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알레르기 현상, 결국 욕망의 문제
현재 알레르기 현상, 속도와 관련
성급한 산아 정책, 저출산에 영향
욕망 관련 인지부조화를 살펴보라
생명에 대한 기술 즉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지향점은 의료현실에서 활용된다. 생명기술의 정점은 최종적으로 무병과 장수를 약속하며 의학과 진료 분야에서 꽃피우는 것이 상례이다. 생명기술은 과학기술과 상보적으로 발을 맞추어 진행하고 있으나 그 바탕은 생명의 속성을 검토하고 있다.
티끌이 하나 일어나니 모든 대지를 거둬들이고, 꽃 한 송이가 피니 온 세계가 열린다.(一塵大地收 一花開世界起)
-<벽암록> T48, 159a11
불교는 색법보다 심법에 집중하듯, 생명을 중심에 두고 있는 바이오 분야는 기술로 단순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우주라는 꽃 한 송이 피어나는 것은 절 집(寺)의 언어(言)인 시(詩)로 노래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들판의 꽃 한 송이는 과학기술의 분석 대상 그 이상일 수 밖에! 하지만 티끌 하나조차 일어나지 않고 꽃 한 송이도 피지 않을 때, 그때에는 어찌할 것인가? 은산철벽의 도래! 그때가 지금인 것만 같으니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하다.
우리 시대의 기묘한 도착 증세인 알레르기(allergy)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 악보에서 알레그로(allegro)는 ‘빠르게’를 지칭한다. 알레그로에서 파생된 알레르기는 생체적 반응이 일찍 활성화되어 일어나는 병리적 징후를 말한다. 이는 정상적 반응보다 빠르게 준동하는 것이므로 과민증상을 의미한다. 즉 조급성 또는 과민성 증후군에 속하는 것들이다.
알레르기 증상들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누워버리는 풀의 생태와 비슷하다. 또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을 보고 놀라는 일처럼, 어둠 속의 썩은 새끼줄은 두려움으로 작동하여 공포스럽게 독사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원인물질(allergen)이 직접 작용하기도 전에 요동치는 것은 병리적 인지부조화에 기인한 불안반응이며 두려움 때문에 작동하는 인식론적 오류이다.
일련의 알레르기적 증상들은 개체적 속성을 넘어서 온갖 사회적 병리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단면 가운데 인구의 감소와 관련된 일화들은 알레르기 증상의 대표적 예이다. 얼마 전까지 정관수술을 하면 진급에서 유리한 평점을 주고 예비군 훈련면제 등의 포상이 주어졌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는 둘도 많다며 보건 당국이 호들갑을 떨었다. 인구조절의 효과가 긍정되는듯하다가 이제는 지방 도시들의 소멸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알레르기적 반응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욕망 그 자체이다. 욕망의 그림자는 두려움과 불안을 야기한다. 욕망을 구조화한 자본주의적 체제는 구성원들의 상호 경쟁을 바탕으로 비교의식과 자의식이 과잉되도록 조장하고 있다.
순금의 진가를 알려면 단련하는 용광로 속을 살펴야 한다.(要識眞金火裏看)
-‘선문염송설화’ H76, 10a20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용광로는 욕망 자체를 불사르며 불성의 실체를 연단하는 수행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티끌 하나, 꽃 한 송이의 과제로서 온 우주의 일에 속하게 된다. 숨 한번 깊이 들이마시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사바세계를 짊어지는 삶이 된다. 욕망과 관련된 인지부조화, 그 알레르기 증상들을 돌아보아 석존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며 마음의 눈을 열어두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