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대장부에게 서쪽에만 극락 있겠나
긍정적으로 생각한 자리, 향기로운 꽃 핀다
어찌 서쪽에만 극락이랴
옳거나 그르거니 내 몰라라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법정 스님(1932~2010)은 따로 오도송이나 열반송을 남기지 않았다. 월주 스님도 “내가 살아온 일생의 삶이 오도송이고 열반송”이라고 하였다. 법정 스님은 산문으로 필명을 얻었지만 어쩌다가 몰록 남긴 선시는 깨달음의 경지가 깊고 진하여 감동을 주었다.
이 시는 속가의 외조카이며, 조카상좌인 현장 스님에게 생전에 붓으로 써서 준 자작 애송시이니, 스님의 오도송으로 봐도 좋겠다. 법정 스님의 모습과 성격처럼 깔끔하고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고 속기가 없는 청아한 품격을 느끼게 하는 우리의 전통 가락인 3·3·5조의 선취시(禪趣詩)이다.
이 시는 시시비비(是是非非)의 분별심을 떠나고, 번뇌 망상의 먹구름만 걷히면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인 청산(靑山)임을 밝힌 깨달음의 노래이다. 산과 물을 함부로 훼손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자연보호와 생명 사랑의 마음이 불교의 연기사상으로 잘 표현되었다.
불교 수행의 핵심은 내 생각만 옳다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아만심(我相)을 다스리는 공부이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갈등과 고통의 근원은 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일이다.
결국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은 생불조사의 사자후이다. 어찌 깨달은 대장부에게 서쪽에만 극락이 있겠는가. 처처가 부처 없는 곳이 없고 일마다 불사가 아닌 것이 없다. 임제 선사는 “언제 어디서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는 정토가 된다”고 했다.
법정 스님은 ‘살 때와 죽을 때’란 글에서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라고 했다. 스님은 투철하게 공부했고, 엄격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절제했다.
스님은 영가 대사의 말씀대로 몸에는 항상 누더기옷을 걸친 가난한 수행자였으나 도는 가난하지 않고 마음속에는 무가보(無價寶)의 보배구슬을 지니고 수행했다. 청빈(淸貧) 무소유는 스님의 힘이요, 화두였다. 버리고 또 버려서 무소유가 되었고, 비우고 또 비워서 텅 빈 마음인 본래 마음자리의 모습이 되었다. 국민들은 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을 통해서 위로받았다.
재화가 신이 돼버린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무소유적 삶을 몸소 실천하여 실험으로 증명해 보이신 거룩한 삶이었다.
스님께서는 “등산을 할 때 너무 많이 물건을 챙기면 도리어 그것이 짐이 되듯이 꼭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라. 너무 많이 소유하려니까 물질의 노예가 된다”고 했다.
필자가 법정 스님께서 길상사를 떠나시던 날 애도의 마음을 담아 ‘비구 법정 가시는 날’을 지어 읊조렸다.
“<전략> 스님은 흔한 만장 하나 없이 그냥 훌훌 털고 평상복 차림으로 가셨습니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매서운데 기어이 먼 길 떠나셨습니다. 지는 꽃보다도 아름다운 스님 가시는 모습 깨끗하다 거룩하다 합장하여 불러 봅니다. 그 동안 스님이 있어서 세상은 향기가 있었습니다. 무소유 맑고 향기로운 세상 스님이 저희에게 남기고 간 숙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