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교사 인생 36년…매순간이 부처님 가피였죠”

특별인터뷰- 조계종립 은석초 퇴임하는  양형진 교장

2월 28일자로 은석초교서 퇴임
은석초서 36년 동안 교편 잡아
2016년 교장 부임… 발전 견인
학교 입학 경쟁률 7배가량 확대
아이들 눈높이 맞춰 법당 리뉴얼

모태범 선수 6학년 때 담임 맡아
두 제자 金획득이 가장 기쁜 순간
교권 침해 이슈들 안타까움 많아
“대부분 부모님들은 선생님 신뢰
너무 힘들면 선배, 동료에 도움을”

리뉴얼한 은석초등학교 연화법당에서 2월 28일자로 퇴임하는 양형진 교장이 합장하며 미소 짓고 있다. 1988년 3월 1일 교사로 부임한 양형진 교장은 36년간 은석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리뉴얼한 은석초등학교 연화법당에서 2월 28일자로 퇴임하는 양형진 교장이 합장하며 미소 짓고 있다. 1988년 3월 1일 교사로 부임한 양형진 교장은 36년간 은석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만3140일. 2월 28일자로 동국대 사범대학 부속 은석초등학교에서 퇴임하는 양형진 교장의 재직기간 일수다. 1988년 3월 은석초등학교에서 교사로 부임했던 그는 오롯이 36년 동안 은석초 한 곳에서 교편을 잡아 아이들을 가르쳤다. 

퇴임을 앞둔 2월 20일 학교 교장실에서 양형진 교장을 만났다. 36년 교직생활의 소회를 묻자 양형진 교장은 “모든 순간들이 부처님 가피였다”고 술회하며 말머리를 풀었다.

“입학 경쟁률이 높아서 어깨에 힘을 주며 근무하던 때도 있었고, 미달이 되어 전전긍긍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학교상황이 안 좋을 때는 선생님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더군요. 그래도 저는 꿋꿋이 학교를 지켰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장 직무까지 맡아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2월 20일) 오전 퇴임 인사차 동국대 이사장 돈관 스님을 뵙고 왔는데, 스님께서 당신이 기도·수행할 때 쓰던 염주를 벗어 제 목에 걸어주셨어요. 정말 감동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혼자 이룬 것이 없어요. 법인 이사장스님부터 동료, 후배 선생님까지 모두가 있기에 지금까지 제가 교직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인연이 부처님의 가피였던 것이죠.”

“넌 선생님 하면 잘하겠다”
양형진 교장이 교사의 꿈을 꾸게 된 것은 학창시절 선생님의 영향이다. 꼼꼼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정을 본 스승들은 제자에게 “넌 선생님 하면 잘 하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앞서 초등교단에 있던 큰형 역시 초등교사를 추천했고 양형진 교장은 공주교대에 입학하게 됐다. 1987년 2월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양형진 교장은 1년 만에 서울행을 선택한다. 불연(佛緣)이 이끌어서다.
 
“마곡사 공주포교당 주지스님의 추천을 받아서 1988년 3월 1일자로 은석초등학교에 교사로 채용됐습니다. 당시 교육경력이 1년인 교사가 은석초등학교에 채용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이사장이신 진경 스님께서 ‘교육경력은 적어도 장래가 촉망된다’고 판단하셨고, 파격적으로 채용한 케이스였습니다.”   

2019년 모태범 선수의 소방 물품 전달식. 모태범 선수는 양형진 교장의 제자다.
2019년 모태범 선수의 소방 물품 전달식. 모태범 선수는 양형진 교장의 제자다.

교사인생 36년, 4913명의 제자
그렇게 시작한 은석초등학교 교사 생활은 지금까지 36년이 됐다. 그를 거쳐 간 제자가 4913명이다. 모두가 소중한 제자이지만,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제자가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인 모태범 선수(38회 졸업생)다.

“모태범 선수는 6학년 때 담임을 맡아서 가르친 제자입니다.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500m에서 금메달, 1000m에서 은메달은 획득했습니다. 우리나라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지요. 그 이후로도 모교에 6200만원 상당의 소방안전물품을 기증도 하고,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후배들에게 1일 명예교사로 원포인트 레슨도 해주는 등 모교에 대한 애교심이 각별한 자랑스러운 제자입니다.” 

같은 종목 이상화 선수와의 인연도 소중하다. 양형진 교장은 이상화 선수의 오빠를 2년간 담임으로 지도해 그 가족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그런 두 선수가 세계적 선수가 되던 순간은 교사 생활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 은석초등학교 졸업생인 모태범, 이상화 선수가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동반 획득할 때,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두 선수가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남녀 각각 500m에서 동반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때는 저뿐만 아니라 교직원, 학생, 동문 등 모두가 축제 분위기였죠.”

모든 것은 ‘학생 교육’ 중심
양형진 교장은 2016년 취임했다. 그 후 8년 동안 양형진 교장은 학교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입학 경쟁률이 1.5대 1에서 8.3대 1로 수직 상승했고, 결원 학생 수도 85명이었던 것이 7명으로 줄었다. 

학생들의 교육 환경 인프라도 대폭 확대했다. 미래형 도서관을 신축하고 전 학급을 스마트 교실로 만들었다. VR스포츠 체험관, AR클라이밍 교실, 지능형 과학실, 창의 다목적실, 전기 가마가 설치된 미술실, 드론 종합 경기장 등 다방면에서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시설들을 조성했다. 

2021년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우수 사학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발적 역량 강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학 감사 인센티브제’의 대상 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장으로 취임한 후 8년 동안 오로지 ‘학생 교육’에 방점을 찍고 공심(公心)으로 일했습니다. 교장실의 책상, 의자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모든 비품을 전임 교장선생님이 쓰던 것 그대로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교육인프라는 전국 최고 수준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를 가장 먼저 알아봐 준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이었죠. 무엇보다 동료, 후배 선생님들이 적극 협조해줘 8년 임기동안 학교를 크게 혁신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법당인 ‘연화법당’을 2022년 리뉴얼한 것도 양형진 교장의 임기 중 주요한 성과다. 동국대 건학위원회 건학이념 구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은석초등학교 법당 불사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후불탱화와 불상이 조성됐다는 게 가장 큰 특징으로 개원 당시부터 불교계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빨간 분채를 사용한 탱화나 우락부락한 사천왕상 대신 귀여운 천진불상과 아기자기한 후불탱화로 법당이 장엄돼 어린이들이 다가가기 쉽게 했다. 야구선수, 축구선수, 빙상선수 등으로 분한 동자승들의 모습은 어린이들이 다양한 꿈을 꾸길 바라는 바람이 담겼다. 이렇게 리뉴얼된 연화법당은 학교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은석초등학교 연화법당에는 전국 최초로 ‘동자승 탱화’와 ‘천진불 불상’이 조성됐습니다. 이는 건학위원회 고문 자승 대종사의 원력을 바탕으로 건학위원장 돈관 스님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변화가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법당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 점이 가장 많이 달라진 점입니다. 학생들은 법당에서 공기놀이를 하며 법당을 편안한 장소로 인식하고 학부모들도 거부감 없이 법당에서 바자회, 연수, 공개수업 등의 행사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양형진 교장이 2022년 봉은사 순례법회서 불교문화체험을 지도하고 있다.
양형진 교장이 2022년 봉은사 순례법회서 불교문화체험을 지도하고 있다.

보시바라밀, 학생 교육에 적용
은석초등학교는 불교 유일 사립초교인만큼 법당과 함께 학생·학부모 신행단체가 있다. 어린이 신행단체인 ‘연화 어린이회’는 전교생 중 54%가 가입해 활동 중이다. 인원이 많다보니 학년별로 나눠 정기법회를 진행해야 할 정도다.

또한 찬불가 부르기 대회, 반야심경 암송대회, 불교교리 퀴즈대회 등을 통해 부처님 법을 공부하며, 졸업할 때는 이사장스님을 계사로 ‘수계’를 하게 된다. 올해에도 92% 졸업생이 계를 받고 불자가 됐다. 명실상부 새싹포교의 산실이라 할만하다. 

불교종립학교 특성상 인성교육에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특히 양형진 교장은 학생들에게 보시바라밀을 강조한다. 이웃돕기 성금을 낼 때도 부모님께 받아서 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 용돈이나 세뱃돈을 아끼고 모아서 그 돈을 기부할 것을 권한다. 이 같은 교육관은 초등교사였던 큰형의 영향이 크다. 큰형은 박봉인 교사 월급 중 5%를 쪼개 학생들을 위해 썼고, 그 진심을 알아본 학생들은 큰형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기부나 보시도 조기교육이 필요해요. 어렸을 때부터 기부하고 나누는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기부를 통한 기쁨이 몸에 배이면 기부나 나눔은 이제 습관이 됩니다. 금요일마다 1교시 수업 시작 전에 학교장이 하는 인성교육 시간이 있습니다. 이 때 보시바라밀의 중요성과 기쁨을 실제 예를 들어서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나누면 행복하다’는 불교의 자비정신을 교육을 통해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죠.”

후배 교사들을 위한 조언
36년 동안 교단에서 활동했지만, 요즘 같은 시기는 없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교권 침해 이슈들은 베테랑 교사인 양형진 교장도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선배로서 후배교사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교사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학부모들이 더 많으니 소신껏 교육하라”는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학부모들은 정말 일부입니다. 진짜 대부분의 학부모들께서는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신뢰합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신을 신뢰하고 있음을 알고 소신껏 교육하십시오. 그리고 너무 힘들면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주위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구하세요. 당신의 말을 한 귀로 흘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 견딜 수 없이 힘들면, 때론 도망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마세요.”

은석초등학교에서 36년을 봉직하고 퇴임하지만, 교사 생활이 끝나지는 않았다. 정년퇴직까지는 3년가량 남았기 때문이다. 

“은석초등학교에서 8년간 교장 소임을 봤는데 법률상 더 이상 소임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원로교사로서 활동할 수 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장 공모에 응시했고, 최종 합격하게 됐습니다. 오는 3월 1일부터는 서울대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 역시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모든 순간이 부처님 가피였네요.”

리뉴얼한 은석초등학교 연화법당에서 2월 28일자로 퇴임하는 양형진 교장이 합장하며 미소 짓고 있다. 1988년 3월 1일 교사로 부임한 양형진 교장은 36년간 은석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리뉴얼한 은석초등학교 연화법당에서 2월 28일자로 퇴임하는 양형진 교장이 합장하며 미소 짓고 있다. 1988년 3월 1일 교사로 부임한 양형진 교장은 36년간 은석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