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살이 돼야 지구가 살아납니다”
2015년 불교환경연대 대표 맡아
연기법 입각한 환경운동 전개해
녹색사찰운동으로 생활실천 유도
올 초 회원 배가 캠페인 ‘성공적’
“환경운동 통해 佛法 실천합시다”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의 삶에서 수없이 많은 글자를 보게 된다. 마주친 글자 앞에서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할 때가 많지만 요새는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 마주했던 많은 글 중에서 한참 동안 몸과 마음이 붙잡힌 것이 있었다. ‘우리가 살리면 우리를 살린다.’ 어디서 한 번은 본 것 같고, 또 들은 것 같은 이 글을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느낀 전율은 아직도 깊이 박혀 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연기(緣起)와 상생(相生)을 온전하게 담아낸 이 글을 만난 곳은 불교환경연대다.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상황과 처지, 그리고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할지를 단적으로 담아낸 글에는 뭔가 단단한 신념과 의지가 가득했다.
불교계 유일의 환경운동단체로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만 스님을 만나기 위해 고창 선운사 참당암으로 향했다. 여름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암자는 단정했다. 대중들이 여법하게 수행하고 정진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된 느낌이다.
법만 스님은 선운사 주지 소임을 맡기 전에도 참당암에서 정진했고 8년간의 봉사를 마치고 다시 참당암으로 돌아와서도 전과 같이 수행하고 있다. 선운사 주지를 끝내고 2015년 7월 5일 시작한 지장참회 천일기도를 벌써 세 번 진행했고 네 번째 천일기도를 하고 있다. 100여 명으로 시작한 기도대중은 700여 명까지 늘었다. 안거 때마다 10명 안팎의 수좌들이 화두를 들고 있는 참당선원의 기세도 여전했다. 수행과 기도를 강조하는 스님의 출가인연부터 확인했다.
生死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생사(生死)에 대한 의문이 컸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등이 궁금했어요. 삶과 죽음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고 집 근처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죠. 그렇게 지내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선운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습니다.”
스님은 선운사에서 대중스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스님이 되면 생사에 대한 고민을 해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출가를 결심했다. 스님은 선운사에 오기 전까지 철저한 불교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관련 책이라고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본 것이 전부였다.
“제가 출가할 때만 해도 고창읍내에서 선운사로 오는 버스가 하루 2대뿐이었습니다. 정말로 시골의 한가로운 절이었지요. 그래도 참 운치 있고 좋았어요. 다만 먹고 사는 것은 참 힘들었죠. 매일 산에 가서 나무하고 밭에서 일하고 도량 청소하고 노스님들 수발하고 그랬습니다.”
스님은 출가 후 3년여 동안 전국 사찰을 둘러봤다고 한다. 어디든 가면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맘 편히’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다니고 나서야 방랑기가 없어진 것 같다며 스님은 웃었다.
“사미계를 받고는 바로 선방에 갔습니다. 그땐 정말 견성(見性)하겠다고 다짐하고 갔습니다. 부처님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듯이 저도 누구의 가르침이나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깨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경전도 안 봤습니다. 처음 간 곳이 통도사 선원이었습니다. 이후에 해인사와 송광사에도 갔습니다. 삼보(三寶)사찰을 차례대로 간 것이죠. 해인사 선원에는 성철 스님과 혜암, 법전 스님이 계셨고 일타 스님도 가끔 오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기라성 같은 어른들 밑에 있었죠. 해인사 선원에 있을 때 공부가 가장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해인사에서 공부하던 중 어떤 경계라고 할까 그런 것에 부닥쳤습니다. 생사 없는 도리 같은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거기에서 멈춰버렸습니다.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고 눈만 크게 뜨면 보일 것만 같았는데 더 이상 진전이 없었어요.”
법만 스님은 “그때 어른스님들께 점검을 받았어야 했는데, 혼자 하겠다는 생각에 끙끙 앓기만 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때가 가장 아쉽고 후회스럽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몇 군데의 선방을 더 다니다 선운사에서 재무 소임을 맡았다. 은사스님을 도와 살림을 챙긴 것이다.
“선원에서 정진하면서 본분사(本分事)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복(福)이 부족하구나. 복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수행과 포교를 이어가던 중 스님은 1995년 동안거부터 참당암에 선원을 열고 수좌스님들과 함께 정진을 이어갔다. 틈틈이 고불총림 방장 서옹 스님을 찾아 공부에 대한 의문을 해소했다. 스스로의 공부와 함께 대중외호에도 힘썼던 스님은 2007년 선운사 주지를 맡아 사격(寺格)을 일신했다.
전국의 교구본사 중 처음으로 승려노후수행마을을 조성해 승려복지를 시작했고 불교사회복지실천을 위해 여러 곳의 고창군 복지시설을 운영했다. 또 초기불전 불학승가대학원을 열어 스님들의 공부환경을 조성했고 선운문화제를 매년 열었으며 템플스테이 등도 활성화시켰다.
고창읍내 불교회관 불사도 법만 스님이 시작했다. 조용하던 선운사가 들썩이면서 호남지역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이 법만 스님에게 “호남에 본사가 선운사밖에 없느냐”며 부러워했을 정도. 하지만 스님은 참당암으로 돌아왔다. “선운사 발전의 토대를 닦았으니 후배들이 더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법만 스님다운 선택이었다. 참당암에서 수행과 기도를 재개할 때 찾아온 인연이 바로 불교환경연대였다.
“환경과 우린 不二…온 생명을 내 몸 같이 여겨라”
환경은 ‘依報’, 주체인 나는 ‘正報’
“‘依正不二’ 가르침 깊이 되새겨야”
기후위기, 소외계층에게 더 치명적
불자들 ‘不請之友’ 돼 이웃 살피야
소욕지족의 삶 전환해야 위기 극복
불교와 환경, 願力과 信心
법만 스님은 2015년 가을 공동대표 소임을 맡으면서 불교환경연대와의 인연을 본격적으로 만들어갔다. 2019년 2월부터는 상임대표로서 불교환경연대를 이끌고 있다.
“불교환경연대는 2001년 수경 스님을 중심으로 창립하여 ‘삼보일배 오체투지’라는 불교적 수행법으로 거대 자본, 거대 권력으로부터 생명과 미래를 지키고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2001년 본부 창립에 이어 2008년 광주전남지부, 2018년 울산지부, 2021년 출범한 부산지부와 올해 출범예정인 전북지부의 활발한 활동 덕분에 불교환경연대는 명실상부한 전국 조직이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온 생명의 벗이 되는 환경보살의 길을 더욱 힘차게 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불교환경연대는 가장 불교적인 해법으로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불교환경연대는 2018년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찰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환경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 녹색사찰운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녹색사찰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비닐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며, 빈그릇운동을 실천하고,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 등으로 불자님들과 시민들에게 환경문제를 알리고 실천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전하는 불교환경연대의 역사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불교환경연대의 ‘고난의 행군’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불교환경연대는 최근 회원배가운동을 진행했다. 법만 스님 역시 90명의 출재가 도반을 회원으로 초대했다.
“지난 1월에 전국 활동가 워크숍이 있었어요. 그때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모시고 회원 확대에 대한 사례발표를 들었습니다. 워크숍에서 ‘생명의봄 피어라-초록릴레이’로 명칭을 정하고 4월 13일부터 6월 5일 환경의 날까지 54일간 회원 확대를 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회원 1300여 명에 더해 이번에 신규회원 700여 명을 새롭게 모셨습니다. 아마 불교계 NGO에서 월 1만원 이상의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이 2000명이 넘는 단체는 매우 드물 것입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불교환경연대 활동과 부처님의 생명존중 사상에 대해 호응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회원 확대의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불교시민단체를 운영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苦)의 길이다. 법만 스님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예산과 사람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죠. 그래서 회원 확대를 하게 된 것이고요. 회원의 회비를 늘리고 함께 활동할 사람을 모으고자 한 것입니다. 불교환경연대는 중앙정부나 지자체, 종단으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 오롯이 사찰과 불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에 의존할 경우 보조금이 끊기면 운영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몇 명의 임원이나 소수의 거액 후원자에 의존하는 것도 건강한 시민단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단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고 앞으로도 회원 확대를 꾸준히 하면서 회원들과 소통하고 기후위기와 생태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불교환경연대 회원이 되어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환경운동, 기후위기시대 포교 방안”
법만 스님은 불교환경운동이 바로 기후위기 시대에서 ‘최선의 포교’라고 강조했다.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인 연기(緣起)와 중도(中道), 생명존중과 자비 실천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환경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현재 지구는 기후위기라는 인류 전체의 생존이 달린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어요. 인간에 의해 촉발된 기후위기는 인류의 생존뿐만 아니라 무수한 다른 생명체들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으니 커다란 죄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구는 현세대만의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기에 그 책임은 더욱 무겁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와 풍요로움으로 강과 바다, 하늘과 땅이 오염되었습니다.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후 1.2°C가 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는 이상기후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생물 다양성은 급격히 훼손되어 인류에 의한 모든 생물의 대멸종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제 환경문제는 한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를 넘어서 전 인류, 전 생명의 생존의 문제가 되었어요.
부처님께서는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굳게 믿으며 남보다 더 잘 살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이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성공과 행복의 척도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 나와 너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부처님의 연기론적 세계관과 생명관에 기반하여 지속 가능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구 공동체를 이루도록 개인과 사회가 전 지구적으로 노력하고 변화를 촉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법만 스님은 <금강경>에서 말하는 여의여야 할 네 가지 상(四相)인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나와 남을, 인간과 비인간을, 생명과 무생명을, 존재와 비존재를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이것들을 버릴 때 부처님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또 기후위기로 고통 받을 수 있는 소외된 이웃들을 살펴야 할 의무가 불자들에게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불교에는 불청지우(不請之友)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청하지 않은 벗, 누가 부르지 않았더라도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부처님 당시 재가불자 중에는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자비와 선행을 베풀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기후위기는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그 고통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불청지우가 되어 이웃을 살피고 먼저 다가가 친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만 스님은 ‘의정불이(依正不二)’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리가 의지하고 살아가는 환경인 의보(依報)와 주체인 내가 정보(正報)로서, 서로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곧 우리의 몸을 이룹니다. 이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환경과 내가 둘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모든 존재나 현상은 원인과 조건이 있어 인연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우리는 자연을 황폐화시키는 배은망덕한 행위를 함으로써 이제 자연으로부터 심각한 재난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연이 노(怒)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 행위에 따른 인과응보입니다. 모든 중생이 부처의 성품을 지녔다는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 그리고 환경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의정불이(依正不二)의 부처님 가르침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환경문제를 곧 내 문제로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스님은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경 스님이 제안했던 ‘공양송’을 전했다. “연기법의 가르침과 생태학의 지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이 밥은/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이 밥으로/땅과 물이 나의 옛 몸이요/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이 밥으로/우주와 한 몸이 됩니다/그리하여 공양입니다.// 온몸 온 마음으로/온 생명을 섬기겠습니다.’
“연기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는 사회, 나의 이익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살펴서 어떤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바로 자연도 살고 우리 자신도 살고 우리 공동체도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탐욕을 절제하고 나와 남이 함께 유익한 자리이타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이자 행복의 길입니다. ‘우리가 살리면 우리를 살린다’는 불교환경연대 구호입니다. 생태위기와 빈부격차 등 다중의 위기 앞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알고 스스로 욕망을 절제하는 소욕지족의 삶으로 전환할 때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고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법만 스님은 인터뷰 내내 차분했다. 오랜 기도와 수행에서 나오는 불교와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도 명확했다. 출가 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여준 성과 그대로, 앞으로도 만들어갈 법만 스님의 ‘그림’들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