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김영애의 안심뜰] 나는 나를 뭐로 보고 있나?

14. 무시당할 나도 없고 무시할 너도 없다

스스로 ‘부처님 생명’임을 깨닫는다면
요동치는 마음 가라앉히고 솔직해져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책을 읽다가 문득 예전에 보았던 극락과 지옥의 젓가락 그림이 떠올랐다. 극락과 지옥 모두 집도 옷도 음식도 같고, 1m나 되는 긴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규칙도 같은데, 똑같은 진수성찬의 밥상에서 지옥의 사람들은 피골이 상접한 채 굶주림에 쓰러져가는 반면, 극락의 사람들은 건강한 얼굴빛으로 서로를 챙기며 즐겁게 식사하는 그림이다. 

지옥의 사람들은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자기 입에 넣으려고 팔을 굽히고 목을 길게 빼지만 음식을 입에 넣을 수가 없다. 남의 젓가락 끝에 달린 음식을 먹으려다가 싸움이 벌어지고, 1미터의 젓가락은 주변 사람을 찌르는 무기가 된다. 그야말로 지옥이다. 

그러나 극락의 사람들은 음식을 집어 자신의 맞은편 사람 입에 넣어준다. 서로 고맙다고 인사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정겨운 대화를 나눈다.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니 젓가락이 아무리 길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 생명이고 우리는 한생명이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곧 내게 베푸는 것이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길이다. 진정한 나를 위하는 길은 언제나 먼저 베풀고 또 베푸는 것에 있다. 

오늘도 만나는 인연들에게 다정한 눈길과 따뜻한 말을 ‘먼저’ 건네고, 오직 ‘주는’ 마음으로 살면서 보시 공덕을 부지런히 짓자고 발원하지만, 마음은 시시각각 요동친다. 며칠 전 〈금강경〉 공부 시간에 혜선(가명) 님은 자신이 한 말을 가족들이 귀담아 듣지 않아 화가 났던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그 순간에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어요. 가족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신나게 말을 꺼냈죠. 하지만 제 말은 공기 중에 흩어져버린 것 같았어요. 남편은 스마트폰에 몰두해 있었고, 아이는 TV만화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었죠. 저는 말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봤지만, 아무도 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순간, 제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단순히 그 순간만의 감정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나? 아이까지 내 말을 안 듣네. 아이도 엄마를 무시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이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이 들 땐 제일 먼저, 내가 나를 뭐로 보고 있는지부터 점검해보는 게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내가 누군가에게 무시 받을 생명인가? 부처님께서는 나를 부처님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남이 나를 과연 무시할 수가 있나’라고 자문해보아야 한다. 누군가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스치면 ‘(남이 아니라)내가 나를 무시 받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구나. 나부터 참생명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구나’라고 스스로 알아차리고,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 생명이라고 불러주시는 부처님의 소리를 얼른 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나무아미타불 염불이다. 그렇게 자신 안에서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무시당했다는 어두운 마음에서 빠져나와, 그저 솔직하게 ‘내가 말하고 있는데 제대로 들어주지 않아서 서운했다’고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남 역시도 내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든 간에 그분의 생명은 부처님 생명이니까! 무시당할 나도 없고 내가 무시할 수 있는 너도 이 세상엔 없다고 하신 게 부처님 말씀이다. 그 말씀을 한탑 스님께서는 ‘나의 참생명 부처님 생명’이라는 10글자로 요결해주셨다. 이걸 전해주신 은혜는 평생을 갚아도 모자람이 없다. 

혜선 님은 참생명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무아미타불 염불한 덕분에,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자신의 서운함에 대해 가족에게 이야기했고, 그날 이후 서로의 말을 더욱 귀 기울여 들으며 이해하고 존중하기로 했다고 훈훈한 후일담을 전해주었다. “그날의 작은 에피소드가 우리 가족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어요”라고 말하며 웃으시는 모습이 고왔다. 

언제 어떤 경우에도 부처님의 한결같은 법문을 들을 수 있는 힘은 평소에 경전을 수지독송하며 정진하는 데서 나온다고 한탑 스님께선 늘 강조해주셨다. 〈금강경법문〉에서 “칼은 제 몸을 상하게 하는 숫돌에 대고 갈지 않으면 날이 서질 않습니다. 무딘 칼이 거친 숫돌 덕분에 날이 서듯이 복을 닦고 지혜가 밝아져 본래부터 부처님 생명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려면 나의 환경이 거칠어야 됩니다. 내 환경이 순리대로 펼쳐지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된다면, 지혜도 복도 닦을 수가 없고 오히려 욕망덩어리인 중생의 탐심과 성내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 밖에는 안되니, 오늘도 거친 환경이 펼쳐지고 어둡고 망령스러운 마음이 일어날 때 얼른 ‘나무아미타불!’로 항복 받으며 부처님 생명으로 살아가십시다”라고 법문하던 스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나무아미타불!

(한탑스님의 〈금강경법문〉 공부문의 
bowon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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