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미디어 인 붓다] 37.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

세월호 알리기 위해 아빠는 카메라를 들었다

지성 아빠가 기록한 10년간 이야기
‘세월호 참사’라는 ‘공업’ 기억해야 

지금도 선명한 장면이 있다. 별 생각 없이 틀어놓은 뉴스에 비친 바다. 방송 카메라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배가 기울고 있다고 했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단체로 타고 있다고.  ‘저런, 큰일이네, 아이들 참 무섭겠다. 부모들 걱정이 얼마나 클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다들 알게 된 상황이니 곧 구조가 되려니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이어졌고, 수학여행 제대로 하긴 글렀으니 좀 억울하려니 정도로 생각했었다. 꼬박꼬박 세금 낸 보람도 느꼈다.

아니었다. 오보란다. 어선들이 달려가고, 헬기가 떠있는 장면을 보면서 곧 구조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있을 수 없었던 오보, 나타나지 않던 국가 원수 같은 석연치 않은 정황이 걱정되었지만 그러고도 함부로 누구 탓을 못했다. 혹시 험한 욕을 하거나 원망이라도 했다가 동티라도 날까봐. 에어포켓이니 골든타임이니 하는 조금의 희망이라도 걸어볼 말들에 모두가 말도 삼가고, 행실도 가리는 동안 우리는 알게 되었다. 

선장부터 구조하는 장면을 보며 다른 사람들도 곧 구조되려니 믿었건만 그 선장이 제일 먼저 빠져 나오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가 전달됐고, 그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다들 믿고 따르고 있었으며, 그러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즈음에는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려고 필사적이었다는 것을.

그 이후 들려오는 말들은 정신 못 차리게 책임의 화살표를 휘어지게 만들었다. 청해진, 언딘, 해경, 대통령 부재 상황에 대한 거짓말, 연출된 조문, 논두렁에서 비명횡사해 백골로 발견된 구원파 교주.

그러는 동안 배는 침몰했고, 침몰된 배를 인양하는 대신 위험을 무릅쓴 잠수사들이 희생자들의 시신을 거두게 되었고, 희생자의 가족들은 시신을 수습해 유족이 되는 것이 차라리 실종자의 가족으로 남는 것보다 나은 처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두가 애도를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상황에서 유가족들에게 험한 말을 쏟아내는 집단들이 목소리를 높여갔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고도 멀쩡하던 언론들은 이제 유가족을 정치적 집단으로 매도하고, 그저 교통사고일 뿐이라는 정치인들의 망언을 보도하고, 사고 현장이나 이후 수습 과정에서 희생자들과 가족들에게 저질러지는 사회적, 정치적 폭력을 방관하며 모습을 지우려 했다. 그럴수록 유가족은 절박했고, 잊히기 전에 진상을 밝히고 책임도 묻고자 애를 썼다. 만나주지 않는 책임질 이들을 찾아 국회로, 청와대로, 그래도 내몰리니 거리로, 광장으로. 그때마다 자칭 애국청년, 자칭 어버이들이 몰려들어 위협했다. 함부로 종주먹을 대던 왈패들이나, 막말을 퍼붓던 애국이니 어버이니 하는 완장 찬 무리들이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는 눅어드는 모습을 보고 카메라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총대 메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4.16TV’의 시작이었다.

그 아버지는 지난 10년 동안 ‘지성 아빠’로 불렸다. 단원고 학생 문지성, 그 이름이 아빠의 이름이 되었고, 노숙하고, 행진하고, 농성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을 담고 세상에 전했다. 언론이라는 거창한 사명이나 명분에 앞서 언제,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르는 유가족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카메라를 들어 온 10년 세월, 오는 4월 16일이면 3654일이 될 동안 찍고 모은 영상 숫자가 5000여 개를 넘도록 그는 ‘지성 아빠’였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그동안의 기록을 엮은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로 10년 동안 보아온 그의 이름이 감독인 ‘문종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종택 감독은 자신이 지난 10년 동안 카메라를 들 수 있었던 힘은 다른 부모님들이었다며, 초반에는 하도 많은 언론들이 왜곡하니까 자신이라도 카메라를 갖춰 들고 갔는데, 그때마다 희생자 엄마 아빠들이 ‘우리 카메라 왔다’, ‘지성이 아빠 왔다’고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며 촬영도 배우고, 편집도 익혀가며 4.16TV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인터넷 방송이지만 그 유가족들에게는 지성이 아빠 문종택 감독이 놓지 않는 카메라가 의지가 되었던 세월이 곧 영화 〈바람의 세월〉이다.

자신도 지성이를 잃은 슬픔으로 가득한 상황에서도 “카메라가 없으면 부모님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니까 편집 끝나자마자 또 찍으러 달려가고 그랬습니다”라는 문종택 감독의 심정은 어떤 다큐멘터리스트보다도 절절하다.

그렇게 희생자 가족들을 영상으로 지키는 동안 지성 아빠는 그 기록을 영화로 만들라는 권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 처음에는 누군가 영화로 가장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독에게 맡기려 생각해서 그동안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이슈를 영화로 만들어온 김환태 감독을 만나 공동감독이자 나레이션까지 맡게 되었고, 이제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누구 아빠가 쌓은 별업을 가늠하는 기록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공업을 모으고 이어내고 있다. 사실 나랏일 맡아 ‘공인’의 자리에 있는 공직자라거나 정치인이이라면 모를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은 우리 모두의 업’이라고 여기는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건은 공인이 아니라도 공업이 된다. 함께 지켜봤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여러 상황들에 저마다 어떤 식으로든 의견과 판단, 감정과 행위로 참여했기 때문에. 

같은 시대를 사는 이들의 ‘공업’이 되는 이런 일들은 대개 좋은 일보다는 전쟁, 참사, 재난 등 어둡고 무거운 상황인 경우가 많다. 가령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가 그렇다. 하필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기 전인 푸릇푸릇한 세대들이 즐겁게 나선 길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전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희생자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을 발견한 날짜와 시간이 다 달라 각자에게 힘든 날도 다 다르기 때문에 4월 16일부터 한 달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아이가 발견될 날까지 버텨야 했던 그 힘든 상황에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자체로도 힘이 된다는 문종택 감독과 탄핵 이후 유가족들의 상황을 잘 모르게 된 2017년 이후의 기록들을 통해 10주기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과 어떻게 연대해 나가면 좋을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며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김환태 감독의 당부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와 닿는다. 

올해 2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지몽 스님, 부위원장 고금 스님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만나“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아픔”이라며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이지만, 사고 이후 처리가 미흡한 점이 많고, 사고 자체가 없어야 하지만 사태가 벌어졌을 때 유족이나 국민이 조금이나마 치유되는 조치가 이뤄져야 하지만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모든 종도와 불교도가 함께 슬픔을 나누고 행정적인 절차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도록 하겠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바람의 세월〉을 보러 극장을 향하는 발걸음들이 슬픔을 나누고 위로를 전하며 우리 모두의 공업을 닦는 작은 기도가 되기를.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