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김영애의 안심뜰] 내마음 항복 받는 기도

12. 분별 넘어 아상 뿌리 뽑는 정진을

자괴감 뿌리는 ‘나’…겉모습 속지 말고 
내 힘으로 안된다는 걸 깨끗하게 인정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4년째 아침마다 온라인 줌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탑 스님의 <금강경 법문> 473쪽에 ‘그럼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내 마음을 항복 받는 것입니다’를 읽으며 경미님(가명)은 “저는 기도를 해본 적이 많지 않아요. 예전에 어떤 이가 매일 새벽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한다길래 무슨 기도를 하냐고 물었더니, 자식들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대요. 그러고는 낮에 옆집 밭에서 주인 몰래 고추랑 가지를 따오는 모습을 보며, ‘아니,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러면 되겠냐?’고 하니, ‘새벽에 교회 가서 기도하면 되니까 그래도 된다’는 거예요. 그때 ‘그게 무슨 종교이고 믿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면서,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몰랐어요. 그저 답답할 때면 한 번씩 ‘일이 잘 풀리게 해주십시오’하는 게 저의 기도였어요. 그런데 오늘 금강경 법문을 들으니 ‘기도는 내 마음을 항복 받는 거구나. 오직 나무아미타불이 기도구나’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라고 법담을 열어주셨다. 

이어서 주연님(가명)이 <금강경 법문> 476페이지에 있는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집을 계속 다른 이에게 강요하거나,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유지하거나, 내게 부족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법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를 읽으며 느낀 소회를 나눠주셨다. 

“어느 날 법회에 갔을 때 ‘집에서 남편과 싸우고, 시어머니와 마찰이 있어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법회에 와서 앉아 계신 분은 진정으로 법문을 듣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하셨던 법문이 생각나요. 실은 어제 저의 마음이 지옥과 같았어요. 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이번 달에 형제들이 저희 집에 올 때 큰동서도 같이 온다는 거예요. 큰동서는 맏며느리임에도 여태까지 몇십 년간 시댁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2~3년간 요양원에 계실 때도 인사 한번 오지 않았어요. 그런 동서가 저희 집에 온다고 하니, ‘싫은 사람이 방문했을 때 나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되나? 여태까지 내가 공부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음이 너무 복잡해져서 잠도 안 오고,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몸도 완전히 쳐지고 기력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공부를 하면서 ‘내 고집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않아야겠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내 마음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경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장 율사의 문수보살 친견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장 율사는 정암사를 세운 후 이곳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이가 남루한 옷을 입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메고 와서 “자장을 보러 왔노라”고 했다. 시자들이 미친 사람이라며 쫒아내자, 늙은이가 스승에게 알리라 해서 자장 율사에게 알렸더니, 자장 율사도 “미친 사람인가 보다”며 잘 타일러 보내라고 했다. 시자가 밖으로 나가 늙은이를 쫒아내자, “아상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느냐?”하며 삼태기 안에 있는 강아지를 꺼내자 강아지가 사자로 변했고, 늙은이는 사자를 타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 말을 들은 자장 율사는 문수보살님이 다녀가셨다는 걸 알고 황급히 달려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겉모습에 속아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한 자장 율사의 일화는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법문을 듣고, 이를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보다 더 높은 산을 인아산(人我山)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가장 높은 벽이 있다면 바로 인아산이다. 부대끼고 있는 ‘나’라는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는 결단이 서면, 이제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는 동서는 없는 것이다. 나다 너다 하는 분별을 뛰어넘어 아상을 뿌리 뽑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진이다. 

주연님이 ‘여태까지 공부했는데 내 마음이 이 정도밖에 아니었을까?’하는 자괴감도 들었다는 말에, “물론 자괴감이 들 수 있지만, 자괴감의 뿌리도 ‘나’에요. 이만큼 했다는 내가 있으니 자괴감에도 우리는 속기 쉬워요. 남과 씨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와 씨름하며 나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걸 일깨워 주려 일부러 동서의 모습으로 내 앞에 오셨으니, 우리는 겉모습에 속지 말고,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걸 깨끗하게 인정하고, 부처님께 다 맡기고 그저 ‘나무아미타불’하며 진짜 공부를 하자구요. 남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계속 간직하고 살다가, 죽는 순간에 후회하지 않도록요”하는 말로 법담은 마무리됐다. 나무아미타불! 

(금강경법문 공부문의 bowon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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