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이미령의 스토리텔링 경전에세이] 8 천수경 ① 

천수경을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들

대한민국서 가장 많이 봉독된 경전
정작 천수경 의미 아는 불자 적어
천수경, 관세음보살에 기원하는 經

하루키 씨, 제목 좀 빌릴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고 그 제목을 흉내 내고 싶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아보았습니다. 이제 막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거든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에세이는 참 솔직하고 담담하게 독자들을 상대로 말을 건네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과장하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느낌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전세계 모든 독자들이 그의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천수경〉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습니다. 

〈천수경〉! 내가 이 경에 대해서 무엇을 새삼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이 경이 읽힌 횟수는 어마 무시할 테고, 지금 이 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자들이 집에서 절에서 〈천수경〉을 봉독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찰마다 이 경을 강의하는 강좌도 부지기수요, 전문가들이 알기 쉽게 풀어주고 심도 있게 설명한 해설서도 많습니다. 그만큼 유명한 경전을 소개하려니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하루키의 에세이를 막 읽은 터라 이 제목을 빌려서 써보자 생각하니 의외로 글을 쉽게 써내려갈 수 있게 되었네요. 

여전히 수많은 불자들은 〈천수경〉의 뜻을 잘 모른다고 하고 있고, 그냥 읽으면서 가피를 입겠다고 합니다. 절에 오래 다닌 불자님들은 이 〈천수경〉을 눈 감고서 술술 욉니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로 시작하는데, 법당 안 열기가 슬슬 달아오릅니다. 그리고 그 열기는 바야흐로 “나모라 다나다나 야야 나막알야~”에 이르러서 최고조에 달합니다. 

이때 법당 안의 불자는 둘로 나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눈감고 술술 욀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다 외지 못하면 살짝 주눅이 듭니다. 신심이 크고 깊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럽기도 합니다. 은근 샘이 나기도 해서 법회를 마친 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줄줄 외던 옆자리 불자님에게 “그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그렇게 시시콜콜 뜻을 알려고 하지 마시고 가피를 입는다 생각하면서 자꾸 외우세요”라는 말!

대체 〈천수경〉은 뭘 말하는 경일까요? 어쩌자고 한국의 불자들은 그토록 열심히 〈천수경〉을 외는 것일까요?

이런 게 궁금하신 분들은 제 수다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천수경〉을 말할 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몇 가지를 솔직하게 풀어보려 하니까요.

눈이 천 개나 되신다니

무릎 세우고 두 손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비옵나이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하나를 내어 하나를 덜기를,
둘 다 없는 이 몸이오니
하나만이라도 주시옵소서.
아아! 나에게 주시오면
그 자비 얼마나 클 것인가.

상상해 보세요. 관세음보살님에게는 손이 천 개, 눈이 천 개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신라 땅의 어떤 어머니에게 다섯 살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앞을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요즘처럼 의료기술이 발달한 시절도 아니고, 그 어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을까요?

그때 떠오른 분이 바로 눈이 천 개나 되는 관세음보살님이었던 거죠. 그래서 달려간 곳이 분황사이고, 그 절 북쪽 벽에 그려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 앞으로 데려간 아이에게 이렇게 빌라고 시켰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보살님께는 손과 눈이 천 개나 있는데 제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딱 하나만 나눠 주세요. 자비로우신 관세음보살님, 제발 제게 눈을 하나만 나눠주세요.”

어머니와 아이의 기도가 통했던지 〈삼국유사〉에서는 아이가 앞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천수경〉은 관세음보살경입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을 말할 때마다 1400년 전쯤 앞을 보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던 어머니와 아이가 떠오릅니다. 과연 누가 이보다 더 간절하게 바랄 수 있을까 상상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세음보살을 떠올리면 자애로운 어머니, 한없이 품을 내주는 무한한 사랑을 자연스레 연상합니다. 과연 〈천수경〉에서도 이렇게 한없이 따사롭고 무한정의 사랑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뤄지게 해주는 그런 관세음보살님이 그려질까요? 〈천수경〉을 가만 가만 읽어보면 뜻밖의 문장에 놀랄 것입니다.

“파워”라는 대답
지난 회차에 소개한 ‘관세음보살보문품’은 관세음보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무슨 뜻이고, 어떤 힘을 지니고 있으며, 어떨 때 기도하면 가피를 내리는지…. 이런 설명이 담겨 있는 경이었지요. 그러니 보문품을 읽을 때면 “아, 이런 것이 관세음보살 신앙이로구나”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서 〈천수경〉은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이제는 관세음보살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했으니 그 분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빌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지금 머물며 기도하고 있는 그곳으로 관세음보살을 초대해야겠지요.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려니 일단 내 입부터 정화해야 마땅하겠고요.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이 나의 부름에 응답하여 이곳으로 오실 때, 행여 다른 신적인 존재들이 관세음보살의 위력에 놀라 떨거나 주눅 들거나 달아나지 말라고 그들을 안심시키기도 해야 합니다.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이라는 문장이 그것입니다. 안위(安慰)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있으라는 뜻이거든요. 누가? 제신(諸神) 즉 여러 신들입니다. 내가 지금부터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서 가피를 내려달라고 기도할 것이요, 그 분이 오시면 괜히 여러 신들이 쫄지 마시고 마음 편히 있으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불교에서 관세음보살님의 위력을 얼마나 크게 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 부탄을 여행했을 때 현지인 가이드와 나눈 대화가 늘 머릿속에 맴돕니다. 나는 그 가이드에게 내가 불교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이색 여행지인 부탄을 관광하러 온 여행객의 입장으로 그의 안내를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름다운 부탄 박물관에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지요. 낯선 땅, 히말라야 산자락의 아담하고 조용한 박물관에 모셔진 관세음보살님을 넋 놓고 감상하고 있었는데, 내 옆으로 가이드가 오더니 말했습니다.

“멋지지요?” 고개를 끄덕끄덕 할 수 밖에요. 그런데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가이드에게 물었습니다.  

“와, 이게 모두 몇 개예요? 어떻게 손이랑 눈이 이렇게 많을 수가 있지요?”
가이드는 0.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습니다. “Power!”

잠시 찡~ 현기증이 왔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불교를 익히며 관세음보살을 따뜻하고 부드럽고 포근한 자비(慈悲)의 화신으로 마음속에 품고 이때까지 지내왔는데, 히말라야 산자락의 부탄 사람은 그걸 ‘파워’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한없이 포근하고 너그러워서 유약하게까지 느껴졌고, 어릴 때 투정부리면 결국은 내 말을 다 들어주었던 어머니처럼, 빌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들어줄 만큼 나를 향해 활짝두 팔을 벌린 관세음보살님!  

어떻게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이뤄줄 수 있을까요? 그가 지닌 힘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 힘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웠고, 저 막강한 힘을 가진 관세음보살이라면 내가 바라는 것은 정말 뭐든지 다 들어줄 수 있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분이니 뭐든 빌면 되겠지요? 앞서 보문품에서는 현실적으로 직면한 재난이나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소망이나 무거운 번뇌에서 도와달라고 빌면 그 소망을 들어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천수경〉에서는 또 어떨까요? 〈천수경〉에서도 그런 걸 빌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가정이 평화롭고 배우자와 자식들, 그리고 나이 드신 부모님들의 안녕을 간절히 비는 마음에서 기도를 올릴 때 늘 〈천수경〉과 그 속에 담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간절하고 정성스레 외지 않았던가요? 〈천수경〉을 가만 가만 읽어보면 뜻밖의 문장에 놀라실 거라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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