게 단편을 의뢰했던 것이다.

제안받은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찍기로 한 빔 벤더스 감독은 3주 만에 시나리오를 쓰고 17일 만에 촬영을 마쳤다. 엄청난 세트나 로케이션 다 필요 없고 안전한 일상, 그것이 바로 ‘퍼펙트 데이즈’라고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다고 할까.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올림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이다. 바로 도시의 위생. 그 위생의 최전선은 공중화장실. 히로야마가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분재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차려 입고, 온갖 청소도구를 차에 싣고 도시 곳곳의 공중화장실을 찾아가서, 최첨단 장치로 관리되는 화장실들을 뽀득뽀득 정갈하게 관리하는 모습은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히라야마는 그야말로 공중화장실의 청결을 위해 헌신하는 구도자와도 같다. 혼자 살고, 하루 종일 흐트러지지 않으며,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주시하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쓱 도움을 주면서도 가까워지려하지 않는다. 

일할 때는 자동차로, 일상생활을 할 때는 자전거로 도쿄 구석구석을 누비는 히라야마를 따라가다 보면 카메라는 도쿄 전체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된다. 출근길에는 주택가에서 도심지까지 뒷골목부터 해안도로까지 두루 보여주고, 일단 일을 시작하고 나면 놀이터에 있는 공중화장실, 상가에 있는 공중화장실, 공원에 있는 공중화장실까지 도쿄에는 얼마나 많은 화장실들이 개방적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참 사회적 거리두기가 뉴노멀이던 당시의 글로벌 지침도 잘 지켜진다. 같은 화장실 청소업체 직원끼리도 한 공간에서 일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칸에서 따로 구역을 책임진다. 히라야마는 혼자 사는 초로의 남성이고 그래서 ‘위생적으로 더 안전한’ 인물이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마당을 쓰는 빗질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지만 그 이웃과 눈인사 말고는 별다른 접촉도 하지 않는다. 일을 마치면 공중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지만 거기서도 다른 이용객과 서로 등을 밀어주는 정도의 사소한 접촉도 하지 않는다. 상가에 있는 식당에 가서 스포츠 중계를 보며 음식을 사 먹을 때도 혼자 주문해서 따로 먹고, 쉬는 날 찾아가는 단골 선술집 여사장의 식당에서 각자 따로 온 단골들끼리 기타치고 노래하며 나름 여흥을 즐길 때도 절대 합석하지 않는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신사 벤치에서 날마다 마주치는 아주 외롭고 힘들어 보이는 여성과도 인사 말고는 아무것도 나누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에 외로움에 사무쳐 울거나 흐트러지는 일도 없다. 빔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를 화장실 청소 노동을 하지만 노동계급은 아닌, 어쩌면 그 일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구도자로 설정해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주인공의 시선에 이입하는데 꺼릴 것이 없도록 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끄러운 것은 히라야마가 쓸고 닦는 화장실의 거울이 아니라 히라야마 그 자신이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코로나 시기의 스케치로 충분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독은 살짝 틈을 낸다. 그 접촉은 다 여성으로부터 온다. 히라야마 직장 후배의 여자친구, 가출하고 찾아온 조카, 조카를 데리러 온 여동생. 히라야마가 지키는 어떤 경계를 이 여성들은 사소하지만 거리끼지 않고 슬쩍 건드린다. 그러면서도 바로 떨어져 간다. 올드팝이나 중고책이 히라야마에게서 계급성을 탈색시켰듯이 그 접촉들은 히라야마에게 남성성과 인간성을 채색한다.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는 정말 최선을 다해 타인의 안전, 도시의 위생과 안전을 위해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헌신하는 인물을 구현해냈고, 코로나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그 헌신은 강박이 아니라 구도자의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나서 감독은 ‘코모레비’라는 말을 쿠키로 남겨놓았다. 일본어 ‘코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이란 뜻인데, 그것은 오직 한때, 한 순간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 영화는 코로나 시기였기에 기획되고 제작될 수 있었던 영화적 코모레비, 일상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코모레비일 것이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이라고 일깨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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