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불국토 경주 남산에 오르다] 15. 경주 남산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

통일신라 불상은 왜 박물관에 있어야 할까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전시되며
불상 유랑 시작…현재 國博 전시
문화유산 이전 예경 대상인 ‘성보’
불상 의미 바르게 살필 수 있어야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약사여래좌상의 유리건판 사진(왼쪽)과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된 모습.(오른쪽) 예경의 대상인 불상이 박물관 전시물로 있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한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약사여래좌상의 유리건판 사진(왼쪽)과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된 모습.(오른쪽) 예경의 대상인 불상이 박물관 전시물로 있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한다. 

해인사 홍제암 입구에는 한국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던 사명 대사(1544~1610)의 비문 석장비가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일반 백성 일반 사람들은 일본군의 침략으로 죽음의 공포와 기아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때 조선의 스님들은 모두 살생을 해야 하였기에 지옥고에 떨어질 각오를 하고, 칼을 들고 맞서 싸웠다. 조선을 지키고 백성의 목숨을 지킨 스님들이 무장하고 왜군과 맞서 싸운 호국불교는 지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석장비는 조선 승병을 대표하던 사명 대사가 입적하자 광해군이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와 함께 세워준 비문이다. 

사명 대사의 석장비는 숭유억불의 조선에서도 기리려 했던 호국 승병의 대표적 활약상이 적혀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되면 한 친일 승려에 의해 4조각으로 깨져서 버려졌으며, 지금은 수습해 놓았으나 아직 깨졌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상징성이 강한 문화유산은 이처럼 억압받는 시대엔 그 의미가 퇴색되고 천덕꾸러기처럼 깨지고 버려져야 할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집단의 성격이 바뀌면 자긍심을 돋보일 그리고 가꾸고 알려야 할 문화유산으로 의미를 갖게 된다. 어떤 문화유산의 유구건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느냐에 따라 그 품격과 관심과 대우가 달라진다. 이것은 상식적인 당연한 소리일 것이다. 즉 문화유산 성격 규정은 그 문화유산의 가치를 결정한다.

지금 용산 소재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에 개관하였으며 2023년 기준으로 400만 명이 방문한 세계 6위의 박물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어 있다. 박물관은 어릴 때부터 자주 갔던 곳이다. 지금도 자주 가는데 3층 불교조각실은 무조건 들른다. 스님이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고려 이전 최고의 불상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상 대사의 유지를 받든 화엄십찰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화엄을 대표하던 서산의 보원사지 금당에는 웅장한 방형 기단이 있다. 불교조각실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보원사지 금당에 모셔졌던 철불이 거친 웅장함으로 보는 눈길을 매료시킨다. 건너편에는 경기 하남의 하사창동에서 발견된 우리나라 철불 중 가장 큰 불좌상이 있다. 좌우의 웅장하고 거친 철불의 매력에 압도당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앞 통일신라 석불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정면에는 경주 감산사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의 귀족 김지성이 719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조성한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여래입상이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뒤쪽에 명문이 있는 광배와 불상은 하나의 돌이며, 조각의 섬세함과 뛰어남은 따라올 불상이 없을 정도다. 오른쪽에는 통일신라 800년대 후기 조성된 10대의 얼굴인가 싶어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그리고 건너편 좌측에는 오늘의 주인공 경주 남산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다. 

그런데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서 있거나 웅크리고 앉아서 쳐다보면 눈두덩이가 엄청나게 부풀어있다. 800년대 전후 조형미가 최상에 이르렀을 때의 불상인데 의도적으로 눈구덩이를 부풀어 오르게 조각한 것일까? 처음 보았을 때는 통일신라시대 귀티 나는 인물상은 이런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석조약사불좌상의 사연을 알고 난 지금은 슬피 울어 부풀어 오른 눈구덩이로 보여 착잡한 심정이 든다. 

동남산에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더 오르다 보면 석조약사불좌상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인다. 건너편 경사진 언덕 위에 원래의 자리가 남아있다. 상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일제강점기 때 넘어지거나 불두가 손상된 흔적이 없이 발견된 불상이다. 얼굴과 어깨의 웅장함과 광배의 화려함 그리고 중대석 8각마다 타원의 음각에 양각으로 불보살과 향로를 조각한 장식은 800년 전후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은 1914년 남산에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라는 행사를 경복궁에서 진행하였는데, 이 행사를 위해 장식품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때부터 참배와 순례의 대상인 불상은 구경거리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약사여래부처님은 지금도 참배와 순례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곡 원래의 자리를 알지만, 누구 하나 다시 모시려 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삼릉곡 약사여래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실에서 날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렇기에 너무 울어 눈구덩이가 부풀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안타까움일까!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을 보면 삼릉곡 약사여래좌상은 원래의 장소와 모습이 확인된다. 모습을 보면 남산 삼릉곡 탁 트인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중생을 보살피시던 부처님이었다. 이 세상 중생들의 아픔을 달래주던 약사여래 부처님이 삼릉곡 약사여래좌상이었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동방 세계 약사유리광여래란 명칭을 갖고 있다. 또한 중생의 아픔을 치료해주는 가장 큰 의사 부처님인 대의왕불이란 명칭도 있다. 

그래서 중생들을 치료하기 위해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는 부처님이다.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병이 나자 〈약사경〉을 봉독하고 나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755년 경덕왕이 분황사에 30만 6700근이 나가는 약사 여래상을 안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국에서 약사여래 부처님은 7세기부터 중생을 치료하는 부처로 여겨지며 숭배의 대상으로 모셔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의 ‘신주제6-밀본최사’와 ‘탑상제4-분황사약사’의 내용이다.

선덕왕(善德王) 덕만(德曼)이 병에 걸린 지 오래되었는데,(···)밀본은 신장(宸仗) 밖에서 〈약사경(藥師經)〉을 읽었다. (···)왕의 병이 이에 나았는데.

분황사(芬皇寺)의 약사여래동상(藥師銅像)을 주조하였는데 무게가 30만 6천 7백 근이요.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실에는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를 대표하는 웅장하고 멋진 석불과 철불이 있다. 그런데 기원과 예를 올릴 방법이 없어 참배와 순례의 대상이 아닌 관람객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다. 중생의 아픔을 치료해주시는 웅장하고 멋진 부처님이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에 전시되고 있다. 원래의 위치를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장소가 마땅하지 못하다면 박물관에 보존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누구도 반박하지 못한다. 

보원사지 철불, 감산사지 입상과 함께 삼릉곡 약사여래불좌상은 원래의 자리가 확인되는 불상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 많은 사람이 부처님 세상 불국정토를 참배하고 순례하며 부처님을 뵙고 아픔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전국 박물관에 있는 원래의 자리를 아는 불상은 참배와 순례의 대상으로 자기 자리에 갈 수 있도록 원력을 세웠으면 좋겠다. 이러한 원력은 이어져서 박물관에 유물로 전시되는 부처님이 원래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신심과 아픔을 달래주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경주 남산의 삼릉곡 약사여래좌상을 부처님 세상 불국정토를 다시 이루도록 모셔드렸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의무이며 책임이며 숙제이고 이루고 싶은 꿈이다.

불교문화유산 불상은 보존의 대상이기 이전에 참배와 순례의 대상이다. 일반적인 문화유산은 보존이 원칙이지만 문화유산이자 성보(聖寶)인 불상은 참배와 순례, 그리고 신앙의 특수성이 보존보다 앞서야 한다. 박물관 전시물로 전락한 불상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불상은 대중에게 구경거리인 문화유산으로 인식될 뿐 불교 성보로서 참배와 순례의 가치는 사라진 상태이다. 이것은 어떻게든 풀어나가야 할 한국불교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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