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미디어 인 붓다] 42. 연극 <벚꽃동산>

리얼리즘은 ‘꽃가루’ 말고 ‘콩가루’

안톤 체호프 유작, 사이먼 스톤 연출 맡아
허영과 몰락, 결핍과 욕망의 드라마 ‘눈길’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종교의 경계를 넘어 대중의 존경을 받은 법정스님이 원적하시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더는 출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자 생전에 출판된 책값이 오르고 올라 1976년 280원에 발간된 〈무소유〉 초판본이 100만원이 넘었고, 그 책을 소유했다는 자랑이 기사로 퍼져나가니 아무리 큰스님이라도 대중들 소유욕을 다스리긴 어렵거니 싶다.

태생이 가난한 사람이 기를 쓰고 부자가 되려는 이야기, 드라마나 영화에서 파고 또 파도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이랄까? OTT 채널을 타고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는 K-드라마, 그 드라마들의 원천이 되는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면 죄다 재벌 흥하는 이야기다. 최근만 하더라도 〈눈물의 여왕〉이나 〈재벌집 막내아들〉이 그렇고, 좀 돌이켜봐도 〈상속자들〉이나 〈파리의 연인〉이 그렇다. 부자가 풍파를 겪고 재산을 잃는 걸 대중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  한다. 아니 왜?

그런데 영화는 또 재벌에 대한 풍자나 도전을 다룬 작품들에 관객이 몰린다. 〈베테랑〉(유승완 감독, 2015년)이나 〈기생충〉(봉준호 감독, 2019년)처럼. 재벌이 두드려 맞고, 감옥에 가고, 파국을 맞는 장면에 대중들은 환호한다. 이건 또 왜?

이렇듯 ‘부자’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문화적으로 아주 양가적이다. ‘부자 삼대 못 간다’며 안 부러운 척해도 사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속 외침에 혹하고,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가르침을 전하는 종교를 믿으면서도 ‘부자 되게 해 주십사’ 기도를 한다. 

이게 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계급이 곧 빈부를 가늠하던 중세까지는 불교든 다른 종교든 ‘다음 생에는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소서’나 ‘죽은 뒤에 천국에 들어 더 이상 가난으로 고통 받지 않게 해주소서’ 라는 기원이 간절했었다. 그러나 ‘자본이 곧 권력’이 된 근대 이후,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소유한 자산’이 계급을 가르는 세상이 되었으니 기도도, 염원도, 욕망도 달라질 수밖에. 

이런 시대적 변화를 무대에 올린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는 부와 권력의 무상함과 변화를 극적으로 겪는 시대를 살았다. 황실과 귀족이 몰락하고, 타고난 신분 못지않게 지식이나 자본이 권력을 다투고, 체제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을 다양한 인간 군상과 글로벌한 욕망의 경합의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빚어낸 체호프의 작품들은 당대 러시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연극계의 경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리얼리즘 연극의 아버지’ 안톤 체호프가 러시아 혁명 직전 불안한 기운이 가득하던 1904년의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담은 유작 〈벚꽃 동산〉이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영국 연출가 사이먼 스톤의 다듬질을 거치고,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배우 전도연’이 27년만의 연극 나들이로 가장 호사스러운 공간인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면서 연극계의 화제작이 되었다.

스스로가 K콘텐츠 마니아라고 밝힌 사이먼 스톤은 원작의 길고 어려운 러시아식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바꾼 정도가 아니라 혁명적 시기였던 체호프의 세계를 요즘 한국에 맞게 K패치하면 딱 이렇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연출의 재미를 뽐낸다. 인물과 무대와 대사의 조합의 묘를 찾아내고, 심지어 한국어로만 가능한 대사의 말맛, 역사적 사실과 현실의 갈등, 시대적 현상에 더해진 대중의 욕망까지 효과적으로 무대의 요소가 된다.

재벌 3세 송도영(전도연)이 5년 만에 돌아오는 집, 그 무대가 벚꽃 동산에 지어진 저택이다. 일본인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이 저택은 송도영이 생일 선물로 받은 집이란다. 일제 강점기 친일 논쟁이 아직도 정치적 논쟁거리고, 부동산이 모름지기 최고의 자산 가치가 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나타내는 이 저택은 마치 에셔가 그려낸 끝없이 오르면서 끝없이 내려오는 계단처럼 입체적인 무대에 2차원 평면처럼 전면을 향해 있다. 

통창을 통해 지하철 한번 타본 적 없는 재벌 가족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빚어내는 허영과 몰락, 애증과 연민, 결핍과 욕망의 드라마를 들여다보는 이 저택의 조형성은 이 집의 형상은 봉준호 감독의 팬이라는 사이먼 스톤이 〈기생충〉의 주무대가 되었던 집에 대해 바치는 오마주처럼 보인다. 

이 집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도영 일가만이 아니다. 성공한 기업가가 된 운전수의 자식 황두식(박해수)과 실천없는 비판으로 둘째 딸 해나(이지혜)를 사로잡는 ‘입진보’ 가정교사 변동림(남윤호), 숨김없는 욕망을 드러내는 가정부와 애욕을 주고받는 운전기사와 비서 같은 사용인들이 상속신분 말고는 아무런 능력도 없이 회사를 엉망으로 경영해서 파산 직전인 재영(손상규)이나 입양 자식으로서 집안에 대한 헌신으로 인정받으려 하지만 놀고먹으며 빌붙어 사는 사촌 김영호(유병훈) 만큼도 여유가 없는 큰딸(최희서) 모두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안에서 계급의 사다리를 오르내린다.

인권 변호사였던 남편과 불임인줄 알고 딸을 입양한 다음 낳게 된 아들을 잃고, 애인들과 술에 빠져 재산과 애정을 탕진하는 도영은 현실적으로 경제관념을 가지라는 큰딸이나 이성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라는 둘째 딸보다 아들을 잃은 결핍을 향락으로 상쇄할 만큼의 매력이 있다. 큰딸의 애인과는 썸을 타고 작은 딸의 애인과는 입을 맞추고도 그 딸들이 연인들과 몸이든 미래든 관계를 맺으라고 응원할 정도로 개방적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 집안은 ‘아름다운 콩가루 가족’인 것이다. 

이 몰락해가는 부자에 대한 사용인들의 태도는 부자들에 대한 한국 대중의 태도처럼 양가적이다. 예전 운전기사의 아들로 성공한 글로벌 기업가가 된 두식은 도영을 동경하면서도 그 몰락을 통해 계급의 사다리의 승리자가 된다. 체호프의 원작에서 농노의 아들이 벚꽃 동산을 사들였듯이 두식은 도영과 재영에게서 저택 뿐 아니라 기업까지 사들이고, 오직 자본의 논리로 개발을 밀어붙인다. 

도영과 재영 남매의 집안이 누리던 가문의 영광과 친일의 흔적 같은 전근대적 유산은 두식의 불도저 앞에서 무력하게 해체된다. 계급의 사다리는 끝없이 올라가면서도 내려가야 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형상화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도(두식 배역의 박해수 배우가 시작한) 경쟁의 극한을 펼치던 공간으로 무한의 계단이 등장했듯이 올라가도 올라가도 또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집을 개발공화국 한국의 건설업자 두식은 혼자만 안전모를 쓰고 부숴 버린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회사를 말아먹은 재영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되는 가치’라고 애지중지하는 턴테이블이 1954년산, 그 해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국제적으로 남북이 분단국가로 공인된 해였다. 두식의 시대는 돌고 도는 턴테이블이 아니라 EDM의 시대다. 대중적으로 안전하고 상업적으로 효율적인. 현대 한국사회의 불안을 벚꽃 잎 대신 검은 눈으로 흩뿌리고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무대에 어울리는 엔딩은 ‘벚꽃 엔딩’이 아니라 ‘파괴와 욕망의 엔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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