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가죽’이란 ‘탐욕’서 벗어나라
인간의 폭주하는 욕망을 다룬 소설
로또 같은 ‘나귀 가죽’ 얻은 주인공
평소 억압들을 쾌락을 통해 해소해
방탕의 대가는 자신의 파멸로 귀결
인간의 의식구조 묘사 탁월한 작품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이다. 인간의 욕망을 ‘밑 빠진 가죽 부대’라고 부른다. 욕망은 생의 의지로 읽을 수도 있지만, 만족을 모르는 욕망은 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
감각적 욕망을 행복으로 알고 끝없이 추구하다 결국 죽음으로 끝맺는 그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 〈나귀 가죽〉을 소개한다. 〈나귀 가죽〉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작품으로 철학 소설이자 테제 소설이다. 1831년에 출간돼 발자크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극찬한 책이며, 숨을 거두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작품이다. 프로이트가 죽기 전까지도 〈나귀 가죽〉을 읽었던 것은 자신의 정신분석이론을 잘 담아낸 작품이라서, 또 자신보다 앞선 세대를 살아낸 발자크가 어떻게 인간의 의식세계를 이렇게 명징하게 알고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귀 가죽〉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삶에 절망한 청년 라파엘은 자살하려고 다리 위에서 센강을 내려다보았다. 자살하려고 난간 위에 선 순간 강변의 헌책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난간에서 내려와 걷다가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다.
골동품 가게의 주인은 라파엘에게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게 해주지만, 그 대가로 가죽 소유자의 목숨을 그만큼 단축시킨다’는 신비한 ‘나귀 가죽’을 보여준다. 라파엘은 신비한 가죽을 선택하면서 이 세상의 환희와 기쁨과 환락은 모두 즐겨보리라 결심한다.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나귀 가죽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만일 그대가 나를 소유하면 그대는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그대의 목숨은 나에게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신이 그렇게 원하셨느니라. 원하라, 그러면 그대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대의 소망은 그대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대의 목숨이 여기 들어있다. 매번 그대가 원할 때마다 나도 줄어들고 그대의 살날도 줄어들 것이다.
발자크는 이 나귀 가죽을 부적이라고 표현했다. 주인공 라파엘은 ‘욕망을 이루는 만큼 자기의 생명은 줄어든다’는 노인의 말을 듣고도 나귀 가죽을 집어 들었다.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게 해주는 나귀 가죽은 현대판 로또와 같다. 라파엘은 섬뜩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절제하면서 제어하면서 산다면 한평생 나귀 가죽의 덕을 보면서 살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충동본능이 있기에 자기를 다스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 세 가지로 보았다. 이드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어두운 부분이며, 충동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무의식의 세계인 것이다. 이드는 통제되지 않은 정념과 의지, 충동이 발원하는 일종의 저장고로서 하나의 역동적인 실체처럼 간주된다. 이드는 인간 육체의 본질적 차원이자 리비도(성충동) 자체이며 삶의 뿌리라 할 수 있다.
나귀 가죽을 얻은 라파엘은 먼저 으리으리한 대저택부터 짓는다. 대저택은 화려하고 값비싼 물건들로 채워진다. 저택에 하인을 여럿 두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나날을 보낸다. 대저택에서는 날마다 파티가 벌어진다.
무서운 아버지와 마주하고 있으면 언제나 여덟 살로 돌아가는 라파엘은 스무 살 때부터 정신적인 방종을 꿈꾸었다. 그러다 라파엘은 아버지 사촌인 나바랭 공작의 저택에서 열린 무도회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몇몇 사람과 노름을 했다. 처음으로 해본 노름판에서 돈을 딴 라파엘은 도박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됐고, 이 환상은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된다.
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거울단계는 아동이 자기 신체라는 개념을 획득하고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거치기 마련인 인격발달의 한 과정을 말한다. 거울단계에서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은 다양하다. 부모 등 아이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아이가 자기를 인식하게 되는 거울 이미지에 해당된다. 건강하지 못하고 병들어 있는 거울을 들고 있다면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라파엘이 이 경우에 속한다.
날마다 라파엘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파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난장판이다. 만취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무희들의 광적인 춤사위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고함으로 가득한 홀의 풍경은 환멸을 느끼게 한다. 홀에서 펼쳐지는 장면에는 성적본능만이 있는 것 같다.
프로이트는 성적본능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 관계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면 자존심이 떨어지게 되고, 반면에 사랑을 받으면 자존심이 올라가게 된다”라고 했다. 라파엘은 사랑을 통해 자존심이 올라가는 나르시시즘적 리비도를 통해 삶의 환희를 느낀다. 스무 살 때부터 쾌락을 꿈꾸었던 라파엘은 골동품 가게 노인의 충고도 무시한 채 쾌락에 탐닉한다.
어느 날 문득 나귀 가죽이 생각나서 꺼내 보았더니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의 생명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죽음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라파엘은 그제야 방탕한 생활을 멈춘다. 하지만 죽음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귀 가죽을 통해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확인한 라파엘의 핼쑥한 얼굴은 소름 끼치도록 창백해졌다. 방탕의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게 됐다. 그제야 노인의 말이 생각났다.
“나귀 가죽에는 당신들의 사회적 이념, 당신들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 당신들의 무절제, 죽음을 부르는 당신들의 쾌락, 삶을 과도하게 압박하는 당신들의 고통이 들어있네.”
노인은 극심한 쾌락은 악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다. 또 “물질세계의 어둠은 가장 온유한 것이라도 항상 눈을 멀게 한다”라고 말했다. 욕망과 탐욕에는 고통과 죽음이 내포돼 있음을 말한다. 욕망은 인간 존재에게 필연적으로 남아있는 결여에 의한 것이며, 채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불가능한 갈망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탐진치(貪瞋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삼독이라 해 생을 파멸로 이르게 하는 독에 비유했다. 부처님은 ‘탐욕의 재앙’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탐욕이란 어디를 가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다. 탐욕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어 우리를 절망의 구렁으로 떨어뜨리고, 무서운 재앙을 불러들인다. 바른 지혜로써 그것이 그른 줄 알더라도 평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탐욕에 쫓기고 마는 것이오. 그것이 그른 것인 줄 바르게 알고 탐욕을 떠나 평안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탐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고통으로부터 해탈이며 이것은 탐욕의 불꽃을 완전히 끄는 것이다. 탐욕의 불꽃을 완전히 껐을 때 비로소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채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갈애라고 하는데, 갈애는 커다란 괴로움을 야기한다. 또 갈애는 윤회의 고리를 반복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탐욕과 애욕에는 즐거움과 재앙이 함께 하는 것임을 망각하는 것이 무명(無明)이다.
라파엘은 안색이 핏기를 잃어 납빛으로 변하고, 두 눈의 초점은 한 곳에 고착된 자신의 얼굴에서 죽음을 보았다. 그는 욕망이 이루어질 때마다 앞으로 살날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본 것이다. 라파엘은 나귀 가죽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했다.
라파엘은 ”백만장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사형집행인이다”라고 말한다. 라파엘은 누릴 수 있는 쾌락을 다 누렸지만,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었다. “감각적 욕망의 행복은 뼈다귀와 같으며, 그것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라파엘이 알았더라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귀 가죽에는 생성과 소멸, 생명과 죽음이 담겨있다. 소설 〈나귀 가죽〉에는 프로이트가 말한 에로스(Eros, 삶의 본능)와 타나토스(Thanatos, 죽음의 본능)가 담겨있다.
프로이트는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생명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라는 욕구의 이원론을 말했다. 성적본능은 살아 있는 물질의 부분을 통합하고 융합하려는 에로스의 개념이다.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는 무기적 상태의 재현을 목표로 해서 해체의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개념이다. 욕구의 이원론에서는 인간에게 창조의 본능이 있다면 파괴의 본능도 있다고 본다. 프로이트를 추종하는 프랑스의 정신분석 학자 자크 라깡(Jacques Lacan)은 “모든 충동은 사실상 죽음의 충동”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모든 충동은 그 자체의 소멸을 추구하며, 모든 충동은 주체를 반복에 관여하게 하며, 모든 충동은 쾌락원칙을 넘어서서 즐거움이 고통으로 경험되는 과도한 향락의 영역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나귀 가죽〉을 한 줄로 요약하면 ’과도한 욕망과 애욕은 삶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이다. 주인공 라파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자신이 꿈꾸었던 감각적 쾌락과 방탕한 생활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나귀 가죽은 현대판 로또와 같다. 로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발자크는 강력하게 어깃장을 놓고 있다.
불교에는 깨달음으로 가는 지침서이자 괴로움을 소멸로 인도하는 팔정도(八正道)가 있기에, 불자들은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이 없을 것이다.
▶ 문윤정 수필가는
경북 경주 출생. 1998년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선재야 선재야〉 〈마음이 마음에게 묻다〉 〈답일소〉 〈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 〈터키, 낯선 시간에 흐르다〉 〈세계 문호와의 가상 인터뷰〉 외 다수. 지금은 서울교대 평생교육원에서 강의 중.
