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홍재화의 '걷기 삼매경'] 8. 걷는 환경의 변화

길, 자연친화적으로 변화 중

사진출처=unsplash
사진출처=unsplash

원시적인 길

태초에 발이 있었다. 발이 있으니까, 지구에는 길이 생겼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은 걸어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에는 위험한 마차와 자동차가 사람을 위협했다.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다시 마차와 자동차 없는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긴 둘레길, 산책길은 태초에 동물이 만든 길, ‘트레일(trail)’이라고 불린다. 길도 돌고 돌아 트레일에서 시작하여 다시 트레일로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

약 300만년 전 유인원은 나무에서 내려와 어설픈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동물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걸었다.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다니던 길 또는 계절적으로 이동하던 길을 유인원들도 이용했다. 동물의 길은 아주 춥고 때로는 사라지기도 하는 길, 트레일이었다.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았던 중세까지만 해도 사람이 다니는 길은 동물이 만들어 준 트레일이 많았다.

그러다 차차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비로소 사람의 길(path)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세까지만 해도,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길은 인간이 걷기 위해 존재했고 인간이 우선이었다.

인공적인 길

그런데 길에 말이 끄는 마차가 생기고, 기름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생기면서부터 길의 주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됐다. 말을 이용한 마차가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불과 200여 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전에 말이나 마차를 타고 달리는 사람은 전쟁을 하는 군인뿐이었다. 유럽은 1800년대, 한반도는 조선 후기에 마차가 부자와 귀족을 위한 교통수단이 됐다.

마차를 이용한 교통과 운송이 늘어나면서 길을 걷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되었다. 마차가 가는 길과 사람이 가는 길의 구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점차 마차 사고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마찻길과 인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제 길의 한가운데, 즉 길의 주인공이 다니는 도로 중앙이 아닌 곁으로 사람이 밀려났다. 길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마차가 되고 엔진이 생기면서 자동차로 넘어갔다. 시속 100㎞로 달리는 자동차를 피해서 시속 5㎞의 사람은 겁을 내며 움츠리고 길의 바깥으로 거리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모든 도로가 차도와 인도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지방의 작은 길들은 보도가 없는 국도나 지방도로가 많다. 여전히 그런 곳에서는 걷다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숨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자동차가 생긴 이래로 정부의 도로 정책은 자동차 소통 위주였다.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들은 피해를 보았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보급이 많이 늘어나기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단 4년 만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전쟁 중 프랑스에서 사망한 전사자 수를 넘어서게 됐다. 한국에서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15년 4621명에서 2016년 4292명, 2017년 4185명, 2018년 3781명, 2019년 3349명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길을 걷는 것은 위험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거리를 즐긴다는 생각을 갖기 어려웠다.

길을 아무리 만들어도 만드는 만큼 교통량은 늘어났다. 도로를 늘리는 것은 전체적으로 교통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다운스-톰슨 역설(Downs-Thomson paradox)은 자동차 위주의 도로 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도로의 증가는 세 가지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나게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다른 경로를 이용하던 운전자는 확장된 도로를 쓰기 시작하고, 이전에 혼잡하지 않은 시간대에 통행하던 사람들이 혼잡한 시간에 이동하게 되며, 대중교통 이용객들은 자동차를 타기 시작한다. 결국 도로에 나오는 자동차의 수가 늘어나면서 도로는 더 혼잡하게 된다고 하며, 이는 실제로 증명됐다. 도로는 더 이상 사람이나 자동차를 위한 길이 아니게 됐다.

다시 인간적인 길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인간이 보다 편하고 쾌적하게 길을 만들자는 세계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국도 보행자를 위한 길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도시의 복잡하고 위험한 자동차 위주의 도로 개설에서 탈피했다. 차를 위한 길을 없애고 사람을 위한 면적이 넓혀지기 시작했다. 보행자의 종말에서 보행권의 확보가 탄생한 것이다.

광화문 거리는 중앙의 대부분을 사람들이 노닐 수 있게 만들고 대학로는 주말이면 차량의 통행이 통제되고 사람들 위주로 운영된다. 도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북한산 둘레길, 제주도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오래전부터 동물과 사람이 발로 다져놓은 길을 되살리고 있다. trail(동물 길)과 path(사람 길)가 오랜 기간의 버려짐에서 벗어나 트레일 또는 걷는 길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사람의 인생역정이 돌고 돈다는 말만큼이나 길의 역정도 돌고 돈다.

이제 길의 환경은 다시 인간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 길을 사람들은 두껍고 무거운 신발을 버리고 맨발로, 맨발처럼 가볍고 얇은 신발을 신고 걸으면서 자연과 동화되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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