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김형중의  깨달음의 노래] 3. 소동파의 오도송

온 세상이 곧 부처의 세계이니…

무정설법 화두 받은 소동파
여산 폭포소리 듣고 깨달아
자연 그대로가 법신불 자체

계곡 물소리가 부처의 설법

계곡의 폭포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무진장 설법인데(溪聲便是廣長舌)
어찌 산천의 아름다운 경치가 청정한 부처의 몸이 아니랴(山色豈非淸淨身)
밤새도록 쏟아진 팔만사천 미묘한 무정(無情) 법문을(夜來八萬四千偈)
다른 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 이치를 설명해 보일 수 있을까(他日如何擧似人)

이 오도송은 소동파(蘇東坡, 1036~ 1101)가 중국 선종의 오가칠종인 임제종 황룡파의 개조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선법을 이은 상총(常總)선사로부터 인가(認可)를 받은 선시이다. 소동파는 중국 송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서예가이며 문장가이고, 아버지 소순과 동생 소철과 함께 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천재이다. 당시(唐詩)가 시의 기교면에서 극치에 달했다면, 송시(宋詩)는 시의 내용을 중시했다. 따라서 소동파의 시는 내용이 선불교의 깊은 깨달음이 담긴 철리시(哲理詩)를 많이 읊은 것이 특징이다. 

소동파는 22세에 일찍이 과거 급제했으나 당시 왕안석의 신법(급진적 부국강병책)을 반대해 평생을 지방 오지의 외직과 유배생활을 한 고달픈 삶을 살았다. 그의 유일한 삶은 자연에서 시와 서예 그리고 그림을 그리며 유유자락하는 일과 산사의 고승과 벗하며 불경을 공부했다.

소동파는 1086년 천하 명산 여산 동림사에서 상총선사와 밤을 새워 불립문자의 선학(禪學)에 대해 토론했다. 상총선사가 “그대는 어찌해 무정설법(無情說法)은 듣지 않고 유정설법(有情說法)만 들으려 하는가”라고 묻자, 그는 아무 말을 못하고 무정설법이 화두가 됐다. 

아침이 돼 동림사를 나선 소동파는 여산 호계(虎溪)의 폭포소리를 듣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읊은 게송을 상총선사에게 올리게 된다.

유정설법은 생명체가 있는 유정(有情, 감정이 있는 동물) 즉, 중생을 위해 법사나 부처가 설한 팔만대장경을 뜻하고, 무정설법은 아무런 감정과 의식이 없는 산천 목석 즉, 자연이 설법하는 것을 뜻한다. 상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무정물이 설법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무정설법을 들을 줄 아는 경지가 불립문자를 종지로 삼는 선의 세계이다.

이 시는 먼저 경치를 묘사하고 나중에 일(주제)을 묘사하는 선경후사(先景後事)의 한시의 전형적인 창작 기법에 따라 전반부에서는 “계곡의 물소리와 산의 경치”를 통해 부처의 모습과 설법을 비유했고, 후반부에서는 “자신이 깨달은 자연 산천의 무정물이 설법하는 무궁무진한 팔만사천 무정설법을 훗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언어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선의 오도(悟道) 경지를 멋지게 갈파하고 있다. 선가의 언어는 언어도단(言語道斷)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이렇게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보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서로 관계를 가지고 조화를 이루면서 존재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고정된 실체가 없이 서로 인연에 따라 의지해서 사물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상체는 무아(無我) 즉, 공(空)의 세계이다. 

<화엄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온 세상이 부처의 세계이고 정토인 사사무애법계이다. 청정한 자연 그대로가 진리의 부처인 법신불(法身)인 비로자나불이다. 선사들은 깨닫고 보면 세상 만물이 나와 같을 뿐이고 오직 내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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