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홍재화의 '걷기 삼매경'] 7. 걷기의 영성화 (2)

‘나’를 돌아보는 명상과 함께 자연을 걷다

단순 신체활동서 나아가 사교활동
자신 돌아볼 기회 찾는 영성회복도
불교, 걷기 열풍 혜택 가장 큰 종교
‘삶과 자아성찰’ 주제로 길 개발해야

‘건강, 여행, 레저, 의미, 영성의 회복, 경제성’


이처럼 걷기는 다양한 주제를 소화하면서 한국인의 놀이 문화를 바꾸어 가고 있다. 혼자도 할 수 있고, 여럿이도 할 수 있으면서 누구에게나 부담이 가지 않는 새로운 놀이 문화이다. 이제 우리는 생각날 때 아무 때나, 일상생활에서 입던 옷과 신발을 신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걷는 길이라고 하지 않는다. 흙이 있고, 자갈이 있고, 낙엽이 있고, 숲이 있으면서 의미가 주어진 길을 걷는 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걷는다는 것의 지금의 한국적 의미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연에의 본질적 회귀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자연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걷기라는 메가트렌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트렌드에 더 깊이 들어간 사람들 중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 그들은 자연 즐기기와 건강 챙기기를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다.


걷기를 즐기는 이들을 위하여 더 많고 좋은 길들이 조성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적이면서, 코로나19와 고령화에 대응적인 레저를 찾는 요즘 걷기처럼 알맞은 야외활동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걷기를 단순히 신체활동으로만 여기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사교활동은 물론 숲을 거닐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찾는 영성회복 활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앞으로도 걷기 열풍은 그 열기를 더해갈 것이 분명하다. 이제 사람들은 슬로우 레저, 올레길 식으로 표현하면 ‘놀멍 쉬멍 즐기기’가 새로운 대세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사는 종교계에서도 무관심하지 않다. 어쩌면 걷기 열풍의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종교, 그 중에서도 불교계가 될 소지가 크다.


애초부터 걷기 길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스페인의 까미노는 기독교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도 기독교 성지가 여러 군데 있기는 하지만, 숫자가 적을뿐더러 거리상 떨어져 있어 어떤 연관성을 부여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불교계는 다르다. 예를 들면 월정사에서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오대산 천년의 숲 옛길 따라 걷기대회는 월정사와 상원사가 가지고 있는 전설, 부처님 진신사리 그리고 천년의 숲이 어우러져 있다. 그야말로 현재의 걷기 열풍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인 종교적 이야기, 자연친화적 도로, 자아 성찰적 명상이 골고루 버무려져 있다.


이 같은 유리함은 산 속에 절이 많은 불교계로서는 활용도가 높은 새로운 이벤트의 출현이다. 현대 들어서 모든 종교의 신도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계는 좀 더 많은 신도, 잠재적 신도와 능동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우선 자아 성찰적 명상은 불교의 기본 도리이다. 제주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 제주올레이사장도 자아에 대한 고민 끝에 스페인의 까미노를 걸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도 역시 삶과 자아성찰이 주제이다. 종교적 이야기는 한국의 어느 산골엔들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을까.
또한 자연친화적 도로는 대부분의 절들이 산 속에 위치해 도시의 지방자치단체들과는 달리 굳이 걷기용 길을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불평거리였던 절로 연결되는 비포장도로야말로 걷기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친화적 도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그저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신발을 벗자고만 하면, 걷기 명상의 더없는 근거지가 되는 것이다. 베트남의 불교승려인 틱낫한이 주장했던 걷기 명상의 관념을 한국적으로 조금만 고치면 된다.


파울로 코엘료는 까미노를 유명하게 했고, 서명숙은 제주 올레를 만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걷는 길의 길이와 아름다운 풍광이 더 많이 개발될 것이다. 하드웨어는 이제 꽤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걷기에 대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할 것이다. ‘왜 걷는가?’에 대한 성찰적 주제와 자연친화적인 요소가 어울리면서 우리를 흥겹게 하는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들어내는 길이 앞으로 한국의 까미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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