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아름다워도 결국 가짜일 뿐
진보하는 바이오테크놀로지 시대
현재 상황은 ‘도덕적 진공 상태’
철학·종교윤리 적용 초미 관심사
불교, 생명 가치를 불가침에 둬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참된 가치를 구현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진짜와 모조품을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모방된 가상의 물건들이 진본을 능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만고에 푸른 연못에 비친 달, 두세 번 건져봐야 거짓인 줄 알게 되리.(萬古碧潭空界月 再三撈벀始應知) -대혜 종고(1089~1163)
연못 위에 비친 달그림자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진짜 달이 아니라는 대혜 종고 선사의 게송은 모조품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많은 것이 복사되고 복제되는 우리 시대에 곰곰이 새겨볼 내용이다.
우리 시대의 과학기술은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상은 어떠한 지침을 묻기보다 어떤 효용성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왜냐하면 실용적 가치를 전제로 움직이는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도덕적 진공 상태’인 현실에서 ‘철학의 변형’(Transformation der Philosophie)을 통해서 의미의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Karl Otto Apel). 그리고 의사소통공동체에서 도출할 수 있는 합의를 부단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담론의 중요성을 통하여 고루한 학계와 현실에 민주주의 원칙이 비로소 도입된다. 윤리와 철학이 외면 받고 과학과 기술의 편리성이 유행이라 해도 종교와 인문학은 윤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근본을 묻지 않는 현실에 대하여 일말의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것이 윤리와 종교이다.
‘연못에 비친 달’에 비견할 수 있는 복제품들에 대한 담론의 주요 주제는 행위 주체의 문제이다. 누가 생명복제에 대한 결정권을 위임받을 수 있는가? 국가와 과학, 종교와 윤리 이 둘을 저울질해보면 어찌되는가?
국가와 과학은 배아복제 및 동물복제를 여러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들이대며 옹호하고 있다. 질병의 연구와 치료, 생명의 연장, 영양물질의 생산, 멸종위기동물의 보전, 우수형질의 확대 등이다. 이 논거들은 대부분 현실적 효용성과 경제적 이득에 기반한다.
종교와 윤리의 입장은 인권의 확대 버전인 동물권에 기반한 윤리성, 생명의 존엄성과 정체성의 혼란, 생태계의 혼란과 상업적 이용으로 인한 변질 가능성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교적 입장은 과학기술 자체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단언컨대 복제기술에 내재된 생명연장과 관련된 욕망은 대부분의 불교가 추구하는 생명윤리와 공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러한 욕망은 인과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업력을 가속화하고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생명복제 및 배아실험에 대한 생명윤리의 논점들은 생명의 절대성에 기초하고 있다. 절대적 가치를 보장받아야 하는 생명체는 과학기술에 의하여 조작가능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생명윤리적 비판은 고귀한 생명을 물화시킴으로 목적 자체를 수단화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뜨거운 벽돌로 내려치자, 밑바닥까지 얼어붙었다.(燋甎打着 連底凍)
-자수 회심(1077~1132)
불교 생명윤리학은 생명 고유의 가치를 불가침의 권리로 옹호해야 한다. 배아복제와 동물복제 논의는 종래에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벽돌을 밑바닥까지 내려치며 검토하고 다뤄야 할 문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